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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길]

길 위의 길에서 잠시 '쉼'

by 신우선


과육 속으로 햇빛이 스미고

터질 듯 영롱한 햇살이 가을임을 알려 준다.



늦여름에서 초가을이 지나도록 걷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도 힘든 여름 더위와

삶을 이어가야 하는 어지러운 속도 속에서

잠시 우리의 걸음을 잡아매어 둬야 했기 때문이다.



한 계절을 보내고 풍세교 다리를 시작으로 길을 나섰다.

어느새 국화과인 노란 감국(감국도반의 별칭이기도 하다 )이 지천이다.

고갯길, 굽잇길 먼저 걸어간 이의 시간이 묻혀 있는 길은 푸근하고 정겹다.

나무 사이 쏟아지는 햇살에 눈 못 뜬다 해도

고즈넉한 온기가 발길을 이끌어 주는 길에서는

느릿한 걸음이 된다.



도란도란 밀린 수다를 풀어내다가

별스럽지 않은 풍경 속에서도

홀로 핀 작고 여린 꽃을 찾아내어

그녀 특유의 사랑스러운 멘트를 날리는 수리도반,

자연을 대하는 감성의 깊이에 자주 놀라며 걷는다.

트로트 꺾기의 달인, 감국의 구성진 콧노래가 더하여 산중에 울려 퍼지니

선명한 쾌감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오늘 우리의 숙소는 정안 인근에 있는 글램핑장이다.

평상시 캠핑을 즐길 여유가 없었던 나로서는 글램핑장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글램핑장에서의 하룻밤을 위해 고기와 야채를 구입하여

제법 그럴듯한 식탁을 차리고 와인을 곁들여 낭만적인 추억 하나를 추가했다.

지펴둔 숯불이 사그라들자 가을밤의 찬 공기가 뼛속으로 훅! 스며든다.



퇴직 후 커피를 좋아하던 나는 드립 커피집을 딱 2년 운영했다.

몸에 밴 오랜 직장 생활로부터의 기억을

또 다른 삶으로 변화를 주며 지워가는데 효과가 있었다.

원두를 종류별로 로스팅 하여 포장하고

엽서 크기의 그림을 넣어 판매를 했다.

새로운 경험은 그림 실력을 쑥 끌어 올렸다.



글램핑장에서 하루 시작은 내가 가져 온 커피를 내리며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아직은 덜 여문 가을,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들판은 아름답게 반짝이는 뽀얀 서리 이불을 둘렀다.

콧속으로 알싸한 기온이 스며 재채기를 유도하지만

끝내 재채기를 삼키게 하는 아침 풍경이다.

양편에 쭈욱 늘어서 사색에 빠진 메타쉐콰이어 싱그러움에 마음을 빼앗기며 도착한

수촌 1리 신촌마을 정자에서 잠시 쉬며 한 캔의 맥주를 셋이 나누며 숨을 고른다.



저마다의 삶의 역사가 다른 우리들,

울퉁불퉁한 삶의 편견을 편편하게 하고

가끔씩 잊어버리고 사는 일 중

자연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깨치며 걷는 길,

우리의 빈 곳간을 풍요로움으로 가득 채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살아가다 힘들어질 때 끄집어 낼 기억이 있다면 힘이 되겠지.



진부하게 들릴지라도

함께 걸어 주는 그대 도반들을

진심을 다해 사랑합니다.



가을밤 찬 공기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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