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흔한 깨달음
몇 주 전부터 온수매트가 계속 ‘삐빅’거리는 소리를 내며 꺼졌다. 처음엔 물이 부족해서 인줄 알았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기계에 물을 채우고 다시 잠들길 며칠,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매일 새벽, 같은 오류음이 반복됐고 어느 날은 짜증을 참다못해 온수매트를 끄고 춥게 자는 날도 있었다.
결국 오류코드를 확인해 보았다. 대충 봐도 물 부족은 아닌 것 같았다. 검색을 하면 분명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텐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귀찮았던 나는 또다시 바보 같은 짓을 반복했다. 온수매트를 고치는 대신 극세사 이불을 꺼냈고 두꺼운 수면 잠옷을 입었다. 보일러도 틀었다.
어쨌든 봄이 코앞이랬다. 뉴스에선 연일 곧 따뜻한 봄 날씨가 이어진다고 했었고 “요즘 완전 봄 날씨”라는 말이 흔한 안부 인사였다. 그럼에도 집은 추웠다. 집 밖에는 분명 봄이 왔다는데 내 집은 겨울이었다. 여전한 온수매트의 오류음을 들으며 밤새 일을 하기도 때로는 늘어지게 자다가 중요한 전화를 놓치기도, 어느 날은 모든 의지가 샘솟아 새벽에 기상하기도 그러다가 돌연사를 꿈꾸며 아침에 자는 나날이 며칠 더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온수매트 수리법을 검색해 봤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부품을 사고 케이블타이도 사고 수리법도 공부했다. 며칠이 지나 기다리던 부품이 배송이 왔고 고칠 틈도 없이 마감이 연달아 겹쳐 상자를 뜯지 못한 채 오늘이 되었다.
그사이에 봄이 되었다. 온다, 온다 말로만 들었던 봄이 집안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수면잠옷을 입기에는 조금 덥고 창문을 열어두어도 쌀쌀하지 않은 새벽, 봄이 왔을 때야 비로소 상자를 뜯어본 나, 모든 것이 다 허무해졌다.
사실 내 인생은 늘 이렇게 굴러왔다. 늘 타이밍이 어긋나면서, 간절할 땐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마음을 쓰면 쓸수록 결국 이루어지지 않고 마는, 그런 삶이었다.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좌절하는 내가 여전히 미성숙함을 알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운명은 이런 사소한 것 하나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걸.
긍정적인 마음 따위는 먹지 않기로 했다. 술술 풀리는 인생은 꿈꾸지도 않겠다. 인정하면 편해진다는 그 말도 믿지 않겠다. 그냥 불운을 떠안은 채로 살겠다. 이런 말 하면 부정 탄다고? 그럼 긍정 타는 건 왜 없는 건데.
네, 뭐 이런 똥글을 쓰고 있나 싶지만 사실은 안다. 이런 한탄 조차 내가 내 삶에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는 반증이라는 것. 정말로, 정말로, 그냥 좀, 미끄러지듯 살고 싶다. 이런 글이 철없고 한심하게 여겨질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