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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J Dec 17. 2024

20대, 촛불을 들지 못했고

30대, 응원봉을 들었다. 

[나다] 20촛불을 들지 못했고 30응원봉을 들었다

- 어느 30대의 부채감으로 


  오랜 우울을 앓고 있다. 여전히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매일을 보내고 있지만, 누군가와 지독하게 연결되고 싶지만 실은 혼자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지만, 금융앱에 30대 여성의 평균 자산을 조회해보며 초조해하고 있지만, 미래의 불안까지 끌어안고서는 정작 유튜브 쇼츠에 넋을 놓고 있지만 어쨌든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살고 있다.      


  평화가 깨진 건, 지난 12월 3일, 한밤 중 날아든 비상계엄 소식이었다. 그때의 나는 아주아주 오랜만에 헬스장에 가서 겨우 30분의 운동시간을 채운 후 막 돌아오던 참이었다. 습관적으로 엑스를 켰고 최애의 새로운 소식을 기대했던 나는 눈을 의심했다.      


  윤. 이것 뭐예요.     


  그러니까 21세기, 그것도 2024년의 끝자락에서 ‘비상계엄’이라고? 혹시 내가 아는 그 계엄과 그가 아는 이 계엄이 다른 의미였던가. 모든 언론사에서 일제히 속보가 떴고 SNS를 통해 국회로 몰려가는 국회의원들의 소식이 전해졌다. 군인들이 국회 앞을 장악했고 몇몇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었다. 장갑차가 도심으로 진입했다는 공포스러운 소식도 전해졌다. (이건 루머지요?)      


  불과 일주일 전, 서울 출장길에서 한 차선을 가득 메웠던 장갑차들을 본 일이 있다. 당시에 팀원들끼리 “요즘 시국에 저런 건 좀 무섭다” 정도의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났다. 혹시 그 행렬이 계엄과 관련있는 것이라면?     

  씻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쭈그려 앉아 핸드폰만 붙잡고 있길 한참, 집에 있는 참치캔이 몇 개 였는지, 왜 라면을 사놓지 않았는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본가로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했다. 예상치 못한 계엄이라면 그보다 더한 전쟁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더해졌다. 정말로 그렇다면 일단 씻어야겠다.     

  어쩌다 의식의 흐름이 샤워로 흘러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핸드폰을 꼭 쥔 채 화장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국회의원들의 노력 덕에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지만, 당장 당일 아침부터 방송작가인 나의 생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각종 뉴스특보로 정규 방송들이 모두 죽었고(편성 삭제라는 뜻) 방송이 밀리거나 없어지면서 작가들은 원고료를 못 받거나 기한 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방이지만 방송가에 몸 담고 있는 나로서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슬프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이건 작가들만의 고충은 아니었다. 나라가 실시간으로 망하는 걸 보고 체감한 국민들이 한둘이랴.      


  그럼에도 일은 해야 했다. 비상계엄해제와 동시에 탄핵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며 여전히 혼란스러운 정국이었음에도, 내겐 예정된 시사(방송사 국부장과 완성본을 보여주고 합평 받는 일) 일정이 있었다. 간밤에 모두 잠을 설쳐서였을까, 어쩐지 모두 부은 채로 마주한 방송국 사람들.  “와 어떻게 계엄을?” 이라는 말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선 무한 피드백 지옥에 갇혀 녹초가 된 채 퇴근했다. 그 주 주말, 다시 모인 팀원들은 나라 걱정과 편성의 불확실성이라는 두 가지 논제를 두고 편집을 손 봤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새벽 다섯 시 해산을 외쳤다.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여야가 첨예하게 부딪히고 시민들은 국회 앞으로 모이는 와중에도 꼼짝없이 노트북 앞에 앉아 원고를 쓰고 자막을 뽑았다. 사흘간 씻지도 못한 채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렇다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뉴스를 확인한 후 뒷목을 잡길 여러 차례, 참지 못하고 SNS에 주어가 명확한 저격글을 올렸는데 팔로워수가 줄었더라. 누군지 모르겠지만 잘 가요 당신.

