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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마흔쯤의 연말

새해의 나에게

by 나다J

서른마흔쯤의 연말 / w. 나다

- 새해의 나에게

(*이 글은 2024년 12월 말에 작성되었습니다)


내 인생 가장 치열했던 한 해였다. 악착같이 돈을 벌고 정신과에 다니며 마음을 좀 챙기다가 최선을 다해 덕질도 했다. 원하던 독립을 마쳤고 뜻밖의 하자에 좌절하다가도 혼자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형광등을 갈았다.


촘촘한 하루 사이에 묵직한 불운과 찰나의 행운이 오갔다. 시련이 있을 때는 온전히 견뎠고 뜻밖의 행운은 마음껏 즐겼다. 어차피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의 예측은 언제나 빗나갔고 실망하는 건 너무나 지겨운 일이니까.


그렇게 삼십대 중반의 어느 날이 흘러간다. 무던한 듯 예민하게, 완전한 불안정이라는 모순적인 단어로.


요즘은 혼자인 방 안에서 고요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일에 신물이 나 창 밖으로 뛰어 내리고 싶다라는 충동에 휩싸인다. 부재중 전화를 열통씩 쌓아두면서 보고 싶은 친구와는 50분의 통화를 거뜬히 해내는,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 비상계엄령이 내려졌다. 자의식과잉으로 ‘역시 내가 너무 불온한 존재라 이 나라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가’ 라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믿을 수 없는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나라가 실시간으로 망해가고 있는데 실시간으로 수습도 된다.


정말이지 이상한 연말이다. 매일을 일기와 사회면, 반반씩 걸쳐놓고 살고 있다. 나라 걱정을 하다가도 쌀을 씻고, 정치 뉴스를 보다가 최애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국회 앞이 아닌 노트북 앞에서 이런 글을 쓰며 가슴 깊은 곳에서 죄책감이 몰려온다. 지방이라는 이유로 힘을 보태지 못할 건 없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라고 적고 그 주말에 서울로 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부산, 내 집이다.


치열했던 한 해를 잘 살아낸 덕인지 간만에 고요한 일상을 찾았다. 작년의 연말은 어땠나 하고 다이어리를 펼쳤더니 당시의 나는 뜻밖의 질병을 얻어 마음과 몸이 모두 아팠던 모양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헬스를 시작했고 일상 속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누군가에게 살인 예고장을 날리고 있었다.


올해 다이어리 속 연말은 어떤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역시 일이었다. 받아야 할 돈을 정리해놓고 몇 개의 사적인 만남, 연말 콘서트 그리고 계엄. 그 사이에 본가를 가는 일도 있었다. 작년과는 좀 다르게 보냈다 싶었는데 달라진 건 늘어난 몸무게와 활발해진 덕질 라이프다.


그렇게 푹 빠져있던 운동은 어느새 다시 귀찮아진 존재가 되었고 일 년 넘게 꾸준히 다녔던 헬스장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다. 이맘때 함께했던 서른이즈 친구들은 각자의 일로 만나지 못하고 있고 가장 자주 만났던 친구와는 싸우지 않고 멀어졌다. 달라진 것 같으면서도 여전하고, 영원할 것 같으면서도 사라져버린 것들과 마주하는 연말.


2024년은 계획된 치열함으로 스스로 일 지옥에 빠졌다. 목표한 것이 있었기에 그 과정을 반드시 견뎌야 했고 그저 나를 탓했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2025년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새해부터는 텀이 긴 프로그램을 선택해 조금이나마 여유를 가지고자 했는데 일정이 어그러져 한가한 연말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여력이라고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데 또다시 일이 이렇게 되니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왜 나는 항상................


그러니 자연스레 새해의 바람으로 이런 걸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좀 쉽게 쉽게 가는 한 해가 되길’


나라는 인간은 더이상 성숙해질 가능성이 없는 듯 하니 세상이 알아서 좀 너그럽게 굴어주면 안 될까? 예상치 못한 행운이 연달아 찾아와 행복한 불안에 떨었으면 좋겠고 호감은 사지 않아도 되니 미움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용기 내지 않아도 새로운 세계가 알아서 열려주기를, 통장에 돈이 잔뜩 쌓이지만 내 노력보다는 과한 보상이 주어지기를,


정리하면 2025년은 좀 날로 먹고 싶다는 뜻이다.


이 글을 적는 시점은 2024년 연말이다. 단 업로드는 2025년 1월에 된다.


2025년 1월, 또다시 30대의 어느 날을 보내고 있는 나는 이 글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방금 정리한 1월 ‘일’정을 보면 분명 허덕이고 있다가 만 나이만 한 살 더 먹었을텐데,

큰 변화를 바라진 않지만 그럼에도 갑자기 다 잘 되는 하루쯤은 가지고 있기를 감히 바라본다.


2025년의 나다에게

2024년의 나다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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