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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핑크 Sep 02. 2024

오늘은 따점할게요.


"팀장님들은 다 혼자 다니시네요?"


지하 사내 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사무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연히 만난 다른 부서 실장님이 질문을 던졌다.  같이 점심식사는 하지 않았지만 내 옆에는 옆 팀 팀장님 몇 분이 함께였다.


최근에는 개인적인 일로 문서 정리를 해야 할 일이 있어 사람들이 우르르 점심을 먹으러 갈 때 자리에 남아 개인 업무를 30분 정도 하고, 팀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 밥을 먹으러 내려가는 시간차 점심시간을 이용하고 있던 참이었다.


회사생활 20년 차가 되어가는 다른 부서 실장님 역시 혼자 점심을 먹고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 질문 속에는, "그게~ 우리가 다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게 아니겠어?"라는 소리 없는 뒷문장이 들리는 듯했다.


팀원들이 상사와의 점심을 불편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혼자만의 시간으로 여유를 찾고자 하는 두 가지 마음이 혼재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질문을 받고 서로가 눈을 맞추며 말없이 미소만 띠고 각자 자기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10년 전,  라떼 시절만 하더라도 따로 먹는 점심은 눈총거리가 되기도 했다. 상사와 함께 가는 점심시간. 모두가 같이 움직여야만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 같은 느낌. 함께해야만 팀워크를 해치지 않는 일로 여기던 문화가 있었다.  사내 식당이 없던 시절에는 식당을 정할 때도 여러 사람 눈치를 봐야 했다. 차라리 누가 정해준 곳으로 따라가면 마음이 편한데 하필 나보고 메뉴 정하라고 하는 날은 더 어려웠다. 내 한마디로 10명의 점심 메뉴가 결정되는 순간에 개인 취향만을 주장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월화수목금 비슷한 메뉴가 로테이션되면서 조금 식상해질 때쯤에만 새로운 곳을 제안하면 되었다.


그런 시절에도 계속 따로 점심을 사람들을 종종 보곤 했다.  대부분 성격도 그렇게 활발하지 않은 데다가 다른 사람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계속 따점을 한다고?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부류로 취급받는 불편한 시선을 나도 던진 적이 있다. 나약한 신분이었던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팀원들과의 친목을 다진다는 목적으로 선호한 부분도 일부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리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 중의 하나였음을 고백한다. 시간이 흐르고 보면 그랬던 나나 안 그랬던 그 사람이나 다 잘 살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2020년 즈음 코로나가 오면서 따로 먹는 점심 문화는 더욱 당연한 분위기로 변화되었다. 몸에 약간이라도 이상증세가 느껴진다면 같이 점심을 먹는 것을 꺼렸다. 멀쩡한 상태더라도 같이 먹는 것은 서로에게 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불편한 상상을 해야 했다. 사내 식당에는 모두의 안위를 위해 대화 금지 포스터와 함께 투명 칸막이가 설치되었다. 공기 중에 퍼져있는 비말은 어찌할 수 없다는 가정 하에.



2024년이 된 지금까지 사내식당에는 여전히 투명 칸막이가 있다. 투명 칸막이는 혼자라는 외로움을 상쇄해 주면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당연함, 단절된 대화에 대한 죄책감을 가려주는 도구가 되었다. 마주 보는 사람이 있지만 대화는 하지 않는, 어색한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화젯거리를 궁리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다.


식사는 같이 하러 내려가지만 식사 시간 동안 대화는 하지 않는다. 사람은 많지만 공용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점심시간이다. 자연스럽게 투명 칸막이 안에서의 점심은 같이 있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된다. 각자 휴대폰을 들고 유튜브나 게임, 웹서핑을 하며 식사를 한다.  칸막이가 만들어낸 환경이 이상하면서도 편하기도 한 아이러니한 상황. 같이 먹는 점심이나 따로 먹는 점심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


식사시간에 대한 의미도 과거와는 많이 변해서 점심시간이라기보단 개인 시간의 의미가 크다. 식사를 하지 않고 운동을 하러 가거나 자리에서 게임을 하거나 개인일을 보거나, 식사의 개념을 뛰어넘은 지도 오래다. 그렇기에 점심시간으로 불리는 1시간은 각자에게 소중하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조차 때로는 개인의 시간을 빼앗는 느낌이 들어 같이 카페에 가서 테이크아웃만 하고 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면 최소 20분 정도는 개인 시간이 생기니까.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 주는 문화가 생겼다.



"저는 오늘 일이 있어 따점이요~"

이렇게 메시지가 오면 오히려 소통이 잘되고 있구나 생각도 든다. 그냥 말없이 쓱-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인데 점심에 같이 내려가지 않는 본인의 상황을 알린다.


이제 점심시간에 개인 일을 할 필요는 없어, 다시 팀원들과 같은 시간에 점심을 먹으러 내려갈 것이다. 사무실에서 식당까지 가는 아주 짧은 그 길을 가는 동안 일 이야기를 이어서 하기도 하고 개인 근황을 나누기도 한다. 비록 식사 중에는 대화를 하지 않거나,  개인의 일로 비우기도 하는 점심시간이지만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며 팀워크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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