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1741. 아쌈 나호라비 골든팁스 퀄리티 2024
가을이 오면서 루피시아에서 아쌈 퀄리티 시리즈를 내놓았다. 다즐링은 늘 있었던 거 같은데 닐기리, 실론, 아쌈도 퀄리티로 여러 다원 비교시음이 가능하게 발매해 주는 게 참 좋다. 아쌈 특집에서 골라서 사온 퀄리티, 나호라비, 메렝을 마셔보고 있는 요즘인데 오늘은 그중에서 나호라비를 마셔본다. 대형 회사들에 안정적인 납품을 보여주는 다원의 아쌈 퀄리티이다. 믿고 마시는 나호라비. 골든티피아쌈으로 상급의 차를 기대하게 된다. 30g 봉입에 1800엔으로 상미기한은 제조 2년이지만 수량한정에 양도 많은 편이 아니어서 쌓아두고 상미를 걱정하면서 마실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30g만 사기에는 양이 부족해서 너무 스트레스받을까 봐 넉넉하게 두 팩씩 구매. 최근 알게 되었는데 시음기도 쓰고 뭣도 하고 하면서 차가 부족하면 아껴마시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더라. 역시 차는 아껴마시면 맛이 없다.
아쌈 특집의 라벨이 붙어있는 것 외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외관이다. 레시피도 평범한 루피시아의 홍차 레시피.
하나미츠 노 칸바시 카오리 또 키레 노 아루 후미 니 메렌 노 후카쿠 오 칸지마스. 호푸 나 킨메 가 우추쿠시 아쌈 나츠츠마미 코차
꽃꿀의 그윽한 향기와 깔끔한 풍미에서 명원의 품격이 느껴집니다. 풍부한 금빛 새싹이 아름다운 아쌈 여름 수확 홍차.
오늘따라 쳇지피티가 일본어를 잘 못 읽어주는 느낌. 설명에서부터 골든팁을 강조하고 있다. 아쌈에서 난향이나 꽃향을 느껴 본일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궁금해지는 설명이다.
봉투를 개봉하자 특이하게도 졸인간장의 달달해지는 향과 비슷한 느낌이 강하게 반짝하고 지나간다. 이건 무슨 향이지 싶었는데 금방 날아가버렸다. 그 뒤로도 봉투를 열 때마다 종종 느껴지는 간장 뉘앙스. 그 이후에 건엽에서 직접 느껴지는 향은 아쌈 특유의 향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약간 실론스러운 향. 티피한 아쌈이라 약간의 풋내 같은 뉘앙스가 그렇게 느껴진 걸까. 물론 맵쌀한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분명한 아쌈이긴 하다. 노란 골든팁이 넘실거리는 게 제법 설레는 비주얼이다. 이 정도면 FTGFOP라던지 SFTGFOP까지도 될 것 같은 퀄리티인데 아마도 정직하게 아래쪽 채엽도 사용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렇게 큰 잎은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그냥 퀄리티인 이유가 있겠지.
4.5g의 찻잎을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간 우려낸다. 평소보다 투차량이 적은 편인데 올해 루피시아의 아쌈 세컨플러쉬가 묘하게 맛이 진해서 평소처럼 진하게 우리면 맛이 향을 해치는 결과물이 나온다. 아쌈 특유의 구수한 향이 서빙팟 가득 넘쳐난다. 평소보다 연하게 우려서 그런지 어딘가 정갈해 보이는 수색이다. 한 모금 마셔보면 몰티함과 홍차의 발효향은 기본이고 풍미와 맛의 깊이가 좋다. 흔히 말하는 아쌈의 군고구마향이 꽤나 뒤에 후운처럼 입안에 불어오는 게 재미있다. 직관적인 아쌈이라고 하기엔 좀 느긋하게 즐겨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여유 있게 마시는 게 좋겠다. 딱히 다식을 가리지 않는 아쌈이긴 한데 기름진 티푸드와 곁들이기엔 연하게 여유 있게 마셔야 하는 느낌과 어울리진 않는다.
8g가량의 찻잎으로 100도의 물 250ml을 부어 2.5분 우려내고 우유를 부어준다. 스트레이트로 마신 차맛과 향이 그대로 보존되면서 물의 맛을 지워내고 우유가 좀 더 백상지 같은 깨끗한 베이스를 채워준다. 깊은 사골 같은 밀크티도 좋지만 때로는 맑은 육수 같은 밀크티도 차 고유의 특징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물론 이때는 차가 가지고 있는 장단점이 부각되기 때문에 이렇게 깔끔하면서도 밀크티 궁합이 좋은 차가 필요하다. 떡볶이처럼 강렬하고 진한 맛으로 주로 접해온 아쌈 밀크티를 깔끔하고 섬세한 파인다이닝 스타일로 즐길 수 있었다.
아쌈은 기본적으로 무게감이 있어서 마시고 나면 어딘가 차분해지고 기품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아쌈의 몰티함이야말로 홍차의 근본이라고 생각하는데 몰티함이 착즙 한 듯 느껴지는 게 아니라 품이 넓게 펼쳐지는 느낌으로 다가와서 한결 고급지게 느껴진 것 같다. 나호라비 다원이 만들어낸 여름홍차는 그렇게 높은 차원의 아쌈을 선보여줬다. 만족스러운 차였던 나호라비,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