      

  원고와 자막을 모두 송부 한 채 달력을 보니 어느덧 12월 13일이었다. 나는 다음 날 있을 서울 출장에 합류하기로 했다.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루어지는 날, 반드시 국회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결심이 있어서였다.     


  대단한 애국심이라든가 정의감이라든가, 한 정당에 대한 열렬한 지지, 혹은 현 사태에 대한 맹렬한 분노 때문은 아니었다. 나를 움직인 건 ‘부채감’과 ‘죄책감’이었다. 20대를 이명박근혜로 보내놓고선, 2014년 세월호를 보았음에도, 국정농단 사실에 나라가 뒤집혔을 때도, 국민들이 모두 거리로 나섰을 때도, 그들이 촛불로 힘찬 물결을 만들어 냈을 때도 나는 그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보고 환호했으면서도 영 찝찝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20대의 나는 정말로 먹고 사는 것이 더 중요했었다. 하지만 한 번도 못 나갈 상황이었나,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을수록 의식 저편의 죄책감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래서 이번 국회행은 내게 무척 중요했다. 지난 촛불이 만들었던 세상을 향해 지금에라도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새벽 다섯시 반 집을 나섰다.      


  마침 나는 케이팝 덕후였고 응원봉은 3개나 있었다. 에어캡에 곱게 싼 응원봉을 백팩에 욱여넣으며 어쩐지 마음이 든든해졌다. 다섯 시간 동안 달려 도착한 출장지에서는 바로 업무가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일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팀원들과 나는 곧장 국회의사당 역으로 향했다. 인파에 밀려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을 따라 또 한없이 걸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메인 존까지는 갈 수 없었고 안내에 맞춰 그 자리에 앉아 시위에 참여했다.      


  시간이 갈수록 손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사람들의 구호에 맞춰 응원봉을 흔들다보니 추위도 견딜만 했다. 당이 떨어질 때는 휴게소에서 산 초콜렛을 나눠 먹었는데 좀 있으니 옆자리 케이팝소녀들이 빼빼로 (나중에 알고 보니 플레이브의 팬들이었다!)를 나눠줘서 힘을 낼 수가 있었다. 그렇게 과자를 우걱우걱 씹으며 표결 소식만을 기다렸다. 체력이 약한 대표님은 어느샌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뜨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데이터도 전화도 터지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또다른 고행이었다. 하지만 각종 인격모독을 겪은 케이팝 팬들에게 (새벽에 사람들 야외에 대기시키기, 기한 없이 기다리게 하기 등) 이 정도는 뭐... 라고 하지만, 이것들아 너희도 좀 바꿔봐.      


  그런 답답함이 지속되던 가운데 통화가 가능한 몇몇의 시민들이 시위 현장에 있지 않은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달받았고 곧장 그 내용은 현장으로도 전달되었다. “아직 표결 시작 안 했대요.” “윤석열을 탄핵하라” “지금 개표 시작했대요” “윤석열을 탄핵하라” “지금 다 참여했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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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후, 한쪽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됐대요! 가결됐대요!!” 그때 색색의 응원봉이 모두 높이를 높였고 그 흔들리는 파도 속에서 나도 열심히 응원봉을 흔들었다. 손이 얼어 가방 속 핸드폰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인증샷 대신, 지금 이 순간을 눈에 담기로 한 나는 제자리를 방방 뛰며 그 순간을 만끽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나는 이걸로 지난날의 부채감을 덜 수 있었을까. 그 물음에 선뜻 답할 수가 없다. 준비된 체력이 모두 소진되었기에 저녁까지 자리를 지킬 수 없었고 방송을 준비해야 했기에 당일 부산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리 12시간을 잤고 뉴스에서 헌재 판결 전까지 계속 거리로 나오겠다는 시민들의 인터뷰를 보았다.      


  여전히 나는 생계를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 있고 꼬박꼬박 끼니를 챙겨 먹고 새벽 3시 56분, 이 글을 쓴다. 정말로 나는 언제까지고 이렇게 빚을 지고 살아야만 하는 걸까, 일상이 사라질 수도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와 오늘의 나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뉴스를 안 보고 살아도 문제 없는 어느 날을 꿈꾸며

  개운치 못한 마음으로 글을 갈무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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