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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개발자로 일하며

미국 회사 매니저와 퍼포먼스 리뷰에 대한 1:1 미팅

by 밍풀

이번 주 월요일.

한 달 넘게 미뤄져 왔던 퍼포먼스 리뷰를 드디어 1:1 미팅을 통해 하게 되었다. 동료들의 피드백은 이미 6월 초에 받았으니, 세 달 만에 최종 리뷰가 나온 셈이다.


그리고 전해진 결론은, ‘기대에 부합한다’는 딱 중간 점수였다.




1년 전 매니저와의 리뷰에서도 똑같은 점수를 받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소수점 자리뿐이라고 했다.


그때는 이제 막 SDE2로 승진한 직후였다. 매니저가 평가할 수 있는 지표는 팀 비즈니스 임팩트가 있는 작은 개인 프로젝트 하나가 전부였다.


이후 1년간은 조금 달랐다.
6개월 동안은 다른 팀으로 옮겨 꽤 큰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긍정적인 피드백도 받았다. 남은 6개월은 다시 원래 팀으로 돌아와, 온콜과 버그 픽스(Bug fix) 같은 작은 업무들을 해 왔다.


매니저는 내 점수가 작년보다 0.4~0.5점 정도 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 보너스는 없다.


앞으로 12~18개월은 나를 지켜보겠다고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이, 18개월 동안 승진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


솔직히, 저날 하루는 일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눈앞의 테스크에 부딪히면서 알게 됐다.


결국 나는,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끝까지 매달려 해내야 하는 사람이구나.



취준을 하던 시절에는, "일단 취업만 하면 고민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어느 자리, 어느 상태에 있든 그 안에서만의 고민은 여전히 존재한다.




개발을 시작한 지 도합 8년.
회사 생활만 해도 4년 반이 지났다.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새로운 테스크를 맡을 때마다 여전히 눈앞이 깜깜하다.


유능한 개발자들 사이에서 나는 너무 작게 느껴진다. 이 기분이 흔히 말하는 imposter syndrome인지, 아니면 내 실력이 실제로 부족한 건지 (부족하다는 쪽으로 기울지만) 요즘은 잘 분간조차 되지 않는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서당개는 참 똑똑한 존재였다.






미국 행정부의 돌발적인 비자 정책 속에서,

앞으로의 길을 고민하던 여러 날들을 지나오며

자주,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뭘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그렇게 끊임없이 물어보며 내린 결론은 하나,


결국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가가 나의 행복을 결정한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개발 일에 몰입을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



솔직히,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

(세 손가락도 많이 쳐 줬다)



나에게 코딩은 단순히 지루하거나 반복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두렵고 미지의 분야다.


마치 마음이 식은 연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듯,

어떻게해서든 매달리며 놓지 않으려는 존재.

친해지고 싶어도 쉽게 다가가지지 않는 존재.



언젠가 익숙해지기라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매니저 말에 따르면,

나는 1년 전보다 성장했고, 다른 팀에서의 경험으로 역량을 증명했다.

그 시간들이 결국 내 안에 쌓여 언젠가 더 큰 힘이 되어 돌아올 거라 믿는다.

(솔직히 믿지 못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믿겠나. 믿어야지.)



이 일을 업으로 4년 반을 이어온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잘했다.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수고했어.




이런 말들도 나한테 오글거려서 못하는데

그래도 지금은 해야한다.


짜란다

짜란다

짜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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