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날이다. 새벽이지만, 한낮의 무더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상의는 이미 홀라당 젖었고, 아랫도리도 땀으로 물들고 있었다. 산성산 깔딱 고개에서 그를 만났다. 얼추 봐서는 일흔은 된 것 같았다.
“능선에는 바람이 좀 있던가요?‘
”바람은 왜? “
”이런 날에는 바람이라도 조금 있어야 등산할 수 있으니까요. “
노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덧붙였다. 바람을 찾는 진짜 이유를 말해보라는 거다. 새벽부터 바람을 찾아 헤매는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고향 B-612 별에는 간절히 원하는 진짜 이유를 알아야 대답을 해 줘. 나는 B-612 별에서 지구로 여행 온 어린왕자야.“
”어린왕자? 그 별은 평균 수명이 어찌 되길래 어린왕자라고 하는지요? “
”지구인의 모습으로 보면 그리 보이겠지. 하지만 우리 별에서는 나는 아주 어린왕자야. 자 그럼 다시 묻지. 바람을 찾아 나선 진짜 이유가 뭐야? “
”계속되는 열대야에 지쳐있는 데다 새벽에 잠을 깼지만 다시 잠들기 뭐해서 산으로 나온 거지, 특별히 바람을 찾아 나선 건 아닙니다. “
”아니야. 그대의 내면을 들여다봐. 틀림없이 바람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
노인 – 다른 별에서 온 어린왕자라고 주장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그런 노인으로 보여서 – 의 다시 재촉하는 소리를 듣고서 순간 어린 시절 여름이 떠올랐다.
시골서 비교적 큰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던 우리는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에 대구로 이사를 왔다. 당시 대구서 직장생활을 한 아버지를 따라서 시골 생활을 정리한 거다.
시골서 나름 똑소리 나는 아이였지만, 촌놈의 대도시 적응은 쉽지가 않았다. 특히 처음 맞는 대구의 여름은 너무나 힘들었다. 고향 의성의 여름은 그야말로 온갖 재미가 달려있는 시간이었다. 더우면 마을 앞 냇가로 달려가 뛰어들면 되었고, 배고프면 수박, 참외 서리 같은 모험을 즐기면 그만이었다. 서리를 하다가 들키더라도 꾸지람 한 번이면 끝이다. 서리에는 밭주인의 아이들이 반드시 끼여 있는 데다, 대부분 밭이 아재와 당숙 같은 친인척의 소유여서 그야말로 철없는 아이들에게는 꿈같은 무대였다. 자연히 시골 아이들의 무더운 여름은 가장 기다리고 설레는 계절이었다.
도시는 완전히 달랐다. 특히 여름밤은 너무 힘들었다. 우리 가족은 5촌 고모네의 좁은 집으로 이사 왔다. 2층은 고모네 가족 7명(고모 부부와 5남매)이 생활했고, 1층은 우리 가족의 생활 근거지였다. 그것도 앞에는 가게가 있는 단칸방에 3형제와 부모님이 함께 생활해야 했다. 이 집은 특히 답답한 구조였다. 앞은 가게여서 각종 상품으로 가득했고, 뒤쪽은 전학 온 초등학교의 높은 담장으로 꽉 막힌 집이었다.
당연히 여름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집이다. 바람을 느끼려야 느낄 수 없는 구조의 집이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던 시절, 여름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푹푹 찌는 여름이 극성을 부린 어느 날이었다. 방에서 엄마 아버지와 함께 잠자던 나는 도저히 더워서 잠잘 수 없어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평상과 돗자리를 깔고서 형들과 누나들이 잠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모네 6촌 형들과 누나(고모네 막내딸은 나보다 어린 동생이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2~10살 정도 많다)와 우리 형 두 명 등 모두 6명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형들과 누나 틈에서 자기 위해 평상에 앉았다. 그런데 ”너는 여기서 자면 안 된다. 내려가 외삼촌(우리 아버지)하고 자라“고 6촌 형 가운데 한 명이 말했다. 그러자 우리 큰형도 좁아서 자기 힘드니 내려가라고 했다. 서열에 완전히 밀린 나는 끽소리도 못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엉엉 울었다. ”형들과 누나들이 옥상에서 못 자게 한다 “고 떼를 쓰면서.
