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대통합이 필요하다.
과천 ‘바로마켓’에서는 다음 달에 2년 임기의 자치회 회장 선거가 있다. 농가들이 왜들 그렇게 회장 선거에 관심들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몇 사람만 모이면 선거 얘기들을 한다. 지금까지 총 4명이 회장 후보 물망에 올랐다. 들리는 말로는 현재의 회장을 비롯해 전임 회장, 젊은 후보가 나섰고, 현재의 임원 한 사람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나에게도 출마 자격이 있었다면, 선거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자치회 규칙상, 회장 선거에 출마하려면 이 시장에 참가한 지 3년 이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자격 미달이다. 나는 출마하지 못하지만, 후보자들이 참고했으면 좋겠다 싶은 내용을 정리했다. 내가 나섰다면 공약으로 제시했을 내용들이다.
먼저, 대통합이 필요하다.
농가의 마음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회의 때마다 편을 나눠 싸우기 일쑤고 소위 ‘뒷담화’가 난무한다. 회장과 도담농장 권영도 대표와의 싸움으로 촉발된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고 시장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 같다. 이 시장에 참가한 지 오래된 사람들은 현재 상황이 예전 서울대공원에서 하던 장터의 말기 상황과 유사하다고까지 말한다. 그때도 장사가 그렇게 잘 되던 시장이 참가자 몇몇 사람의 갈등으로 깨졌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서울대공원에서 하던 장터와 ‘바로마켓’은 설립 주체와 동기, 규모 등에 있어서 차이가 있어서 두 장터의 상황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터 참가자간의 갈등이 길어질 경우, 장터의 미래를 위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내가 대통합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갈등을 봉합하자는 취지만은 아니다. 그것을 포함하여 이 장터 참가자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총동원하자는 의미다. 대통합의 대상은 1. 품목간 2. 지역간 3. 세대간 통합이다.
1. 품목 간, 혹은 같은 품목 안에서도 농가에 따라 매출 편차가 크다. 이로 인한 갈등도 적지 않다. 시장에 참가해 보니, 장사가 잘될 때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잘 안될 때는 나도 모르게 어깨가 처진다. 시장에 장사하러 나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장사가 잘되는 것이 꼭 내가 잘해서만 일까? 장사가 잘될 때나 잘 안될 때나 옆에서 같이 참가하고 있는 동료 농가들이 있기 때문에 이 장터가 유지되는 것이고, 이 장터가 유지되기 때문에 나도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장터는 너와 내가 같이 벌어먹는 곳이다. 내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꼭 그것뿐만이 아니라 옆에서 받쳐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내 장사가 잘 되는 것이다. 장사가 잘 되든 못되든 동료 농가들 덕분에 내가 벌어먹고 산다는 사실을 생각으로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2. 지역간 통합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고질병 중에 하나는 지역간 갈등과 대립이다. 하지만 이 장터에 와서 지역간 대립이 심하다는 느낌은 별로 받지 않았다. 나는 ‘전바회’라는 사적인 모임에 가입되어 있다.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모이는 모임으로 내가 제일 막내격이다. 거기 회원들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등 거의 전국이 망라되어 있고 모임에서 지역간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어떤 모임에서나 지역간 갈등을 부추기는 일 따위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3. 세대간 통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합을 말할 때 내가 가장 역점을 두어 말하고 싶었던 내용도 세대간 통합이다. 그동안 비교적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 회장과 지도부를 맡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이 시장의 운영에 참여할 기회를 줘야 한다.
사실 젊은 층이라고 하지만 노년층 눈높이에서 젊은 것이지, 40~50대로 사회적으로는 중장년층에 속한다. 그 사람들도 시장과 사회에 관한 충분한 경험을 축적했고, 사회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인데 나이 드신 분들이 이 장터 운영권을 쥐고 놓지 않으니 그냥 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번에는 젊은 층에서 회장 후보로 내세운 것을 보니 이제 참는 것도 한계에 이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번에는 신구 연합으로 지도부를 구성하면 어떨까. 회장과 부회장을 신구세대가 나눠서 맡고, 기타 지도부도 신, 구세대를 적절히 섞어서 구성하면 어떨까 싶다. 지역과 품목간 균형까지를 고려할 수 있으면 더 좋고.
다음은 온,오프라인을 병행해야 한다.
