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눈이 얕게 덮인, 내가 사는 건물의 옥상에서 담배를 피웠다. 주황색이 옅게 섞인 조명들이 켜져 있고 샤워를 한 직후라 몸을 식히러 외투를 입지 않은 채 잠옷 바람으로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나는 혼자 서 있었다. 어린 시절 일본에 여행을 몇 번 갔었다. 겨울밤의 온천도 여러 차례 갔더랬다. 몇 번째 여행인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그 모든 일본여행에 대한 기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자연히 회상이 되었다. 향수가 느껴지는 어느 이미지가. 나는 커오면서 여행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성인이 되지 않을 줄 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살아오면서 내 인생의 다음 단계를 상상하지 않아 왔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중학생의 나를, 중학생 때는 고등학생의 나를, 고등학생 때는 성인이 된 나를 상상하지 않았다. 상상하지 않았으니 자연히 대비하지도 않았고, 또 미래에 대한 기대 또한 없었던 듯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은 계속 흘렀고 어느새 나는 이십 대의 후반에 접어들고 있다. 왜 그랬을까? 왜 나는 미래의 내 삶과 내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것은 인류가 자신들과는 차별시하는 맥락에서의 동물들과 같은, 여느 짐승과 같은 삶이리라. 하지만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내게 어린 시절의 정서 같은 것이 복기되었다. 아이였을 때는 난 참 여행을 좋아했더랬다. 낯선 곳, 새로운 장소, 신비로운 풍경과 그 밖의 내가 좋아하고 또 지금은 그 능력을 잃어버린,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과 함께 있다는 것.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 너무나도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온전히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 그런 순간들을 거치며 한 인간의 정서와 감정이 발달하고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나는 미래를 생각할 줄을 몰랐던 것 같다. 그럴 필요도 못 느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도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해 온 것 같다. 그러니 두 상태의 단점들만이 내게 남았나. 내 감성은 언젠가부터 뻗어가길 멈춰버린 듯하고, 미래를 대비하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나. 너무 이분법적인가?
어린 시절의 시간이 더디게 가고, 나이가 먹어갈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껴지는 것에 대한 이유가, 예를 들어 같은 1년이라 해도 두 살 배기 어린아이에게는 인생의 절반이지만 마흔 살 먹은 중년에게는 인생의 사십 분의 일 이기 때문이라는 그러한 개념이 우리에게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얼마나 타당한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러하다면 인류에게는 좀 불행한 일일수도 있으리라. 뭐 고통의 시간 역시 빨리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나쁘진 않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정서가 살아나는, 눈이 쌓인 겨울밤의 조명과 고요함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순간들 역시 어쩌면 미처 그것을 느껴보기도 전에 휙, 하고 지나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런 류의 생각 - 나는 그래도 이러한 알아채기 힘들다고 생각되는 우리네, 혹은 나만의 삶의 작은 조각 같은, 비밀이라고 여겨지는 생각들을 종종 떠올리곤 했는데 - 을 하는 것도 매우 오랜만인 듯하다. 요즘 참 바쁘게 지냈다. 무엇이든 간에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들도 참 작아져 온 듯하다. 언젠가 감정의 어느 부분이 고장 나 버려 인간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 된 것 같고, 염세적으로 변해버렸다. 그것이 진실에 가깝다고 믿게 되었고 사랑은 이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히 여겨 아끼는 마음, 끊임없는 물음, 결심하는 것. 그래도 못 배우진 않았다. 노력하는 것이 내겐 참 힘들다. 그렇게 태어난 건지, 기질이라는 것.
정말 오랜만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해서 쓴 글인데 흠. 앞으로도 종종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브런치가 이런 글을 올리는 플랫폼이 맞나 싶긴 하지만.
23.12. 25.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