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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길]

초록물 스미는 옛길

by 신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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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길 대표주자 3인은 두정역에서 다시 만났다.

도심 구간을 통과하여 태조산에 위치한 ‘천안향교’를 지나 ‘천안삼거리'까지

그리고 태봉산을 넘어야 하는 일정이다.

도심을 관통하며 걷는 길이라 걸음도 늦고

가파른 언덕길도 아닌데 호흡이 부자연스럽다.

조반 전이라 천안 풋살장 탁자에 앉아 조촐하지만 풍성한 식탁을 차렸다.

향긋한 커피 한 잔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눈이 맑아지고 세상이 또렷하게 보인다.

20년 가까이 걸었던 걸음인데 나이 탓을 해야 할 시기가 돌아왔나 보다.

다행인 것은 초록이 내뿜는 기운이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필 때가 되면 피는 자연의 의지는 대단하다.

산 길에 옹기종기 피어있는 보라색 작은 제비꽃을 보니

왠지 마음이 끌리며 메마른 시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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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초록으로 술렁거린다.

연둣빛을 벗은 산 풍경은 싱그러운 초록으로 갈아입었다.

햇살 아래 분홍의 산벚꽃이 그윽하고 아름답다.

온갖 풀 꽃들이 제각각 자태를 뽐내며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이 왔음을 알린다.


물오른 초록 잎새들이

흐르는 냇물위에 초록 그림자를 만들어 일렁이며 연주를 한다.

눈길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내 발걸음을 느릿하게 만든다.


지난주에 우리의 도보를 응원하는 도반 몇 명과

삼남대로와 함께 가는 수원 둘레길을 걸었다.

하하 호호 춘흥을 어쩌지 못하면서

잡아 두고 싶던 봄의 끝자락을 걷던 그윽한 옛길이

벌써 꿈속처럼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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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12경 중 제1경 천안삼거리를 만난다.

옛 삼남대로의 분기점이며 만남과 어울림의 현장으로

선비 박현수와 능소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서려있는 곳이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천안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

우리가 익히 들어온 천안 흥타령은

장원급제 한 박현수가 돌아와, 흥이 난 능소가 가야금을 타며

읊조렸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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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들판에 가득한 눈 부신 햇살이

파란대문을 가진 시골집 담장으로 넘어가며 길게 그림자를 만든다.

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찔레꽃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인용하여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걸어왔는데

목적지인 태봉산을 앞두고

나의 개인적인 일로 인해 풍세교 앞에서 걷기를 마친다.

늦어지면 어떠리,

만나면 좋고 함께 걸어서 갈 수 있는데.

오늘도 걷기가 가져다준 기쁨과 즐거움을 잘 담아 가리라.

햇살처럼 빛나고 바람처럼 자유로웠던 길,

어느덧 해는 지고 어스름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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