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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꼭 [굿뉴스]는 아니야

굿뉴스 (2025) — 리뷰 & 해석

by 사각예술

Music | 2025.11.10 Edited by 사각예술


IE003154594_STD.jpg 직접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

강남대로에서의 일이었다.


철갑상어같은 차들이 10차선 도로 위에서 미끄러졌다. 마치 상류가 흐르듯 급박하지만 순조롭게, 클락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행진. 오히려 가만히 걷던 인도 위 사람들을 위협한 것은 도로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시위였다.


그들은 무언가에 울분을 터뜨리며 분노하다가도, 신나는 댄스음악을 틀으며 자기들끼리의 결속을 단단히 했다. 펄럭이는 깃발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진실, 혹은 진실을 밝히자는 문구들이 쓰여 있었다.


내 앞에 바삐 걷던 사람들 중에는 덩달아 언성을 높여 전화하는 이도 있었고, 이어폰으로도 모자라 두 손으로 귀를 덮은 이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너머로 벌어지는 시위를 바라보며 걸었다.


무슨 말을 하려나, 들어보려 하면 스피커에서 찢어지듯 날아드는 음악의 베이스가 포탄처럼 쏟아졌다. 그러던 중 나는 고개를 내리자 바로 눈앞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정확히는 발 앞.


마치 인간사회를 돌아다니는 갑충처럼, 그는 바퀴 달린 나무판자에 의지해 기어 다니며 사람들에게 구걸을 했다. (내가 갑충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행색이나 개인적인 선입견이 아닌 '사람'을 실수로 밟을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돈을 달라'고 했는지, '도와달라'고 했는지는 시위대의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목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난 것을 보면 아마도 죽을힘을 다해 외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시위대가 하는 말들이 모두 진실이거나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 나는 구걸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트릭을 써 장애를 가진 척 연기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오로지 명확한 것은 두 쪽 모두 자신이 처한 사실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원통해 길거리로 뛰쳐나가 목청을 터뜨려야만 했던 사실. 너무 가난해 길거리로 기어나가 목청을 터뜨려야만 했던 사실.


나는 시위대의 말을 애써 경청하지 않았고,

발걸음을 멈춰 구걸하던 사람에게 돈을 주지도 않았다.


무슨 마음으로 그랬을까? 알 게 뭐야.

'사실'은 난 길에 서있기엔 너무 추웠고 가진 돈이 없을 뿐이었다.


_pOcgcnYvkVaGNR0vy7B1S9ZNQxGj3-v8Nutaz6sFNT8v_tB_-4IDLTxdc7x1QnJxzshUgpsMf5U8XRkILkveA.jpg 꿀잼

굿뉴스 (2025)

— 변성현 감독 / 설경구, 홍경 외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이자 최근 잇따라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 [굿뉴스] 입니다. 1970년 일본의 급진 공산주의자들이 일본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향하려 했던 요도호 사건이 모티브가 된 블랙코미디 시대극인데요.


공교롭게도 영화를 보기 전날 강남대로에서의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기도 했고 그 당시 단편적으로 축소되어 느껴졌던 세상의 모습과 영화의 주제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기에 서론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스크린샷 2025-11-22 오후 4.09.04.png 우두머리 덴지와 어린 조직원

[굿뉴스]는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공포, 이념의 대립, 피지배에 대한 분노 등 여러 국가적 문제를 소재로 삼은 수많은 영화 중 하나인데요. 그러나 그 속에는 애덤 맥케이 감독의 [돈 룩 업]처럼 심오한 주제와 철학이 실소를 자아내는 코미디와 어우러지며 알찬 고봉밥 같은 감상을 주는 듯합니다.


이런 한국영화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이동진 평론가 (★★★★)


지금 당장, 여러분에게 가장 큰 '뉴스'는 무엇일까요? 좋고 나쁨을 떠나서요. 남북통일? 북한의 패전? 세계의 평화? 일본의 사과? 아니면 — 달의 뒷면?


*영화 「굿뉴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목차 ¬

I. 아무

II. 합리화의 동물

III. 배드 뉴스



시놉시스

평화로운 어느 날, 한 일본의 여객기에는 9명의 수상한 일본인들이 탑승한다. 그들은 '내일의 죠'라는 이름의 급진 공산주의 테러리스트. 내일의 죠는 비행기를 납치해 평양으로 가 군사기지를 건설하겠다는, 단체명만큼이나 만화적인 일을 벌인다.

