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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길]

봄볕 따라 걷는 길

by 신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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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게 참 좋다.

걷다 보면 좋지 않은 생각도 다 잊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홀딱 빠져들며

내 두 발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길 위의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또다시 삼남길로 나서 걸음을 이어갔다.

다시 새겨보는 삼남길

충청과 전라, 경상을 연결하는 역사적인 가치를 가진 삼남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에 참배하러 가던 길,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떠나던 길,

이몽룡이 춘향을 만나기 위해 남원으로 달려가던 길,

단순한 길이 아닌

사람들의 삶과 한반도의 역사를 그대로 품은 국토의 대동맥을 따라

우리는 걸어가고 있다.

벚꽃은 만발하고

산천이 제법 푸릇푸릇하다.

브레인시티 공사가 한창인 평택시,

제대로 된 길로 들어서지 못하고

가림막을 지나 먼 길로 돌아서 가야 했다.

상추를 정갈하게 가꾼 텃밭을 지나고

이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통복천을 지난다.

세상은 붉고 하얀 꽃들로 가득하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트로트를 기똥차게 구사할 줄 아는 감국의

이조년의 시조 '다정가' 가 노래만큼 구성지다.

배나무 과수원 하얀 배꽃은 두 눈이 시릴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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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라고 새긴 석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공납 제도의 폐단을 시정하고

세금 체계를 바꾼 대동법을 기념하기 위한

대동법 시행 기념비에서 잠시 쉬어간다.

오가는 차소리로 도시의 소음이 깊어 갈 때

경지 정리가 잘되어 있는 넓은 소사뜰이 나온다.

저 소사뜰에서 평택의 대표 브랜드 오닝쌀이 만들어지고 있나 보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시작한 삼남길 중 경기 옛길이 끝이 났다.

2주 후, 우리는

다시 만나 천안을 향해 걷기를 이어갔다.

푸릇한 초록 잎들이 자라나고 있는 안성천의 물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나를 찾아 떠난다느니

인생을 바꿔본다느니 하는 심각한 생각은

분위기에 휩쓸려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저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는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벅찬 마음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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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여기는 천안입니다'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동네 천안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낡은 노란 대문이 들풀과 조화로운

동네 안쪽으로 걷다 보니 이름 모를 나무들이 즐비하고

흐드러지게 핀 철쭉꽃이 환영인사라도 하는 것 같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이 부르는 소리가 있어 발을 멈춘다"

감국이가 노래를 흥얼거린다.

자연과 인간의 묘한 교감이 하모니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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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한 봄볕에 걸음도 졸고 있다.

한 뼘 그늘진 길바닥에 옹기종기 앉아

다정한 햇살이 준비한

오이, 삶은 달걀, 마늘빵, 커피로 잠시 쉬어간다.

걷는다는 것

살아있음을 깨닫게 되고

매일 새로워지는 일일 것이다.

내 생각에 매몰되지 않게

머리와 마음이 깊은 호흡으로 유연하게 이완되는 시간

나 혼자 튀기보다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발맞춰 걸어가는

그대들은 멋진 나의 도반

낯선 길을 만나고 걸어가야 할 길이 여전히 남아 있는 지금

옛길을 따라 걷는다는 것이 운치 있고 얼마나 다행인지

속도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위로가 되는 이 길을 지나고 나면

반짝거렸던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겠지.

천안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

흥타령 읊조리는 명창 감국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봄기운이 오르락 말락,

나무들이 조금씩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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