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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길]

한양으로 가는 고갯길 갈재를 넘다

by 신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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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집을 나서는데 시원한 바람이 분다.

도회적 풍경 속 건물은 반쯤 안개에 가려져 있고

도로 위 자동차가 어둠을 가르며 빠르게 지나간다.

안갯속을 헤치며 걷는 내 발걸음은 가볍다.

한 달 만에 만나는 반가운 도반들과 잘 걷고 싶은 마음이 커서랄까.

삼남길의 든든한 버팀목 감국은 딸의 출산으로 불참이 예고됐지만 참석.

햇살 수리 그리고 일요일 합류하는 프로언니, 언니의 조카 성애 씨와의

즐거운 만남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읍역에 도착하니 지난달 인상 깊게 먹었던 쌍화차가 생각나

쌍화차 거리에서 노포를 찾아내 뜨끈하게 속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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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파출소 앞에서 걷기를 이어간다.

해는 어느새 중천에 떠 있고 파출소앞 반사경에 인증사진을 남긴 후 출발~

갈재길 문화생태탐방로 표시를 따라 걸어간다.

저 멀리 수령 210년 느티나무가 마을 입구에 수호신처럼 서있다.

어느새 우리의 걸음은 갈재 초입

예전에 군량미를 저축해 두었던 곳 군령마을에 도착했다.

산적이 들끓었던 그 옛날,

험난했던 재를 넘어야만 했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던 적도 있었다 한다.

호남선 옛 철길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일제 강점기 때 설립돼 1987년까지 사용되다가

지금은 철로와 침목 등이 모두 철거되고 경치 좋은 길로 손꼽히는 길이 됐다지.

경치가 좋다는 길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한 도반들의 마음 한끝에도

햇빛 한자락 살포시 닿아 걷는 걸음이 가벼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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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길 표시만 보고 걸어가다 솔잎에 덮인 길 없는 길로 들어선다.

산길을 오르고 올라 갈재로 향하는 언덕길로 오르니 전남과 전북의 경계, 갈재에 도착했다.

해발 276m의 야트막한 산,

억새가 많아 부르게 된 명칭의 갈재는 노령산맥을 가로질러 도성인 한양으로 가는 고갯길이다.

고개를 넘는 도반들의 얼굴이 울긋불긋하다.

인적이 뜸한 탓일까, 잡목이 빽빽한 산길을 헤치고 나가려니

가시에 찔리고 나무뿌리에 걸리고. . .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차량이 뜸한 도로에 철퍼덕 주저앉아

무거운 등산화를 벗고 간식을 먹으며 온갖 소음으로부터 벗어난 곳에서 여유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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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세상이 한창인 원덕리 마을로 접어든다.

하늘의 구름은 거장의 명화를 보는 듯하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반사경도 뜨거운 해를 이겨내지 못했나 보다.

반사경으로 비치는 도반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뜨거운 햇살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우리의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져도

오늘의 목적지인 백양사역을 향해 걷는다.

고단했던 하루를 얼큰한 대구뽈찜과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한다.

하루의 고됨을 나눈 우리들의 정은 더욱 깊어가고

밤하늘 수많은 별들마저 잘하고 잘했노라고 정답게 말을 건네는 밤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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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몰아내고 맑은 아침이 밝았다.

동네 빵집에서 구입한 빵과 요플레로 아침을 해결하고 더위를 피하고자 일찍 길을 나섰다.

동네를 걸어가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이집 저집 기웃거리게 되는데

담 넘어 삶의 풍경들이 훈감을 느끼게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네 담벼락이 고흐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전시장을 거닐듯 그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삼남대로를 안내하는 빨간색 시그널을 잘 찾으며 걸어가는데

사거리를 지나칠 무렵에는 희미한 표식 때문에 길을 잃었다.

길을 잃어도 즐거운 마음, 마을은 고즈넉하고

매실 담그는 방법에 대한 우리들의 수다만이 공기를 가르며

쏟아지는 햇살 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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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 돌다리를 건너고

아름드리나무들이 환영하듯 늘어선 좁은 길을 걷는데

우리를 비범(?)하게 생각하신 분이 걸음을 멈추게 하고

본인이 운영하는 농장으로 안내 후 물 한 잔을 건네시며 얘기하십니다.

"장성부터는 귀향지였지. 귀향 보내진 사람들은 고창으로 넘어가 새로운 성씨로 거듭나고....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탄생했지요"

길 위에서 숲을 만나고 꽃을 만나고

구전돼 오는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를 만날 수 있음이

진정한 걷기의 매력 아닐까.



우린 왔던 길을 다시 돌아 걸어

이윽고 중간 합류한 프로님과 성애 씨를 만나 성미산 등산로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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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숲을 보여주다 나타나는 산들의 군무가 싱그럽다.

숲 사이 임도 오솔길을 걷는데 햇살을 머금은 숲속은 차라리 초록의 바다를 연출한다.

현기증이 일어날 것 같은 숲길에서

지천에 널린 뱀딸기, 오디를 한 움큼 따서 우물거리니 입도 손도 온통 보라색이다.

야단법석 도시를 떠나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산들의 체취를 온몸으로 담아내며

임도길을 벗어나니 멀리 장성호가 보인다.

오늘의 종점 장성역으로 씩씩하게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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