고위층이나 특정한 타깃이 아닌 불특정다수를 향한 테러에 대응법이 전무하던 시절. 일본은 전대미문의 테러사건에 어쩔 줄 모르고, 미국과 소련은 자신의 '아우들'을 장기말로 내세운다.

북한은 자신들의 유토피아로 넘어오겠다는 내일의 죠를 반기고, 한국은 일본에게 으스대고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여객기를 어떻게든 김포에 착륙시켜 이 테러를 진압하고자 한다.

비행기는 뜨고 착륙할 뿐이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과정이 있기 마련. 이 작전에 사활을 건 국가들과 인물들에게도 각자의 '굿'과 '배드' 뉴스가 도착하기 시작한다.



I

아무

인물들에 대한 고찰


원래 인생은 토사구팽
달면 삼키고 쓰면 부패

「Jvcki Wai - GG」


1758076380902N0Snv.png 참 얄미운 캐릭터

토끼가 죽으면 개가 삶긴다. 영화 속 인물들의 내면 갈등은 모두 이 토사구팽을 피하기 위해 벌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고명과 아무개부터 중정부장까지, 이는 공산주의 단체 "내일의 죠"가 지적한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가장 손실이 적은, 즉 값싼 인간은 쉽게 버려진다.


주요 인물인 아무개(설경구)는 홀연히 나타나 사건을 설계하고 사라지는 제삼자의 시선을 가진 존재입니다. 영화는 그를 마치 관객과 닮은, 세상 속 외로운 인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 역시 토사구팽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작품은 역설적으로 관객을 닮은 인물을 통해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요.


스크린샷 2025-11-22 오후 4.11.10.png 호형호제하는 듯한 둘이지만 사실은 주종관계였다

6.25 당시 북한군 포로였던 그는 중정부장 박상현의 아버지에게 거두어져 해결사로 살아갑니다. 아무개는 거의 나우유씨미급 해결 능력을 자랑함에도 신분을 말소당한 채 목줄이 채워진 개처럼 살아가는 인물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가치가 꼭 값과 동일시되진 않기 때문입니다.


초반부 떡밥으로 던져지는 아무개의 소원 역시 다름 아닌 새로운 신분이자 '이름'을 얻는 것이었는데요. 개는 스스로 이름을 지어줄 수 없습니다. 비싼 개가 되기보단 가치 있는 인간이 되려는, 앞서 지적된 자본주의의 토사구팽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겠죠.


스크린샷 2025-11-22 오후 4.12.03.png 서고명

또 다른 주인공 서고명(홍경)은 아무개와 정반대의 캐릭터입니다. 그는 번듯한 직업과 업적을 가진 엘리트 국제 군 관제사로, 이름대로 출세욕이 강하다는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서고명의 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로, 아군의 수류탄에 의해 두 다리를 잃은 채 제대했는데요. 목숨을 걸고 싸워 살아남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무너져가는 천막집과 미래가 불투명한 아들. 그리고 대통령 시계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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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류탄을 던진 우리 중령님은 훈장을 받으셨지. 나는...

서고명 父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의 말에는 가치가 있으니까요.

서고명


고명이 어릴 때부터 무의식 중에 출세욕을 키워오도록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집안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대통령 시계였을까요? 아니면 아버지의 시계 빼곤 모두 빛바래가는 작은 소년의 세상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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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번쩍

당시 기준으로도 상위 1% 엘리트였던 그는 비행기를 납치한 테러리스트들을 속여 착륙시켜야 한다⋯라는 코미디 영화 같은 작전에 반 강제로 참여하게 됩니다. 실패하면 중죄, 성공하면 출세가 걸린 상황이죠.


극한의 상황에서도 서고명은 그 스펙답게 위기를 헤쳐나가지만 아무개와 마찬가지로 뭔가 꼬일 때마다 책임과 질타는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윗대가리들은 채찍질만 계속하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됩니다.


이후 아무개의 기지로 작전을 성공시켜 인질들을 구한 뒤에도, 정부는 '국익'을 위해 개입 사실을 숨기려 하죠.


미국이 소련하고 좀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냉전 종결)
우리가 북한과 각을 세우면 (북한과 으르렁대면) 미국이 좀 그렇잖아.
그래서 우리 정부가 개입한 사실은 없던 걸로.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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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러지 마

허무와 분노에 휩싸인 고명에게 아무개는 무언가를 던집니다. 고명의 아버지가 받았던, 번쩍거리는 대통령 시계. 이는 국가를 위해 분투했지만, 주인의 이름이 쓰인 목줄을 받은 개와 같은 운명을 상징합니다. 그의 아버지처럼요.


