세종에서 5년 차 연구원이었던 나는 미국으로 박사 유학을 준비해 왔다. 내가 미국으로 박사과정을 가고 싶은 이유는 단순했다. 연구가 좋았고, 평생 업으로 연구가 하고 싶었다. 그러기엔 박사학위가 필요했고, 내 분야에서는 국내와 미국의 학위 차이가 꽤 있는 편이기에, 이왕 하는 거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내 단순한 이유와 달리 그 선택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상당했다. 5년이라는 긴 과정을 미국에서 한다는 것은, 또 졸업 후 어디에 정착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길에 들어선 다는 게 30대 접어든 유부녀에게 쉬울 리가 있나.
“일단 지원해서 합격하고 그때 가서 고민하자” 했던 우리 부부는 마음 한편에 “설마 될까?”라는 생각이 잠재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은 학비 전액면제와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제공하는 만큼, 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이미 몇 차례 불합격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2020년 3월, 코로나가 뉴욕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보도가 한창이던 시절, 나는 한 학교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고, 2주 안에 결정해서 알려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연구원으로 일하던 내내 원하던 결과를 얻었는데, 막상 합격하고 나니 선뜻 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2주간 매일 새벽 5시까지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고, 피폐한 컨디션으로 출근 후 또다시 고민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남편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가까운 지인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확신이 드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안락하고 행복하고 안정적이었던 세종에서의 신혼생활을 떠난다는 게, 또 남편이 당장 함께 가지 못한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내 안에 “굳이 왜? 이미 충분히 행복한데?”라는 질문을 반복케 했다. “이제 결혼도 했고, 나이도 서른인데, 꿈을 좇으며 도전하기엔 나이가 적지 않잖아. 게다가 코로나로 사람이 죽어간다는데 (당시에는 심각했다), 이건 아닌 거 같아…”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생각이 생각을 꼬리 물고 10대 20대의 내 모습으로 데려가 주었다.
“내가 10대 20대를 다시 살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은 선택들을 하며 더 좋은 모습으로 보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 그때 느꼈던 “아하!”의 희열. 왜 이제까지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럼 반대로 미래의 내가 오늘의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60대 70대의 내가, 2주째 박사 유학을 갈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는 오늘의 나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을까?
미래의 관점으로 생각하니, 이제까지 잠 못 자며 고민한 내가 바보로 느껴질 만큼 모든 게 단순하고 깔끔해졌다. “당장 짐 싸서 떠나”라고 할 것 같았다. 무슨 고민도 아닌 일을 2주째 붙잡고 잠을 못 자고 있냐고 소리칠 것 같았다.
인생을 길게 놓고 본다면 당장 괴롭도록 고뇌하던 것이 이토록 단순하게 느껴진다. 결정 선택 마감일 하루 전날, 남편과 진한 포옹을 나눈 뒤, 메일을 제출했다. 가겠다고.
나는 그렇게 처음 밟아보는 미국 땅으로 큰 짐 3개를 들고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때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전혀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