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말에 넘어가지 말자
"지지율이란 것은 지금 보면 다 정해진 것이다. 양쪽을 지지하는 지지율은 정해져 있다. 아직 결정하지 않은 부동층도 지금이면 벌써 어느 한쪽을 정한 상태다. 그러나 남은 중간층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전략은 이 중간층이 ‘이쪽도 저쪽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투표 자체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가끔 뉴스를 보다 보면, 문제의 핵심을 일부러 외면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이없는 논쟁이 오가는 장면을 만난다. 최초에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어느새 논쟁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서로의 태도, 말이 오가는 도중 발생한 실수에 대한 말꼬리 잡기, 네가 그 말을 할 자격이 되냐는 등의 메신저 공격이 난무하면서, 피곤함만 커져간다. 결국 해당 사안에 대한 진실은 흐려지고, 노이즈만 남은 상태로 기간이 늘어지는 와중에, 다른 이슈가 발생하면 그쪽으로 관심사는 이동한다.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
현 정부의 지지율은 30~35% 정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전화로 지지율을 확인하는 여론 조사의 특성상, 응답하는 사람들은 진성 지지자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따라서, 30~35% 정도의 지지율은 가장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라고 봐야 한다.
낮아 보이는 지지율이지만, 총선에서 정부 여당의 불리함은 예상되지 않는다. 저 정도의 지지율로도 이기는 전략은 분명하다. 확실하게 투표를 하는 30~35%의 지지층이 있는 상황에서 투표율을 60~70% 이하로 끌어내린다면,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이 전략은 전혀 이상한 전략이 아니고, 새로울 것도 없다. 이 글의 서두에 언급된 말은, 약 10년 전인 2012년 12월 16일, 당시 새누리당의 김무성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실제로 했던 말이다.
법률상으로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정치활동을 하기 위한 자격은 이미 다 갖추었다. 정치가 특정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선거권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이 있어야 할 것이고,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시험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그런 시험은 없다. 누구나 선거를 할 수 있고, 누구나 출마를 할 수 있다. 정치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구분은 없다. 직업으로서 급여를 받는 정치인은 있지만, 정치 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해야 되는 것인지도 알아보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의한다. 물질적이든 아니든, 사회에 존재하는 가치는 한정되어 있고,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해 그 배분의 결과를 소유한다. 가치를 배분하는 과정이 어떤 방식인지에 따라서, 개개인에게 배분되는 가치는 달라진다. 정치와 별개로 나는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 때문인 것이다. 내가 아무리 스스로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한들, 정치가 규정한 가치의 배분을 벗어나는 보상을 받기는 어렵다. 큰 틀에서 내 인생의 가능성은 정치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우리가 정치 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반인은 정치와 별개로 존재하고, 정치 이야기나 활동을 하는 것을 터부시 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가 정치에 관련된 발언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불편하게 생각하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솔직히 이야기해 보자. 배분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주는 대로 받으라고 하는 것이 과연 중립일까? 우리가 중립을 지키라고 하는 것의 실질적인 의미는, 최대한 수동적이고 보수적으로 행동하라고 하는 것이다. 경쟁적 배분 과정에서 수동적으로 행동하게 되면, 결국 수동적이지 않은 주체가 나머지를 가질 수밖에 없음에도, 우리는 수동적으로 배분된 결과를 받아들이라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오랜 학습의 결과다. '중도와 균형'이라는 상상의 가치를 어린 학생일 때부터 주입시키고, 어떠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는 것은 학생의 본분이 아니라는 이야기들을 한다. 정치는 어른들이, 또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라면서, 나의 인생과는 관계없는 것처럼 교육시킨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정치에 대해 조금도 경험을 쌓거나, 고민하지 않은 채로 사회에 나와서, 단지 성인이라는 이유로 선거 등의 정치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의 판단은 당연하게도,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학습한 '중도와 균형'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질 것이고, 그 결과는 뻔하다. 불합리한 가치의 배분 과정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절규는 '중도와 균형'을 해치는 것으로 인식되고, 점잖게 현상을 유지하려고 하는 기득권의 자세는 '중도와 균형'을 지키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사회는 보수화를 공고히 하는 시스템이 갖춰진다.
민주주의의 정치 활동에는 토론과 숙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정치 활동을 터부시 하는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은, 논쟁에 취약한 사람이 된다.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피로감을 느끼고, 상대방의 의견에 비추어 자신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메타인지는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정치인을 보게 되면 피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이 많다며 가벼운 사람 취급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정치에 취약하게 만드는 환경은 여러 가지 시스템의 조화로운 결과물이다. 교육정책을 예로 들어보자. 국가 주도 하에 국정교과서로 단일화된 하나의 진리만이 옳다고 여기게 만드는 오염된 플라톤주의는 말할 것도 없다. 해석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하나의 답이 옳다고 여기게 만든다. 12년에 걸친 기나긴 기본교육과정 속에서, 신문 하나 비판적으로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현실의 정당체계가 어떤 상태인지,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어떤 형태인지, 주식의 본질은 무엇이고 한국 주식시장과 기업의 지배구조는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해 볼 시간을 가지지 않는다. 사회생활에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계약서 읽고 쓰는 법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야생의 사회에 노출된다. 기껏 대학교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나온 사람은 사회에 나와봐야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되어, 사기치고 등쳐먹기 용이하고, 처음 만나는 세상의 험난함 속에서 세뇌되기 좋은 형태로 사회에 나오게 된다. 이제 와서 여러 경험을 쌓기에 세상은 사회 초년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시련을 주기 마련이고, 패배감에 물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이 자기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세상을 원망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저항하거나 개선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되려 그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재생산의 역할을 맡게 된다. 패배주의에 물들어 정치에서 멀어지고, 누군가 고개를 들려하면 너도 고개 숙이라며 눈치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가장 열심히 정치 과정에 참여해서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어야 할 취약한 계층인 우리가,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지금의 시스템이고, 기득권층의 전략이다. 가진 자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그들에게 더 많이 돌아가는 가치의 배분 과정을 설정하는 것을 바라만 보게, 아니 바라보지도 않게 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시스템 하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중도와 균형이라고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은 내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자세다.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남에게 자신의 삶을 맡기는 행동인 것이다.
어떤 특정한 목소리를 내자는 것이 아니다.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런 행동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개인이 처한 복잡한 상황에 의해, 특정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입장에 적합한 정치적 스탠스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정치적 스펙트럼 위에서, 완벽하게 중간이 아닌 어떠한 위치에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각각 다른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지, 사회의 중도와 균형을 위해 개인이 중도와 균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여전히, 고결한 도덕성과 균형감을 가지고 중도를 추구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누군가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말하거나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유난 떤다고 일침 하거나 욕할 자격도 없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중도를 추구할 때, 누군가는 특정한 견해를 주장할 수 있고, 그 두 가지 선택의 권리와 무게는 동일하다. 중도라고, 균형이라고 하는 것도 정치적 견해다. 그러니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지 말자.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짜증 내고 무시하지 말자. 누군가가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무관심하게 지켜만 본다면, 다음 차례가 내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세상을 특정한 누군가의 마음대로 흘러가게 놔두지 말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단테의 말처럼,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