비밀 유지를 구실로 국가로부터 목숨을 협박당하게 된 고명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 이미지의 대조가 분명해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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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진실을 만나다

이처럼 현실 속 수많은 인간들은 사회 시스템 안에서 이름 없는 개처럼 기능합니다. 목표와 이상을 위해 발버둥 치지만 결국 토사구팽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뿐이죠. 서고명 역시 진급과 훈장에 집착하다 양심을 저버리고, 뒤늦게 깨닫지만 끝없는 공포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반복되는 ‘파양’의 장면은 관객에게 헛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서글픈 공감을 남기는데요. 그것이 국가의 희생자여도, 구국의 영웅이어도, 결국 우리 모두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등장인물이 그저 한번 사냥에 쓰이고 버려질, 아무 개였다는 텁텁함을 뒤로한 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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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합리화의 동물

이념과 이면



스크린샷 2025-11-22 오후 4.20.14.png 이곳은 세상의 뒷면일까? 화면 반전을 활용한 연출
뒷면이고 앞면이고 나발이고, 달은 달이야.


세상은 세상입니다. 세상의 이면에 대단한 진실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허상은 아닙니다.


본 글의 제목대로, 진실이 꼭 '굿 뉴스'는 아니니까요.


우리는 평생 달의 뒷면을 직접 볼 수 없듯이,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보는 달이 불완전한 달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삶에서 이해할 수 없이 벌어지는 사건들. 개인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외압과 '분노'에 너무 쉽게 패배하는 나약한 정신.


스크린샷 2025-11-22 오후 4.18.28.png 세리자와 행님..

우린 그 공허함과 괴리를 메꾸기 위해 달에,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진실을 찾아 헤매곤 합니다. 내 가려운 곳을 긁어줄 명쾌한 해답을 찾는 것이죠. 그런 걸 아무나 찾을 수 있었다면 인간은 진작에 해탈하여 모든 근심을 없앨 수 있었겠지만요.


즉 뒤를 잇는 아무개의 대사는 이 모든 촌극의 한 줄짜리 해설과도 같습니다.


네가 한 행동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


아무개가 서고명의 이름을 따라 최고명이라는 신분을 원한 것도 자신만은 너의 영웅담을 기억해 주겠다는, 모사꾼이 가득한 세상에서 영웅의 이름을 골라냈다는 의미로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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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의 말대로, 인간의 지독한 본능이자 또 지금까지의 인간 문명을 이어올 수 있었던 전략이기도 합니다. 좋게 말하면 실존주의적 사고방식, 조금 단순화하자면 합리화죠.


서고명이 번쩍이는 대통령 시계를 보며 나지막이 읊조리는 말.

그래, 달은 달이야.


그는 어딘가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조금은 이해한 듯한, 체념인지 안도인지 허무인지 알 수 없는 씁쓸한 실소를 내보이며 말합니다. 인간은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외압에 맞닥뜨리며, 그 괴리를 메꾸기 위해 끊임없이 진실을 찾고 합리화를 합니다. 마치 도박 중독자가 손실을 보아도 다시 복구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는 것처럼요.


스크린샷 2025-11-22 오후 4.10.07.png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

대적자로 등장하는 내일의 죠 일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라는 이상을 위해 우두머리인 덴지에게 복종하며 잠시 독재를 택하는가 하면 유토피아를 향한 길에는 자결을 염두하는데요.


너희들이 여기서 인질들을 죽이고 자폭하면, 무슨 의미가 있어?
↪ 세상이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보게 되겠지.


자신들의 테러가 뭔가 의미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합리화. 또 그걸 세상이 보고 동조해 줄 것이라는 합리화. 자신들이 틀렸음을 확인하는 것 대신 죽음으로 무마하겠다는 합리화.


그들의 무기와 폭탄이 가짜였으며 사실 승객들을 해코지할 생각이 없었다는 반전은 어쩌면 이 모든 비살상(?) 테러에 대한 합리화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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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진실조차 각 인물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채 합리화의 재료로 쓰일 뿐이라면, 대체 진정한 굿 뉴스란 무엇일까요? 그래도 누군가는 주인공의 활약을 알고 있다? 인질들이 죽지 않았다? 작전에 실패해 빨갱이로 몰려 의문사하지 않았다?