그 후론 고모네 옥상에 관한 기억이 없다. 아마도 형들과 누나들의 위세에 눌려 아무리 더워도 옥상으로 탈출을 꿈꾸지 못한 것 같다. 고모네에서 3~4년은 더 산 것 같지만 여름 옥상의 기억은 이상하리만치 하나도 없다. 아마 가슴속 응어리만 가진 채 여름이면 한 점의 바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인의 말처럼 어쩌면 나의 내면에는 여름이면 바람을 찾아 헤매는 기질이 있는지도 모른다. 한여름 단체로 연수나 여행을 가면 항상 잠 못 들고 밖으로 나와서 무작정 홀로 걷는 게 다반사다.
오래전 교회에서 문경으로 여름성경학교를 간 적 있다. 리조트 커다란 방에 많은 어른이 어울려 잠을 잔 적이 있다. 한두 시간 자지도 못하고서 깨었는데, 도저히 다시 잠들 수 없어 새벽에 무작정 문경새재를 걸었다. 새재의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걷다가 3 관문을 지나 폭포 밑을 지나는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떨어지는 폭포 물의 시원함이 준 선물이겠지만, 그 순간 서늘하게 분 바람과 어울린 탓인지 온몸에 닭살이 돋는 오싹함이 나를 감쌌다. 더 이상 나아가지를 못했다. 혼자 룰루랄라 문경새재의 새벽을 즐기던 그 기세는 온데간데없어진 거다. 그 새벽은 새재 길을 내려와 주차장 주변만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직장에서 연수를 가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직장 연수는 비교적 쾌적한 호텔방에 2명이 사용했지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건 역시 같았다. 새벽에 홀로 나와 호텔 주변을 달리거나 걸었다. 항상 방을 함께 쓴 파트너로부터 새벽에 어디서 찬 이슬을 맞았느냐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노인은 이런 내 과거를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아픔이 있었으니, 한여름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바람을 찾아 헤매는구먼. 산 능선에는 시원한 바람이 꽤 불고 있으니 걱정 말고 올라가게 “라고 했다.
헤어져 깔딱고개를 올라서려는데, 노인이 다시 말을 걸었다.
”전망대에서 체조하는 두 여인은 왜 다른 장소에서 체조를 하지? 싸운 겐가? “
나도 전망대를 올라오면서 새벽에 각자 따로 체조하는 두 여성을 보고서 궁금해 물었다. ”두 분이 싸웠습니까? 새벽에 왜 따로 운동을 하시는지요? “라고 했더니 ”싸우기는 뭘 싸워. 저 친구는 편안한 데크에서 체조하는 걸 좋아하고, 나는 커다란 소나무 밑에서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아서 그렇지 “라고 대답했다.
노인이 어떻게 이 것을 알지 하고 돌아서서 대답하려는데, ”내 B-612 별에서 두 여인이 왜 따로 새벽을 맞는지 궁금해서 왔다네 “라고 말했다.
”싸우기는 뭘 싸워요. 두 분의 생각이 달라서 그런 거지요. 한 분은 편안한 나무 데크에서 체조하는 게 행복하고, 다른 한 분은 소나무 밑에서 피톤치드를 맛보며 운동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지요. “
”지구인들이 이렇게도 철학적이란 말인가? “
”각자 취향에 따라 운동하는데, 거기에 왜 철학을 이야기하는지요? “
”그대는 진정 이 의미를 모른다 말인가? 한 여인은 ’ 인위의 행복‘을 아는 사람이고, 다른 여인은 ’ 무위의 즐거움‘을 아는 철학자란 말일세. “
노인의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깔딱고개를 올랐다. 개뿔 철학은 무슨! 그저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서 각자가 좋아하는 걸 취할 뿐인데. 깔딱고개를 넘어서면 ’시원한 바람이 있을 거‘라는 노인의 얘기는 엉터리였다. 산성산 능선 어디에도 바람이 없었다. 마치 답답한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때 어디선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분명 들렸다.
”세상은 단순히 보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찾는 자에게는 새롭게 다가오네. 두 여인의 모습에서 철학의 의미를 찾고, 바람 없는 능선에서 바람길을 찾을 수 있는 자라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