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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소나무 Oct 10. 2024

우리 집안에 망조가 들었다

중요한 것은 정신줄 놓지 않는 것.

   아침 5시 반쯤 일어나 법정 스님 글을 필사하고 아내를 서초구청에 태워다 줬다. 서초구청 마당에서는 매달 둘째와 넷째 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직거래장터가 열린다. 전국에서 농가들이 자신이 직접 생산한 물건을 가지고 와서 판매하는 장터인데, 우리는 고구마, 감자, 당근 등 제철 야채를 으깨서 만든 디저트 빵을 팔고 있다. 밀가루 대신 보릿가루로 만들어 속이 편한 것이 특징인 빵이다.  

    

   아침 7시쯤 서초구청에 도착하여 “자매결연 도시 남원시”라고 적힌 부스에 소형 냉동고를 설치하고 하얀 플라스틱 테이블에 물건을 전시했다. 장터 참가 짬밥이 늘어날수록 부스 정리 시간이 단축되어 요즘은 30분 정도면 테이블 배치가 모두 끝난다. 부스 정리가 끝난 후 장터에 아내를 혼자 두고 오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허공으로 자유낙하를 하는 듯한 이 고행이 언제나 끝나려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마음 써야 할 것은 만나는 이웃에게 좀 더 친절해지는 것이다. 내가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났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 내 안의 따뜻한 가슴이 전해져야 한다. 그래야 만나는 것이다.” 오늘 필사한 내용이다. 오늘 아침 서초구청에서 아는 사람(과천 ‘바로마켓’에서 같이 장사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자기가 만드는 떡을 주기에 나는 우리가 만드는 빵을 줬다. 서로 물건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졌다.      


   돈암동 집으로 돌아오니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다. 어머니와 함께 아점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요즘 우리 집안 식구들 일이 대체로 잘 안 풀린다는 것에 화제가 미쳤다. 내 사업을 비롯해 형제들 일이며 자식들까지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데 하는 일들이 시원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아니 인간관계나 건강, 도모하는 일 등이 꽉 막혀 답답한 형국이다. 답답해하시는 어머니에게 며칠 전에 아내와 나눴던 이야기를 해 드렸다.      


   “우리 집에 망조가 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식구들이 하는 일마다 어떻게 이렇게 안 될 수가 있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식구들이 아프지 않고 버티는 힘이 있다는 것 아니겠나. 섣부른 놈들 같았으면 벌써 꼬꾸라지지 않았을까. 어떻게든 이 컴컴한 터널을 빠져나갈 때까지 아프지 말고 잘 버텨보자. 그때 되면 우리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겠나.”      


   아내가 말했다. “나도 망조가 들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다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을 뿐이다. 당신이 그 말을 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집안에 망조가 들었다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닐 텐데 우리가 어쩌겠나. 버틸 수 있는 한 최대한 버티면서 타개할 방안을 모색하는 수밖에.”      


  우리 이야기에 어머니도 말씀을 보태셨다. “중요한 것은 정신줄 놓지 않는 것이다. 건강 잘 챙겨가며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오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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