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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삼 Oct 07. 2024

순둥이는 정말 순할까?

찹쌀떡 같이 말랑말랑한 아기가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아기가 참 순하네~

듣는 순둥이 엄마로서 객관적으로 우리 아기를 살펴보면 순한 편은 맞다.


러나 아무리 순한 아기라도 하루 24시간을 순하게 있을 수는 없다.

어른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직장에서의 모습과 집에서의 모습이 다르듯이 아기도 집에서의 모습과 밖에서의 모습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우리 아기는 낯선 장소에 가면 일단 가만히 주위를 살펴본다. 여기는 어디인지, 다른 아기들은 뭐하는지 천천히 탐색의 시간을 가진 뒤에 비로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익숙한 집에서는 날다람쥐가 따로 없다. 낯선 사람 앞에서는 작은 소리로 종알종알 말해도 집에서는 단전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소리를 내곤 한다.


개인적으로 정말 순한 아기는 무엇보다 잠을 잘 자는 아기라고 생각한다.

밤에 잠만 푹 자더라도 육아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 감히 예상해 본다.

겉보기에 순해 보이는 우리 아기는 안타깝게도 밤에는 순하지 않았다. 두 돌이 될 때까지 통잠을 거의 자본 적이 없다. 신생아 때는 신생아라서, 조금 더 커서는 자다가 뒤집어져서, 이앓이를 하느라, 두 돌이 된 요즘은 무슨 꿈을 꿔서 무섭다고 깬다.

분명 밤에 자다가 같이 깼지만 아기는 고속충전이라 아침이면 기운이 넘치고 엄마는 저속충전이라 일어남과 동시에 피곤해 죽을 지경이다.




하루는 시댁에서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었다.

우리 아기와 1살 차이 나는 사촌오빠도 있었다. 남자아이, 여자아이인 성별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나이가 1살 더 많아 에너지가 다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아기와 시조카는 성격의 차이가 확실했다.

확실히 우리 아기가 훨씬 순하게 보였다. 할머니 댁에 오랜만에 왔고 고모, 고모부와 사촌오빠도 낯설어서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더욱 순둥이 같았다.

그에 비해 시조카는 익숙한 할머니 댁에서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다 같이 모인 식사시간, 사촌오빠는 아직도 뛰어다니느라 바빴고 그에 반해 우리 아기는 밥은 안 먹고 콩나물만 열심히 집어먹고 있었다. 그 모습크게 감명받은 고모, 고모부는 아기가 너무 순해서 밥 두 그릇도 먹겠다며 감탄했다.

물론 실상은 한 그릇도 겨우 먹기 때문에 집에서는 또 다르다며 반기를 들었다.


순둥이 엄마로서 순하다는 칭찬을 들을땐 그저 웃어넘기지만 과한 칭찬은 듣는 순둥이 엄마의 화를 부르곤 한다. 일부 모습만 보고 쉬운 육아를 하는 듯한 오해를 사서 그런 것 같다. 실제로 쉬운 육아를 한다면 모르겠으나 쉽다가도 어려운 육아를 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며칠뒤 집 앞 놀이터에서 아기와 산책하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목줄도 하지 않고 산책하던 강아지 한 마리가 아기 코 앞으로 불쑥 다가왔다. 순간 너무 놀래서 숨도 못 쉬고 곧바로 아기를 들어 올렸다. 짧은 순간 각 물림사고 뉴스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강아지는 그냥 여기저기 탐색 중이었고 금방 다른 곳으로 떠났다.


외모로 편견을 가져서 미안하지만? 불도그 종류인 것 같은데 꽤나 못난 얼굴이 더 사나워 보이기도 했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목줄 좀 하고 다니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아기도 놀랄까 봐 속으로만 삭이고 빨리 놀이터를 떠났다. 천천히 뒤따라온 이웃집 할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며 애가 순해~라고 웃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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