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블루」, 1997
쉴 틈 없이 터져대는 플래시와 쌓이는 꽃다발! 수많은 꿈나무들의 워너비이자 세간의 관심을 휩쓰는 한 세대의 아이콘. 이토록 시대를 아우르는 셀러브리티들의 황금빛 연예계 생활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또 극소수의 스타를 위해 움직이는 거대한 산업은 수많은 부가 가치를 창출했으며 고대 그리스어에서 출발한 단어였던 아이돌(Idol)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가장 큰 산업 중 하나가 되었죠.
더 청명하게, 더 길쭉하게, 더 순수하게. 마치 피규어를 매일같이 닦듯 그 생그러움을 유지하며 활동하는 스타들의 표정, 립스틱, 선글라스, 드레스, 귀걸이, 차, 집, 배우자, 가족, 몸매, 눈동자…. 모든 이의 열망을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평생의 염원일지도 모릅니다.
정신을 무너뜨리는 모욕과 우울감, 도파민 과다와 부족의 반복을 견뎌내며 삶 구석구석을 관음 당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겠죠.
1997년 세상에 등장한 곤 사토시 감독의 장편 데뷔작 「퍼펙트 블루」입니다. 이미 명작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거니와 최근에는 4K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세기말 일본 사회 속 연예계의 그림자를 조명하는 본 작품은 모든 프레임을 수작업으로 그린, 고전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질감과 분위기로 호평을 받았으며 무엇보다 천재 감독 곤 사토시의 미친 스릴러 연출을 유산으로 남겼죠.
「퍼펙트 블루」는 미소녀 아이돌 '참'의 멤버였던 주인공 '미마'가 소속사의 요구로 배우로 커리어 전환을 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작품인데요.
다만 물줄기의 방향을 바꾸기는 너무 어려운 법. '아이돌 출신 배우' 미마를 시험하듯 업계는 그녀의 정신을 날로 마모시키고, 동시에 배우가 아닌 순수한 아이돌 미마를 동경했던 끔찍한 스토커, 미마니아의 압박 역시 숨통을 조여옵니다.
과연 우리의 미마는 세기의 여배우가 되어 성공해 낼 수 있을까요?
* 본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와 불쾌함을 유발하는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미마는 아이돌 그룹 '참'의 멤버입니다. 아름다운 미모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이미지. 인기 멤버이기까지 한 그녀였지만 소속사는 점점 시들해지는 반응을 이유로 미마를 아이돌이 아닌 배우로 재데뷔시키려 하는데요.
때문에 미마는 반강제로 아이돌을 은퇴함과 동시에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오랜 매니저였던 루미도 이를 반대했지만 어른의 사정 앞에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달리 없었죠.
한 편 미마의 은퇴를 반대하는 이는 또 있었습니다. 이름은 우치다 마모루, 속칭 '미마니아 (MIMAnia)'라는 중증의 정신병자 스토커.
배우 미마가 아닌 아이돌 미마를 원했던 그는 살해협박, 폭탄테러, 스토킹과 도촬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망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내가 아이돌 미마를 구해야 한다'는 결단을 내리기에 이릅니다. 배우 행세하는 가짜 미마는 없애버리자.
동시에 소속사의 사장 타도코로는 미마를 배우로 전향시킨 후, 미마를 키워달라는 명목으로 수위 높은 강간 씬이나 누드사진집 등을 진행하며 그녀를 완전히 상품으로 전락시켜 버리죠. (죄책감을 느끼긴 하지만)
이러한 압박감에 정신착란이 나날로 심해지던 미마는 급기야 자신이 촬영하던 다중인격 스릴러 드라마와 현실을 혼동하기 시작하고, 미마니아가 운영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미마의 방' 사이트를 접한 뒤로는 환각을 보기까지 합니다.
급기야 상황은 미마의 누드사진집을 촬영했던 사진기사, 강간 씬을 연출했던 각본가가 차례로 미마니아에게 살해당하며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미마는 스토커 미마니아가 자신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는데요.
영화의 클라이맥스, 극심해지는 정신분열과 혼란, 모호해지는 현실의 경계 속에서 허우적대던 미마는 천천히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미마니아를 마주하게 되고 사투를 벌이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빛나지만 길을 밝혀주는 건 없는 도시. 모든 게 끝난 뒤 그녀는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매니저 루미의 차에 탄 채 아직 넋이 나간 채로 서글픈 표정을 짓는데요.
미마의 방으로 갈게.
- 루미
하지만 조명이 비추는 진실이자 작품의 큰 반전은 따로 있었으니.
「퍼펙트 블루」는 불쾌한 영화입니다. 현대 사회의 기술 의존성과 인간성의 충돌을 날카롭게 조명하는 방식인 블랙 미러 기법(Black Mirror)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그 불편함을 극대화시키는데요.
작품은 의도적으로 거울, 텔레비전, 포스터 등을 등장시켜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를 스크린 속의 또 다른 스크린으로 바라보게 유도하거나, 장면 곳곳에 미마의 심리를 대변하는 메타포를 넣는 연출을 보여줍니다. 이는 작품 내・외적인 부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작품 내에서 미마는 스타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고,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에게는 그 사각지대가 더 짙기 마련이죠.
누구나 미마를 알고 있지만 그녀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은 언제나 텔레비전, 잡지, 카메라 앵글 속일 뿐. 그녀를 '진짜로' 잘 아는 사람은 얼마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언제나 대중들은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의 사각지대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들의 습관, 사랑, 심리, 심지어는 은밀한 사생활까지 탐닉하고 싶어 하는데요.
