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콜라보를 기대했다가 보편적 인류애를 만나다.
지난주 내내 중간고사를 치르더니, 오늘(월) 학생들은 쉬고 선생님들만 출근해서 채점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덕분에 딸과 나는 모처럼 둘 만의 데이트 시간을 갖는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하고, 영국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출연한 영화 <미키 17>이 영국 현지 영화관에서도 상영 중이다. 이국땅에서 만나는 한국 감독의 영화가 그리 반가울 수 없다.
영화관람 전 일부러 어떤 영화 리뷰도 , 관련 인터뷰 글도 읽지 않았다. 오롯이 내 감상으로 영화를 즐겨 볼 참이다. 엉뚱하게 묘한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예전 봉 감독님의 영화 '설국열차'와 '옥자'가 문득 떠오른다.
영화 '기생충'의 명성을 알고 있는 딸은 평소와 달리 오늘은 군말 없이 엄마가 선택한 영화를 보러 따라 나섰다. 평일 오후 영화관은 한산하고 평화롭다. 리크라이너 의자를 뒤로 젖히고 앉은 관객들은 편안히 자신만의 공간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영화 초반, 영 불편하다. 전작들에서 말끔한 신사이자 미스터리한 능력자로 분하던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한껏 망가진 채 힘과 권위에 마구 흔들리는 너덜너덜 헝겊인형 같은 인물 연기를 펼친다.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에서 볼 법한 가학적 장면도 몇몇 눈에 띈다. 그제서야 모녀가 함께 관람하기에 불편한 영화인지 리뷰를 미리 둘러보지 않은 엄마는 걱정이 된다.
주인공이 겪는 잔인한 고통에다가, 급기야 영화 속 기묘한 생물체가 나타나자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며 딸이 불평을 시작한다. 그러다 영화 중반부터 인물 간의 설정이 분명해지고 극 중 대립이 격화되자 군소리 없이 딸의 눈빛이 반짝인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 모녀가 약속이라도 한 듯 꼼짝 않고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예전 봉준호 감독 영화는 날 것의 메시지를 툭툭 던지는 날카로움, 묵직함이 있었다면, 이번 ’미키 17’은 메시지를 비교적 부드럽게 녹여내어 어떤 문화배경의 관객이든 공감하기에 좀 더 수월해진 것 같다. 영화 관람 후 찾아보니 영화 ’미키 17’은 미국 영화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가 2000억에 육박하는 순 제작비를 들인 100% 미국영화라고 한다.
영국에서 교육을 받는 딸과 한국 감독 작품을 함께 관람하면서 은연중에 한국적 정서가 전해지는 영화를 기대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문화를 얘기할 때면 일방적으로 엄마가 딸에게 설명할 것이 많아지는데, 이번 영화는 누구나 생각해볼만한 이치에 대해 서로의 평소 생각을 듣고 나눌 수 있어 또 좋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던 봉준호 감독의 어느 영화제 수상 소감처럼, 영화 <미키 17>는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으로 보편적인 가치를 세계가 나눌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 나는 아무래도 휴가인 딸 신경쓰느라 영화 속 메시지를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나중에 혼자 다시 한번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