여기서 잠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봅시다.



III

배드 뉴스

사실과 진실



사실 스토리를 꾸역꾸역 이어가며 인물에게 행동원리를 준 것들은 다름 아닌 '배드 뉴스'들이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최악의 상황에 처하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은 '합리화'를 하는데요.


스크린샷 2025-11-22 오후 4.18.11.png 둘의 관계를 암시하듯 '눈높이'가 장면마다 달라지는 연출

결국 영화가 제시하는 현실은 이렇습니다.

인간은 체제 속에서 이름 없는 개로 기능하며, 항상 배드 뉴스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가.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리는 합리화를 통해 의미를 찾고, 굿 뉴스의 가능성을 붙잡으려 합니다. 아무개가 이름을 원했던 이유, 서고명이 대통령 시계를 붙잡으며 체념의 웃음을 지었던 이유는 모두 같은 것처럼요.


물질과 계급에 잠식당한 세상이란 배드 뉴스 속 테러이자 혁명이라는 굿 뉴스를 계획한 내일의 죠도 마찬가지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어딘가 꺼림칙하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닌 듯싶습니다.


다시, 진실이 꼭 좋은 소식만은 아닙니다. 특히나 영화는 계속해서 제4의 벽을 깨는 연출을 사용하며 이 영화가 실제 사건에 대한 진실 따위가 아님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님을 상기시키는데요.


스크린샷 2025-11-22 오후 4.17.14.png 제4의 벽을 깨는 연출 중 가장 좋았다
일어난 사실, 약간의 창의력, 믿으려는 의지.
↪ 곧 진실이 된다.


실화를 각색한 영화답게 일어난 사실과 약간의 창의력, 관객을 몰입시키는 의지로 만들어진 [굿 뉴스]. 즉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영화에 직접 나왔다시피, 굿 뉴스와 배드 뉴스는 상대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화의 제목이자 더 근원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굿 뉴스'란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만한 굿 뉴스는 과연 무엇일까요?


스크린샷 2025-11-22 오후 4.19.07.png 이런 미래를 꿈꿨을 텐데
배드 뉴스, 굿 뉴스가 있어. 뭐부터 들을래?
↪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죠.


앞서 제시된 우리의 현실에 대한 대답 역시 영화가 건네줍니다. 어쩌면 진정한 굿 뉴스는 배드 뉴스 끝 굿 뉴스를 기대하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승리나 보상이 아니라, 배드 뉴스 속에서도 살아남아 의미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집요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떠올랐습니다.


악은 특별한 괴물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 체제 속에서 기능할 때 발생한다


영화 속 아무개와 서고명, 박상현 그리고 다른 인물들은 바로 그 ‘평범한 기능인’의 모습입니다. 국가와 체제는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이름 없는 개처럼 버리기도 합니다. 우스꽝스럽게 표현되긴 하지만 어딘가 가슴 한편이 답답해오는 건 왜일까요.


AL18g_SQ-1MUGi6LTxKzeezp9KKCXnu1XQogFtZHeAHezqiEZTwoCoT1mH97XurQd7PmHgWdUsI3SQ 벽 너머로 넘어온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또한 실제 역사 속 사건들 역시 같은 메시지를 던집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많은 이들이 ‘굿 뉴스’라며 환호했지만, 그 뒤에는 실업과 혼란이라는 ‘배드 뉴스’가 뒤따랐습니다. 9·11 테러 이후에도 세계는 ‘안보 강화’라는 굿 뉴스와 ‘끝없는 전쟁’이라는 배드 뉴스가 동시에 도착했죠. 결국 뉴스는 언제나 상대적이며, 진실은 반드시 양면을 가집니다.


'손실'에 민감한 인간은 언제나 가장 먼저 보이는, 굳이 비유하자면 앞면에 해당하는 배드 뉴스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죠. 그나마 굿 뉴스라면 인류는 언제나 그 뒷면이 있을 것이라며 개척하는 역사를 살아왔다는 것.


그래서 뭐가 옳고 그르냐고요? 공산주의? 자본주의? 능력주의? 물질주의?


그 결과는? 알게 뭡니까.

아마도 그건 덜 익어 시큼한 포도처럼 알아서 좋을 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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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 헤드라인과 속보를 머리에 둘러싼 항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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