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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소나무 Nov 15. 2024

지하철 5호선에서

그녀는 마치 위험을 감지한 미어캣 같았어

   동대문 역사박물관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여의도역으로 가는 중이었어. 여의도에 있는 화재보험협회 강당에서 식품위생법 교육이 있었거든. 수능 보는 날이라 열차 안이 크게 붐비지는 않았어. 창밖이 보이는 맨 앞줄에 서 있는데 등 뒤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간혹 살짝살짝 스치는 정도였으니까. 지하철은 그렇게 편안하게 종로, 광화문을 거쳐 서대문을 지나고 있었지.      


   그러다 애오개역 근방에서 내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라. 나는 지하철에서 자리가 나도 금방 앉지 않는 버릇이 있어. 주변에 앉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앉으라고 자리를 양보하는 편이지. 내가 양보심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니고, 젊어서부터 체력에 자신이 있어서 그런 습관이 들었나 봐. 지금은 그럴 정도의 체력이 아닌데도 그 습관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아. 그런데 오늘은 양보할 겨를도 없었어. 내 뒤에 있던 어떤 사람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내 옆구리를 스치듯 지나쳐서 그 빈자리를 차지했거든.      


   그 동작이 물 흐르듯 유연하고 자연스러워서, 마치 한 마리 백로가 새벽 공기를 가르고 조용히 날아와 논바닥에 살며시 내려앉는 것처럼 소리도 안 나더라고. 그 몸놀림이 감탄스럽더라. 왜 상대편이라도 플레이가 완벽하면 손뼉 쳐 주고 싶잖아. 바로 그런 심정이 더라니까.   

  

   그 완벽한 동작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 사실 나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初老의 남자야. 그러니 나를 앞에 세워놓고 선뜻 자리에 앉는 것이 젊은 사람으로서는 약간 머뭇거려지는 일이 아닐까.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사실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어. 오히려 너무 당당해서 내가 오히려 움츠러들 정도였지. 나는 그 기세에 눌려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곁눈질로 살짝 훔쳐봤지. 생각보다 젊더라고. 30대 중반이나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어. 회사에 출근하는 차림이었고 한 손에 책도 쥐어져 있더라고. 표지가 붉은 바탕에 한글과 영어로 뭐라고 적혀있었던 것 같은데 제목은 잘 생각이 안 나. 소설책 같지는 않았고 자기 개발서 류의 책인 것 같았어.    

  

    아무튼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책을 펼쳐 들고 밑줄 그어가며 보더라고. 그것은 또 다른 신공이었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책에 몰입해 좋은 글귀를 찾아 밑줄을 긋냐고. 하긴 어쩌면 내 뒤에 서 있을 때부터 책을 보고 있었다가 자리에 앉자마자 밑줄을 그은 것일 수도 있기는 하지.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밑줄 긋는 모습이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 남들 보라고 하는 것 같은.      


   그녀의 당당한 모습을 보자, 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기더라고. 어쨌든 나로서는 새치기당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잖아. 그래서 새치기하고도 당당한 그녀가 그다음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더라고. 그래서 슬쩍슬쩍 그녀의 모습을 훔쳐봤지. 나는 그녀가 느끼지 못하게 한다고 했지만 그런 내 행동을 그녀가 느꼈을 수도 있어. 


   그녀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아주 당당한 태도로 앉아 있더라. 평소 자세가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이 상황에 대처하느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 어느 쪽인지는 나도 몰라. 그러더니 책을 보면서 자기 머리를 아주 천천히 우아하게 쓸어내리더라고. 그 모습이 얼마나 진지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던지. 옆에 있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느낌이었지. 그다음에는 과자를 먹는데, 과자 하나도 허투루 먹지 않더라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책을 보면서 엄지와 검지로 과자를 집고 나머지 손가락을 우아하게 펼쳐서 과자를 입으로 가져가는 데, 그 손 모양이 마치 발레리나의 손연기를 보는 것 같더라니까.      


   그런데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중에는 약간 측은한 생각이 들더라. 저렇게 주변 시선 신경 써 가면서 살려면 얼마나 피곤할까. 겉으로는 당당해 보이지만, 내 눈에는 마치 위험을 감지한 미어캣이 고개를 쭉 빼고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는 것 같더라.      


   주변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니 본업에 몰입하기 힘들고, 본업에 소홀하면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고 그러니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고, 자신을 지키려니 다시 주변을 살펴야 하고. 뭐 이런 악순환에 빠진 것은 아닐까.      

   지난달 땅만 보며 한참 동안 성북천 변을 걸을 적이 있어. 그때 느꼈든 자유로움이라니. 나도 그동안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꽤나 시달렸었나 봐.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땅만 보며 걸으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알아 새로운 세계가 거기에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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