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8287. 패션후룻 우롱
늦여름에 아이스티용 과일우롱을 좀 욕심내었더니 10월이 끝나가는데도 혼자서 한 여름이다. 이미 작년에 시음기를 썼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 않아서 그렇지 루피시아의 가을 한정도 열심히 마시고 있고 이런저런 녹차류도 마시면서 가을 정취를 아침저녁으로 즐기고는 있다. 그래서인지 이도저도 아니게 시음기가 진도가 잘 안 나가네. 아무튼 올해의 마지막 여름우롱인 패션후룻우롱. 50g 봉지로 930엔이고 상미기한은 제조 1년. 계절 한정으로 4월~8월에만 판매한다.
라벨을 보아서는 특이사항은 없다. 다른 과일우롱들과 비슷해 보인다.
아마주빠이 패숀후루추가 카오루 타이완 우롱차. 난고쿠 오 오모와세루 사야카나 후미 와 아이수티 니 모.
상큼한 패션후룻향이 나는 대만 우롱차. 남국을 떠올리게 하는 상쾌한 풍미는 아이스티로도.
홈페이지에 가보면 아이스티 라벨이 붙어있는 흔한 루피시아의 냉침용 우롱차로 보인다. 올해의 몇 가지 아이스티용 과일우롱 중에 이걸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가 있긴 하다. 가을에나 만날 수 있는 루피시아의 타키비는 올해엔 좀 변동이 있어 정산소종이 같이 블랜딩 되었으나 작년엔 암차계열인 중국의 수선을 베이스로 패션후룻과 약간의 망고등을 가향했기 때문에 패션후룻과 연달아 마시거나 비교하면서 마셔봐도 재미있을 거 같단 생각이 있었다.
봉투를 열면 약간은 풍선껌스러운 익숙한 루피시아의 패션후룻 가향이 느껴진다. 그래도 코를 찌르는 정도는 아니고 은은한 느낌이 있어서 안심이 된다. 건엽을 덜어내 보면 노란 메리골드와 빨간 잇꽃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예쁘긴 한데 맛에 큰 영향이 있을까? 잠시 안성재 셰프에 빙의하여 꽃장식을 빼는 상상을 해보았다가 블랜딩은 어쨌든 같이 우려서 마시는 거잖아 하는 생각이 들어서 꽃잎 토핑들에게 생존을 줬다. 포유상태도 좋고 가향이 느끼하지 않게 잘 들어간 것 같은 깨끗한 우롱차다.
조금 건너뛰어서 따뜻하게 마셔도 나쁘진 않지만 역시 아이스티로 마셔야 제맛이긴 하고 급랭과 냉침에 큰 차이가 있진 않았다. 그렇다면 역시 나는 급랭파. 6g의 찻잎을 95도 이상의 물을 150ml쯤 부어서 1분 이상 우려 주고 얼음컵에 따라낸다. 청향 우롱의 상쾌한 느낌과 함께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맛이다. 직선적인 패션후룻의 가향도 어디 모난 곳 없이 우롱차의 청향과 궤적을 동일하게 그려낸다. 조금 단조로운 느낌이 들 정도로 아는 맛이고 생각했던 맛인데 깔끔하게 맛있어서 스트라이크존에 팍 꽂히는 시원함이 있다. 타키비의 열대과일향은 이보단 훨씬 녹진해서 옛날 스타일의 노골적인 달달함이 초코 바닐라향처럼 느껴질 정도인데 아이스와 핫에 어울리는 각각의 특징이 비교되는 느낌이다. 급랭보단 냉침에서 아주 조금은 고소한 맛이 나면서 인공향이 걸러지는 기분이다. 뭐랄까 아까 이야기한 청향과 가향의 궤적이 조금 더 두꺼우면서 흐릿한 느낌이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마셔도 공통적인 뉘앙스가 비슷하게 다가오고 입안에서 잠깐 찻물이 도는 사이에 느껴지는 달달함은 이 차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내포성은 뛰어난 정도는 아니지만 평균이상의 느낌. 보통 급랭으로 두 번이 좋고 세 번째는 아무래도 밍밍하다.
엽저의 향을 맡아보면 옅은 포도향이 난다. 한참을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우롱차. 50g에 만원이 훨씬 안 되는 가격이면 가성비로 보아도 나쁘지 않은 우롱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외출하고 집에 오면 자꾸 패션후룻우롱 급랭을 한 잔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아껴먹느라 고생했다. 시음기도 쓰고 유튜브도 찍어야 해서 어쨌든 여분을 남겨둬야 했다. 내년엔 좀 많이 쟁여놓고 아끼지 말고 마셔야겠단 생각을 계속했다. 간신히 완성한 패션후룻우롱의 시음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