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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근무지에서의 근무는 어떠셨나요?

첫 근무지에서? 반푼이었지 뭐.

시작이 반이라고 많이들 야기한다. 뭐라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인데, 뭐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는 말이긴하지. 하지만,


내 경험상 준비 없는 시작은 반푼이가 되기 십상이다.


어찌어찌 문자 메세지로 합격 통보를 받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잠을 설친 다음 날, 나는 스쿠터를 타고 출근을 하였다. 시간보다 조금 여유롭게 도착하였고, 가게가 아직 오픈되기 전이어서 담배를 한 대 피우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너쉐프님이 직원들을 태우고 도착하셨고, 이에 패기 좋게 인사를 뒤, 같이 일할 동료 직원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락커룸으로 이동하였다. 처음으로 쉐프복과 앞치마, 주방화착용하고 나니 뭔가 어색하긴 하지만 뭔가 요리사가 된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때 집에 갔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크지 않은 매장이었고, 인원 구성은 상시근로자 4인이었다. 내가 근무하게 된 자리는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굽는.. 뭐 나중에 찾아본 거지만, Line cook, Hot part, Chef de partie 등으로 불리더라. 상당히 있어 보이지 않는가?


실상은 해리포터에 주방에서 일하는 집요정, 도비 정도의 포지션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파트를 도맡아서 하던 직원이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인지 뭐 그렇게 나갈 계획이어서 준비하기 위해 그만두게 되었고, 그에 따라 나에게 어느 정도 인수인계를 진행한 후에 퇴사를 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그는 바로 나의 첫 사수였다.


나의 첫 사수는 좋은 사람이었다. 딱히 정이 엄청 많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렇다고 차갑게 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에게 요리는 처음이냐, 나이가 어찌 되냐 등의 호구 조사가 끝난 후 나에게 칼을 잡는 법을 알려주고 해당 업장에서 재료를 어떻게 재단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줬으며, 나는 이를 수첩에 빼곡하게 열심히 적었었다.


칼질을 할 때는 왼손이 정말 중요하다. 슬램덩크의 유명한 말, 왼손은 거들뿐. 하지만 칼질에서는 오른손은 거들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왼손이 제대로 숙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많이 베이기도 하고, 또한 재료 손질 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칼질에서는 왼손이 제일 중요하다고 얘기를 하고는 한다.


내 사수도 같은 얘기를 하였고, 왼손에 계란이 하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칼을 왼손 검지 2번째 마디쯤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썰어야 된다라는 느낌으로 얘기를 해줬었다. 이 사수가 아직도 참 많이 기억에 남는 이유 중 하나는, "어어어 손가락이랑 재료랑 같이 썬다", "어어어 재료에 피 다 들어간다" 등으로 내 옆에서 왼손을 잘 쥘 수 있게끔 얘기를 해주었었다. 대부분 왼손이 숙련되지 않은 경우 왼손이 자꾸 펴지게 되고, 이는 베임의 원인이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칼질을 알려주게 될 경우, 내 사수와 똑같이 옆에서 말해주고 있다. 어어어어 자해한다 으아아아.


해당 업장에는 브레이크 타임이 약 2시간 정도 있었고, 이 시간에 끼니를 해결한 후의 시간은 각자 휴식 혹은 외출 등 자유로웠다. 감사하게도 나의 사수는 이 브레이크 타임에 나에게 프라이팬을 돌리는 방법(pan tossing)을 알려주었다. 프라이팬에 물기를 제거한 뒤, 쌀을 어느 정도 부어두고 그걸 돌리는 방법이었다. 그렇다. 바닥에 쌀을 다 흘렸고 나는 청소하기 바빴다. 나름 손재주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크나큰 오산이었다. 무튼 이러저러한 것을 많이 알려주셨고, 나도 오랜만에 열의에 차올라서 열심히 습득하고 있었으나.. 본디 나의 사수는 약 1주일 간 인수인계를 해주기로 하였지만, 웬걸. 3일 정도 인수인계를 받고 그는 일을 그만두었다. 사수가 나를 가르치기 싫어서 그만둔 건 아니고, 오너쉐프님의 결정이었다. 나쁜 오너. 내 사수 돌려줘. 흑흑.


우리가 새해가 되면 새해에는 꼭 이런 것을 해보자! 하면서 신년계획을 짜게 되는데, 이때 제일 많이 들어가는 것들이 운동을 하자와 돈을 모으자 이런 것들이 많은 확률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 운동을 하고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레스토랑을 제일 먼저 가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1명의 인건비는 자연스레 오너쉐프님의 손실로 이어졌고, 이에 내 사수는 먼저 집에 가게 된 것이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열심히 해볼게요.라는 인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사수는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 호주에 있다고 하였다. 혹시라도 내가 쓴 글이 널리 퍼져서 이걸 보시게 될 수도 있으시려나. 그때 갑갑해서 어떻게 가르치셨어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음.. 흔히 이렇게 말한다. X 됐다. 이 단어 말고는 다른 언어로 표현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진짜다. 내가 욕하는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당장 나는 혼자 남겨졌다. 양파 하나를 Chop 형태로 써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외의 것들에서도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이 어린양을 두고 어딜 가시는 것이옵니까 사수마마.. 다행스럽게도, 손님들이 약 2주 차까지는 매우 적게 들어왔고 서비스 타임에 대부분의 시간을 놀면서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꿀 빨았다. 아주 달다. 이가 다 썩을 것 같다.


