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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길]

-은진미륵의 미소를 담아 전라도에 접어들다

by 신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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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 얼마예요?'

'1,500원 이 여유'

'비싸요'

'맛있으면 싼 거구, 맛없으면 비싼 거쥬'

5일장이 열리는 안심시장 안,

제일 북적이는 웰빙 호떡집에서 주인과 맥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밀가루의 바삭함 속에 담긴

달콤하고 뜨거운 설탕물이 떨어질세라 호호 불며 호떡 먹기에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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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시장으로 가는 길목은

향수를 자극하는 벽화가 가득하다.

리퀘스트 뮤직을 틀어주던 음악다방 DJ의 모습, 목욕탕, 오락실,

멋장이들이 들락거렸을 양장점, 이발소를 지나

화력 좋은 연탄 신속배달이라고 쓰인 논산연탄집을 지나면서

감국이가 옛 추억 한자락을 꺼내놓는다.

시간 맞춰 연탄을 갈아줘야 하던 신혼시절, 연탄불을 꺼뜨리기 일쑤여서

예물로 받은 금반지를 팔아 기름보일러로 바꿨다고. . . . . .

서로의 어린 시절을 늘어놓으며 옛 추억으로 빠져든다.


매해 3월 초에 폭설이 내리곤 했었는데

올해도 역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폭설이던 잔설이던 짙은 먹구름이 둥둥 떠 있고

세찬 바람이 불어와 얼굴 위로 눈 매를 맞고 있지만 눈을 감지 않는다.

비가 오면 어떠리, 눈이 오면 어떠리

휘적휘적 몸을 흔들며 열심히 걸어가며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려 한다.


커다란 딸기 형상의 조형물이 즐비한 비닐하우스 촌을 지난다.

비닐하우스 사이를 걸어가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시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딸기맛을 볼 수 있느냐는 요청에 흔쾌히 맞아 주신다.

하우스 안에서 잘 익어가는 딸기체험도 하고 커피도 준비해 주시며

실컷 먹고도 남은 딸기를 포장해 배낭에 넣어주신다.

배낭 안에 논산 인심을 가득 담아 다시 길을 나서니

간간이 내리던 눈이 그치고 회색빛 하늘 틈새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몽실몽실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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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연륜을 안고 있는 낡아 보이는 연무대 시외버스정류장에는

아들을 군에 보낸 수많은 부모들과 연인, 친구와의 이별과 만남의 사연을

다 품고 있는 듯하다.

후백제가 등장하고 고려 왕건에 맞서 싸움이 잦았던 논산 일대에서는

땅속에 묻힌 말방울과 편자 등이 많이 나왔다던데,

그래서 육군 최대의 훈련소가 논산에 있는 걸까?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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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모든 신경세포가 도취하는 짧은 순간을 가져다주는 봄의 초입.

한 해 농사를 위해 뒤집어 놓은 짙은 황톳빛 흙은 새 희망을 노래하고

하얀 자태의 그윽한 매화꽃 향을 얼굴가까이 까지 바람이 데려다 준다.

반사경에 얼굴을 비추고 손도 흔들어 본다.

논산평야를 바라보며 세워져 있는 반야산 기슭 관촉사에 이르르니

거대한 석조 불상 '은진미륵'이 은은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 주며

긴장했던 마음의 끈을 내려놓고 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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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걸음이 우리를 논산 연무읍을 지나

전북 익산 여산면을 코앞까지 데려다 놓았다.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를 넘어가는 도반들의 뒷모습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걸음이 씩씩하다.

익산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 첫걸음을 격려해 주기 위해

익산에 계시는 이프로(별명)언니의 합류는 큰 힘이 되었다.

삼남대로 완보 후 전북천리길을 걷고 있는 현재도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 프로언니는

맏언니로서, 동생들을 아끼고 챙기는 면면이 뙤얏볕에 그늘을 드리워 주는 큰 나무 같다.


도보의 즐거움은 분명 다양한 삶의 향기를 품고 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풍광을 마주할 수 있다는 설렘에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옛길을 걷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조금씩 자연과 섞이며

선조들의 발자취와 얼이 깃든 길을 따라가기에 더욱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두 발로 걸을 때 알 수 있는 소중한 것들

내가 숨 쉬며 걸었던 곳은 그리움의 장소이고 선물 받은 추억의 장소가 된다.


분주하던 하루가 저물어가고 소리 없이 밤을 맞이하는 도시의 건물들은

또 다른 휴식을 위해 분주하다.

여전사 같은 우리들,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도 멋진 우리들,

이제 헤어질 시간

호흡을 가다듬고 숨을 고르며

감동으로 가득 차오른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또 시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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