작품이 주는 불쾌감은 이 부분에서 출발합니다.
미마의 사각지대를 향한 침입을, 또 다른 사각형의 스크린으로 방관하기만 해야 하는 상황. 미마가 '나'를 숨겨둔 타인과의 여집합이 찢어지고 왜곡될 때마저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미마가 키우던 물고기를 생각해 봅시다. 그녀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던 방에 있던 어항. 그 속의 물고기는 미마가 지키려고 했던 자아, 영혼 등을 상징하는데요.
물고기는 숨조차 쉴 수 없는 바깥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안전하게 보존되는 듯 싶…지만, 중후반부 미쳐가는 미마의 상황을 대변하듯 물고기는 어느새 죽은 채 어항 속을 떠다닙니다. 이유도, 가해자도 명확히 알 수 없도록 유린당하고 죽어가는 그녀의 영혼과도 마찬가지인 것이죠.
이는 언제나 투명한 유리 렌즈 속으로 얼굴을 비추고 있지만, 모순적으로 그녀가 얼마나 의지할 곳 없이 단절되어 있는지를 표현하는 장치입니다.
또한 곤 사토시는 작품 속 여러 곳에 선명한 붉은색을 넣으며 미마의 심리, 관객의 불안감 등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미마는 매니저 루미와 집에서 커피를 마시다 들고 있던 잔을 부순 뒤 흐르는 피를 보며 말하는데요.
이 피는 진짜일까?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하는 방송과 세트장에서, 붉게 흐르는 피는 가장 거부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잘 나가는 스타가 인터뷰를 하던 도중 피 섞인 기침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작품은 이러한 선명한 붉은색의 오브젝트를 끊임없이 배치하며 관객의 불안감을 유도하고 마치 '방송사고'가 터진 듯 서사에 갑작스러운 변주를 주는데요.
처음 볼 땐 캐치하기 어렵지만, 2회 차를 하다 보면 이 색깔 하나로 이미 작품의 반전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 역시 알 수 있습니다.
작품의 외적으로는 당시 엔터 업계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성인, 미성년자 할 것 없이 만연해있던 누드 사진집이라던지, 소속사의 수익을 위해 마치 봉제인형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사람들.
오늘날 다시 역주행한 이 영상의 주인공도 야쿠자의 강압에 의해 혹사당했다는 말이 떠도는 것을 보면, 화려한 시대에 가려진 그림자가 꽤 짙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80년대를 거쳐 폭발적으로 증가한 미성년자 성인물이 무려 90년대까지 지속되는 등 그 음지가 오래도록 자리를 잡았었는데요.
AV 배우 출신 탤런트 이이지마 아이의 자서전, <플라토닉 섹스>에서는 이런 문장이 있죠.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세계는 나를 소비했고, 나는 살아남기 위해 팔렸다
따라서 우리는 그 시대를 경험했든, 경험하지 못했든 「퍼펙트 블루」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괴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 부정적인 여론에 시달려 깊은 우울감에 빠지거나 엔터테이너로서의 커리어가 '나'의 삶을 망치는 등 가깝지만 익숙지 않은 얘기들이 가득한 작품인 것이죠.
나는 혼자 있을 때 진짜 내 모습이 나온다
라고 말하던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사실 우리라고 크게 다른가요? 우리는 타인과의 여집합 속에 '나'를 숨겨두고 살아가는 존재들이잖아요.
사각지대를 궁금해하면서도 그곳을 발견하기보단 채워 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결국 미마를 인형처럼 사용하며 사각지대를 침투하는 다른 인물들의 시선, 욕망 때문에 그녀는 정신착란을 겪으며 서서히 무너져갑니다. 이는 호접지몽을 연상케 하는 곤 사토시 감독의 천재적인 연출을 통해 결과적으로 스크린 너머의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죠.
이는 「퍼펙트 블루」의 작품성을 크게 끌어올린 요소이기도 합니다. 스크린 속을 눈으로 헤집던 우리는 덩달아 미마의 불쾌한 망상에 이입하며 대체 뭐가 뭔지, 뭐가 맞고 틀린지 헷갈리는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퍼펙트 블루」는 히치콕의 「사이코」 만큼이나 훌륭한 사이코 스릴러 명작입니다. 취향에만 맞는다면 작품이 주는 불쾌함의 긍정적인 여운에 젖을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 작품 내내 미마, 관객 모두를 압박하다 마지막에 주는 거대한 반전은 충격적인 엔딩 시퀀스와 맞물려 정말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또 작품에 전반적으로 깔린 사건들은 곧이어 현실에 가까워지는 듯합니다. 네모난 휴대폰 화면 속에 자신만의 사각지대를 하나씩 만들어두는 사람들. 그 속에서는 '익명'이라는 구실로 희미해진 죄의식이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죠.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양극화, 작은 휴대폰 화면 속 SNS 너머로 보이는 크디큰 열등감.
앞서 언급했듯 시대를 아우르는 스타들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화면 너머에서 웃고 있는 그들이 광대로 느껴지든, 우상처럼 느껴지든 화면의 안과 밖에서 '나'를 지키려는 그들의 발버둥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연예'의 '연'은 '연기하다'라는 뜻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셨나요?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 평생 연예생활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얼굴을 비추는 화면과 활동 중단 위기에 놓인 '나'.
수많은 구설수와 내 빛나던 과거를 강요하는 스스로를 이끌다 보면 우린 벌써 다 왔습니다. 다음 스케줄에 가야 할 시간입니다.
곤 사토시의 20세기 명작, 「퍼펙트 블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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