작심삼일이라 하였던가. 업장이 있던 지역 사람들은 그래도 상당한 인내심과 끈기가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무려 작심삼주였다. 3주차부터 슬슬 손님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3주차 금요일쯤 되니 테이블이 가득 찼다. 그렇다. X됐다. 진짜 X 됐다. 태평스러운 나날 속에 슬슬 무료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아 손님들 좀 왔으면 좋겠다..라는 정신 나간 생각을 했던 나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해본다. 주방에서 오늘 한가한데?라는 말은 금기어다. 그때부터 손님이 들어오거든. 머피는 진짜 나쁜 사람이 분명하다.


빌지가 그득그득하게 밀려든다. 간택기 앞에 홀로 서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 그리고 모든 빌지를 쳐내고 땀을 닦으며 뿌듯한 나.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그렇다. 상상으로는 멋있다. 현실이 시궁창이어서 그렇지.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빌지가 그득그득하게 밀려드는 것은 같았다. 간택기 앞에 홀로 서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도 같긴 했다. 문제는 그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효율성이 Zero다. 메뉴가 몇 개 들어왔는지 파악도 못하고, 소스가 어떻게 됐었지? 레시피가 어떻게 됐었지? 어.. 이 메뉴는 스파게티면이었나 링귀니면이었나.. 뭐였지....? 오너쉐프님이 자신이 맡은 샐러드와 고기류를 내어주고 난 뒤, 파스타를 같이 하면서 이것저것 지시하였고 이를 정신없이 수행하려 했던 기억이 난다.


정신없이 2시간이 흘렀고, 오너쉐프님이 담배를 한 대 피우러 가자고 말씀하셨다. 오너쉐프님은 담배를 태우시지 않는다. 나와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가 2시간 동안 파스타를 7그릇을 내어줬는데 이렇게 하면 근무를 할 수가 없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해라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 난 이제 처음으로 권고사직이라는 것을 당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바닥을 보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저 한 마리의 죄송무새가 되었던 기억뿐.


얼마나 한심한가. 손님이 많이 오지 않을 때, 기를 쓰고 연습을 하고 뭘 물어보고 정확히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돌리고 레시피를 달달달 외우고 동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체크를 하고 해도 모자랄 판에 올리브유 통 하나 깔고 거기 앉아서 핸드폰이나 쳐다보면서 낄낄댔던 나는 당연히도 Fire를 당하는 게 맞다. 근데 뭔가 피가 끓었었다. 내가 나름 어디서 대접받고 다녔는데 여기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된다고? 내가 오너쉐프 당신 잡고 말 거야. 두고 봐.


원래 사람은 남탓을 한다. 남탓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도 얘기하다 보면 남탓을 한다. 인간은 원래 대부분 그렇다. 남탓이 편하니까. 남탓하면 즐거우니까. 남탓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우니까. 평생을 남탓을 하면서 살아왔던 나는 한참을 지나고 난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남탓보다는 내 탓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다. 솔직하게 남탓을 안 하지는 않지만, 그 남탓은 정말로 아닌 경우의 사람일 때만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조차도 품을 정도로 내가 마음이 넓은 대인배가 되지 못하였고, 내가 더 시간이 지나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제야 비로소 나 자신 탓을 어느 정도 하면서 살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어땠겠는가. 모든 것이 다 남탓이었다. 내가 방황하게 된 것도. 내가 삶의 의욕을 잃고 폐인처럼 살았던 것도. 내가 무언가를 못하는 것도.


오너쉐프님에게 혼나던 2019년 그 당시에도 당연히 오너쉐프님 탓을 했다. 칼질도 못하던 애가 이만큼 했으면 칭찬을 좀 해주지라던가 그렇게 답답하면 지가 하던가 같은 정말 철없다는 말도 모자를 정도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얘기는 오너쉐프님에게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때는 그리고 문득 여기서 내가 나가게 되면 다시 어딘가를 취직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날, 마감청소를 끝내고 오너쉐프님에게 잠시 시간을 내어달라고 하였다. 나는 오너쉐프님에게 오늘 이렇게 근무를 수월하게 하지 못하고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하다. 혹시 오너쉐프님이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먼저 와서 오픈 준비를 다 한 다음에 파스타를 한 그릇씩 만들어서 먹어봐도 되겠느냐는 말씀을 드렸고, 이에 오너쉐프님은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하시며 가게 대문 열쇠와 보안 해제를 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나는 출근시간보다 1시간 30분씩 일찍 출근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아, 이때 집을 갔어야 했어.. 저때라도 늦지 않았을 것 같아..


나는 첫 직장에서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요리사라는 직업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지 않나 싶다. 내 사수가 나에게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오너쉐프님이 파스타 1그릇씩 만드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내가 어릴 적부터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이 발동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다시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지 않았었을까? 그 안에서 사회가 어쩌고 인간이 저쩌고 키보드 타닥타닥 두드리는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서 소주를 병나발로 불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1시간 30분씩 일찍 출근을 하기로 결심한 다음날의 이야기는 60초 후에 공개된다. 농담이다.

다음에 이어지니까 기대하시라. Adidas

Adios인 거 안다. 조크다 조크.





저번 인터뷰가 너무 길었어서 오늘은 좀 짧게 했어요 기자님.

그리고 얘기를 한 번에 다 하면 인터뷰를 몇 번 못하고 끝날 것 같아서요.

다음 인터뷰는 8월 초에 다시 한번 하시죠.

제가 시간되는 날 저녁에 다시 진행하시죠.

더위 조심하시고 들어가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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