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나 듣기 좋던지 선뜻 그러자고 했다.
요즘은 조금 뜸해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귀농’이라는 말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바가 있다. 얼마 전에 읽은 고 박완서 님의 글에서, “작년 가을이었다. 시골 바람을 쐬러 가자는 친구가 있었다. 시골 바람이란 소리가 어찌나 듣기 좋던지 선뜻 그러자고 했다,”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시골 바람과 ‘귀농’이라는 말이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나는 2010년도 그러니까 14년 전에 아내와 함께 지리산 북면,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북 남원시 아영면으로 이주했다. 그 이전까지는 쭉 서울에서 살았다. 서울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던 아내는 집 근처, 인월고등학교로 옮겼다. 아무리 공립학교지만 전근을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닌데 운이 좋았다. 인월고등학교에서 광주광역시로 전근 신청한 사람이 있었고, 광주에서 서울로 신청한 사람과 서울에서 전북으로 전근을 신청한 아내까지 아귀가 맞아 이루어진 일이다.
시골에 내려가서는 가능하면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려고 했다. 마을 한가운데 집을 짓고 마을 일에도 관여했다. 동갑내기 이장이 매일 아침 우리 집에 와서 마을 일을 논의했다. 청년회도 새롭게 만들고 인근 ‘갑계’(동갑내기들이 모이는 모임)에도 참여했다. 마을 야유회 때는 마을 회관에서 돼지도 잡고, 흔들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크게 튼 뽕짝 음악에 맞춰 동네 아주머니들과 어울려 얼굴에서 땀이 날 때까지 춤도 췄다.
14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형 구장님들 비롯해 마을 원로 격이던 어르신들은 이미 다 돌아가셨고, 관광버스에서 같이 춤추던 아주머니들 중에서도 이미 여러분이 돌아가셨다. 노인회장 사모님, 월평댁, 박권사님, 갈계댁, 안골댁, 수원댁 등등의 아주머니 얼굴이 아직 눈에 선 한데 이미 이 세상 분들이 아니다. 나머지 분들도 이제는 기력이 쇠하셔서 예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다. 왜 안 그렇겠는가. 그 당시 70대 초반으로 아직 기력이 왕성하셨던 분들이 지금은 80대 후반이니.
요즘은 서울에 자주 온다. 지금 이 글도 서울 돈암동 집에서 쓰고 있다. 사업상 서울에 볼일이 많기도 하지만, 시골에 있어도 별로 재미가 없으니, 서울에 머무는 기간이 점점 길어져 간다. 하지만 아직도 서울에 있다가 시골에 내려가면, 아내는 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별에, 나는 폐부를 찌르는 신선한 산 공기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매스컴 영향으로 시골살이의 실제 모습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 매스컴은 시골살이를 주로 두 가지 모습으로 그리는데, 하나는 ‘자연인’ 류의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귀농하여 연 매출 ○억을 버는 사업가’ 모습이다. 사실 둘 다 시골살이의 평범한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예외적인 경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전혀 연고가 없는 곳에 가서 14년의 세월을 살았으니, 시골살이에 대해 할 말이 적지 않다. 그것들을 한 번에 다 쏟아 낼 수는 없는 일이고, 만약 친구가 “시골 내려가 살려고 하는데, 가장 중요한 거 두 가지만 말해봐,”라고 물어본다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하나는 가능하면 ‘연고가 있는 곳으로 가라.’ 그곳이 고향이라면 더 좋고, 아니라면, 적어도 함께 어울릴 만한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 나는 한때, 타향이라 스스로 풀어지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살고 말 것 아니고 터 잡고 사는데 사람이 언제까지 긴장 상태로 살 수는 없다. 남 눈치 안 보고 마음이 편한 곳이 좋다.
둘째는 시골살이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주거와 경제활동이다. 에너지가 가장 왕성한 이주 초기에 두 가지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살 거처 마련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테고. 경제활동이 문제인데, 사실 나는 그다지 성공한 편이 아니라 조심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그동안 시행착오가 많았기 때문에 조언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만약 내가 시골살이를 다시 시작한다면, 비닐하우스 한 동 정도 마련하겠다. 비닐하우스 안에 구획을 나눠, 감자, 고추, 가지, 호박, 배추, 무 등등 계절별로 순차적으로 수확할 수 있는 농작물을 심겠다. 수확한 농산물은 공판장에 싼 가격으로 내지 않고,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직접 팔거나, 지역 로컬푸드 매장이나 도시 직거래 시장 등에 내다 팔겠다. 성과가 괜찮으면 비닐하우스를 한 동 정도 더 늘리는 것은 고려해 보겠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겠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에게 비닐하우스 두 동 정도 농사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량이 아닐까.
비닐하우스 한 동만 알차게 돌려도 농촌에서 사는 생활비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두 동이면 꽤 괜찮은 수입을 올릴 수 있고.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