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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롤로 Mar 01. 2019

#1. 다행스러운 동네, 성남시 태평동

누구나 저마다 살고 있는 동네가 있다

사진 한 장에 이끌렸다. 새로 맡게 된 코너에 첫 동네로 꼭 소개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비슷한가 보다. 우리 프로그램과 이름이 비슷한 프로그램에서 이미 소개가 됐었다는 걸 취재하면서 알게 됐다. 그런데 상관없다. 프로그램마다 성격이 있으니, 우리 방식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되는 거니까. 





성남의 진짜 모습을 간직한 동네

성남 하면 분당이나 판교 신도시를 떠올릴 수 있다. 화려한 빌딩이 숲을 이루고, 세련된 신도시의 분위기를 뿜뿜하는 곳을 말이다. 그런데 성남의 진짜 모습은 수정구 태평동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성남이 우리나라의 최초 신도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밀해소용 최초 신도시. 공업단지의 배후도시로 1962년에 울산이 개발됐다면, 성남은 수도권에서 가장 처음으로  개발된 곳이며, 국내 최초의 위성도시이다.

아직 이러한 곳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태평동은 성남 개발 당시에도 가장 먼저 개발된 지역이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신도시였던 이곳이 지금은 성남의 원도심, 구도심이 된 셈이다.


사실 이곳은 1970년대 서울 판자촌의 주민들이 강제 이주되어서 여기에 터를 잡게 된 거라고 한다. 마치 자로 잰 듯 바둑판 위에 집을 나란히 세웠는데, 이는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개발하기 위해서 집을 다닥다닥 붙여서 지은 게 아닐까 싶다.




분당선 가천대역 3번 출구

분당선 가천대역 3번 출구로 나오면 태평로로 이어지는 길을 갈 수 있다. 여기를 시작으로 오르고 오르다 보면 태평동에만 있는 언덕길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오르고,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자로 잰듯한 마을의 풍경을 담을 수 있다.


태평동 골목을 거닐다 보면, 낡은 간판들이 눈이 들어온다. 이는 동네의 시간을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젊은 세대들도 옛날 것, 레트로, 빈티지한 것들을 찾는 것 같다.


올해 서른이 된 나도 이러한 동네 풍경이 너무 좋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뛰어놀았던 동네가 생각이 나니까. 문방구를 했던 우리 집 간판 글씨도 저러했으니까.


이 동네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간판은 '공판장, 세탁소, 미용실, 떡집' 등이다.  


분명 오르막을 올라왔는데 저 멀리 또 언덕이 있다

이 동네는 걸으면 걸을수록 신기하다. 계속 오르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르다 보면 내리막도 있는데 그러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보통 오르다가 내리막이 보이면 넓은 대로변으로 나오게 되는데, 여기는 그런 법칙이 없다. 골목, 골목이 미로 같기도 하고 파도 고개를 걷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마을 공동체를 실현하는 '오픈 스페이스 블록스'

성남문화재단 마을 공간 조성사업의 일환인 '문화 예술 공동체' <오픈 스페이스 블록스>라는 곳이다. 비영리 단체이며, 미래지향 문화 플랫폼을 추구하는 곳이다.


매년 태평동 마을을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작년에는 태평동 말하는 지도, 에코커튼벨리 등 마을 주민들과 함께 문화 프로젝트를 했다.


이곳의 대표님은 문화 기획자로서, 그리고 남편 분은 지역 작가로 활동하고 계신다.


이날 작가님과 대표님 덕분에 동네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태평동에 대해서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가 '태평동에는 왜 점집과 떡집이 많은가' 였는데. 태평동에서 보이는 남한산성은 신령스러운 산이고, 그래서 일주일 단위로 그곳에서 큰 굿판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떡을 올려야 했고, 그러려면 떡집이 있어야 했던 것. 점집과 떡집은 상생관계였던 것이다.


15년 전만 해도 성행했던 떡집이 지금은 많이 떡집이 없어졌다고..


태평동에 오래 사셨던 분들은 한, 둘 돌아가셨고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는 떡집들만 남았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동네다.





태평2동 골목에는 명화 작품이


태평동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차로 이동하자고 하셨는데, 우리는 극구 동네를 다니며 촬영을 해야 한다고 걸어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끝에서 끝으로 걸어서 태평2동 주민센터 근처에 설치된 명화를 촬영했다.


태평동은 신기하게 지도를 보면 태평 1,2,3,4동으로 나뉘어 있지 않고, 순서가 태평 1,3,2,4 동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벽화가 아니라 지역 작가들이 직접 그린 명화를 담벼락에 걸어뒀다는 점이 신선했다.


예술 작품을 쉽게 접하기 힘든 어르신들 오고 가면서 유명한 작품을 감상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뜻있는 작가들이 모여 진행한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미술관에서 볼 법한 예술 작품이 동네 골목에 들어온 것이다.

오래된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 예술의 움직임이 반가웠다.





옥상에서 바라본 태평동 풍경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남한산성이고, 왼쪽에 아파트로 가려진 곳이 영장산이다.


태평동은 영장산 자락에 형성됐는데, 지금 아파트가 올라오면서 영장산의 시야를 가려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뭔가 자꾸 시야를 막는 느낌이었다. 태평동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었다.



처음에는 이주민들이 천막을 치고 살았다가 집의 형태는 시간이 흘러 단층 1층, 2층으로

그리고 지하를 두면서 3층으로 다가구 주택이 되었다고 한다.


다닥다닥 붙여 지은 집은 이웃의 옥상도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 보인다.





태평동만이 가진 골목 풍경

태평동의 명물, 이발관 / 아직 운영하고 계신다
재밌는 간판, 철학관이다
파도치는 골목길
하늘과 닿을 듯한 골목길

한때는 재개발 예정지였지만 무산이 된 곳이라고 한다.


오래된 동네에 어르신만 살 거 같지만, 청년들도 살고 있다.

드물지만 아이들이 동네에서 뛰어놀기도 한다.


최근에는 젊은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이사를 오기도 한다고.





사진관, 오늘

<사진관, 오늘> 역시 성남문화재단의 우리 동네 예술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사랑방이고, 동네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인 태평동의 사진관이다.



자료 찾는 과정에서 사진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을 봤는데, 어르신, 아이들 할 거 없이 사진관에 방문해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사진들이 너무 좋았다.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이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던 거다.


사람들이 오고 가며 들리는 곳이고, 여기서 동네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었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 태평동 사진관.


촬영 날에도 학원 가던 아이들이 사진관에 문이 열려 있어 들어왔다고 한다. 사진작가님을 기다렸다는 아이들.

여기서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게임도 한다고 한다.


이날 동네를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고, 그 소리가 정겹고 좋았다.



사진작가님은 태평동의 마을 모습은 물론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게 남긴다고 한다.


3면이 창문으로 된 사진관 안으로 들어오는 볕이 너무 예뻤다.


태평예술공공창작소 옥상





오래 남아 있길

이날, 11.2km를 걸었다. 발바닥도 아팠고, 땀도 흘렸는데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도 따뜻하고 친절했던 곳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삶의 다양성이 있다.

오래됐다고 낡은 것이 아니다.

오래된 만큼 남기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아직 이런 동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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