이 장터에 온 후, 농림축산식품부와 AT 등에서 나온 직거래장터 관련 정책자료들을 수집해 읽었다. 그 양이 적지 않다. 사실 나는 전직이 공무원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했다. 인권위에 있을 때는 발전기획단 간사로 인권위의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을 주도했고, 홍보협력과장을 하다 퇴직했다. 그러니 정부의 정책자료들을 보면 행간을 읽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우리 ‘바로마켓’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산물직거래법(2016. 6월 제정)에 따라 매 5년마다 수립하는 직거래활성화기본계획(2차계획 : 2022~2026)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표적인 직거래장터이다. 제1차 직거래활성화기본계획 수립 당시(2017년도)만 해도 직거래장터는 직거래활성화를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취급되어 왔다. 하지만 전체 직거래 매출에서 직거래장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옴에 따라 현재는 정책 중요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다.
2차 기본계획에서 발췌한 위 자료에 따르면, 직거래장터 비중은 2017년도 5.8%에서 2021년도 0.68%로 감소했다. 그러니 정책당국(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예전과 같은 지원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직거래 규모 중 0.6%에 불과한 직거래장터에 정책당국이 왜 관심을 두겠는가.
하지만 온라인을 병행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위 표에서 보듯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직거래 비중은 2017년도 47.9%에서 2021년도에는 67.7%로 증가했다. 정책당국은 당연히 온라인 직거래 활성화에 관심과 예산을 늘려갈 것이다. 특히 자신들이 주도하여 개설한 ‘바로마켓’의 경우 이를 온,오프 병행 시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관심은 2차 기본계획에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정부의 정책적 도움만을 기대하고 온라인화를 추진하자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점점 더 온라인 구매 비중이 증가할 것이고, 오프라인 구매는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우리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 위험을 분산하고, 온·오프라인 병행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도 온·오프 병행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일에나 다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다. ‘바로마켓’의 온라인화 작업은 당장 시작해도 빠르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늦은 것도 아니다. 온라인화 작업을 당장 시작하고 정부의 정책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알아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장 참여자 선발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금년 4월 내가 이 시장에 와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시 테이블이 지정된 선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거나 5시 이전에 물건을 정리하면 안 된다거나, 명찰을 달고 있어야 한다거나 등이다. 왜 이런 중고등학생들에게나 강요할 법한 일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벌어지고 있을까.
물론 여러 농가들이 모인 곳이고 고객을 상대하는 곳이니 어느 정도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걸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규칙을 말하는 사람들의 표정에 감춰진 불안감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 불안이 매년 입점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아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장터이고 이 장터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니 선발 과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여러 가지 다양한 규칙을 만든 것도 그것으로 점수를 매겨서 입점 심사 시 반영하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이해된다. 일견 합리적인 제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입점 심사와 관련하여 몇 가지 생각해 봐야 할 사항이 있다.
그동안 ‘운영기관’이 입점 심사를 빌미로 농가들을 겁박하고 어떤 경우에는 소위 뇌물까지 수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다. 일부 농가들이 운영기관을 두려워하며, 심지어 이 시장의 주인은 운영기관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아마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운영기관이 참여자를 선발할 권한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듯 하다. 그런데 그런 논리라면, 이 나라의 주인은 공무원이다. 그 말이 맞나? 공무원들이 나랏일을 다 하지 않는가? 이 나라의 주인이 공무원들이 아니라 일반 국민이듯 이 시장의 주인도 운영기관이 아니라 우리 농가들이다.
정부가 위탁운영기관에 농가의 선발을 맡긴 것은 정부를 대신하여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참여할 농가를 선발하라는 것이지, 운영기관의 입맛대로 농가를 고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니 참여 농가 선발과정을 보다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객관적인 심사 기준을 사전에 공고해야 한다. 그래야 농가들도 그 기준에 부합하도록 노력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심사단을 공정하게 구성해야 한다. 공무원, At 직원, 운영기관 직원, 농가 대표, 소비자 대표 등이 균형 있게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회의 절차도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탈락 후보 농가들에게는 이의신청과 소명 기회도 부여해야한다.
시장 참여 여부는 이 시장에 참여하는 농가들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다. 운영기관의 입맛이나 경미한 규칙을 위반했다고 참여를 배제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농가들이 위축되지 않고 장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농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시장 참여자 선발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이상이 내가 현 시점에 우리 장터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다. 모쪼록 회장 입후보자들은 이 내용을 충분히 반영하여 농가들이 보다 마음 편하게 장사할 수 장터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