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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있고 싶을 때 누울 수 있는 권력

30대 돈미새의 생존기..려나요?

by 나다J

[나다] 누워있고 싶을 때 누울 수 있는 권력

- 30대 돈미새의 생존기


요 며칠 사람 같지 않게 살았다. 일이 많진 않은데 마감이 몰리는 바람에 개고생을 하고 이틀을 못 씻었다. 삼시 세끼는 배달로 해결했고 식기와 플라스틱 용기가 산처럼 쌓인 채 나를 노려봤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겨우 분리수거까지 마친 참이다.


실은 거절하려면 거절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한 푼이 아쉬운 건 언제나 나였다.


조져지는 것도.


방송가와 광고계의 곡소리가 나는 요즘, 들어오는 의뢰들의 페이 수준도 많이 낮아졌다. 경기가 어렵다느니, 제작비가 적다느니의 이유를 들어 내 페이를 후려치고 후려쳐, 아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하지만 내 통장 잔고도 바닥이었으므로 내친김에 바겐세일하는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과거의 내가 돈을 너무 많이 썼고 오늘도 가만히 앉아 끊임없이 돈을 쓴 나 때문이었다.


담배는 줄일 수 없으며, 커피 캡슐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고, 이렇게 개고생하는 내가 배달 음식 정도는 시켜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그리고 아이돌의 찬란한 시절을 놓칠 수 없다는 욕심에 결제를 거듭한다. 물론 집도 지켜야 하고 통신비도 내야 하고, 가스비는 왜 이렇게 올랐는지, 전기세는 왜 동일면적 대비 우리 집이 제일 많이 나오는지 등등, 계산해보면 끝이 없지만 여하튼 내 모든 소비의 대부분은 행복을 가장한 충동 조절 실패의 역사다.


먹고 싶은 걸 다 먹고 누워있고 싶을 때 누워 있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단 한 푼도 들어오지 않는 프리랜서의 삶을 택한 건 나였기에, 지금의 한탄은 스스로 불러온 재앙, 이른바 스불재라고 할 수 있다.


정말이지 이런 재앙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무리 그래도 발끈할 때가 있다.


급하게 의뢰를 맡겨 놓고 단숨에 결과물을 내놓으라 하기에 밤을 새서 원고를 보냈더니, 밤 열 시 반에 전화를 걸어와 태클을 거는 상대. (심지어 나는 아침 8시에 작업분을 넘겼음에도)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싶은 거다.


문제는 이런 놈들이 한두 명은 아니라는 거다. 대체로 급하게 작업을 맡기고 뒤늦게 피드백을 줘서 사람을 말라 죽인다. 내가 씻고 있을 수도 자고 있을 수도, 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핸드폰을 못 볼 수도 있는데 언제나 그랬듯 전화를 걸자마자 수정내용을 쏟아낸다. 의뢰할 때는 세상 급하게 연락을 해놓고선 피드백은 하세월인 지긋지긋한 패턴. 그런 와중에 이 생활을 너무 오래 해서인지 작업이 끝나도 나는 잠들지 못한다.


10년 이상을 종종거리며 살다 보니 이 삶에 정말 진저리가 나다가도 나이가 드니 이런 삶 마저 끊기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커진다. 더이상 일이 들어오지 않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으며, 좋아하는 것이 사라지고 친구에게 연락하는 것이 망설여 질 때, 그런 순간이 한 번에 찾아오는 그런 날. 그래, 그런 날을 생각하면 나는 어찌됐든 지금의 일을 감사히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오랜 불안은 내 성장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유복은커녕 평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 빚쟁이들에 쫓겨 서울 반지하방에 살았을 때 나는 아토피를 얻었고 그 사이에 동생이 태어났다. 더 이상 집세를 내지 못해 부산으로 왔을 때 처음엔 집이 없어 이모 집에 얹혀살았다. 20대가 넘어서까지도 가세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살 수 없어 그 집에서 탈출했다.


내 삶에서 돈은 그런 것이다. 돈이 없어 쫓겨날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사는 것, 고깃집에서 된장찌개가 아닌 고기를 시켜 먹을 수 있고 빨랫감을 매일 내놓는 것에 주눅 들지 않는 것.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


누워있고 싶을 때 누워있기 위해서, 만나고 싶을 때 만나기 위해서, 먹고 싶을 때 먹기 위해서, 하고 싶은 것 앞에서 인생 전체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나는 돈미새가 되어가는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탱하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조금은 재수 없는 한탄을

해도 괜찮은 건 역시나 작지만 소중한 잔고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나는 돈미새가 되어 매일 나의 젊음과 잔고를 바꾸며 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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