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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없었죠. 저는 ‘보통의 인간’이었는데

30대의 현실 적응기

by 나다J

철이 없었죠. 저는 ‘보통의 인간’이었는데

- 30대의 현실 적응기 W. 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 그런 생각에 심취해 있다. 경제적인 독립, 사회적인 명성, 타인과 가족이 되는 일,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일.... 이 모든 것을 성취해야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일까.


물론 그런 걸 고민하는 것 치고는 너무나 나태하게 살고 있다. 누가 봐도 어른이라 부를 수 있는 나이에 머물면서 여전히 방황 중인 것이다. 침대에 누워 SNS의 글을 뒤적거리고 “일하기 싫어”를 입에 달고 살며, 요즘 유행하는 MZ아이템들에 눈독 들이고 허황된 꿈을 꾸며 아직도 인생의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니 현실과 망상의 괴리는 점점 커져만 가고 마음은 조급해질 수밖에.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언젠가 스치듯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콘텐츠화되거나 내가 그려왔던 영광이 동년배의 누군가에게 돌아가는 일을 봤을 때. 그럼 나는 근거 없는 억울함에 한참을 우울에 빠지고 만다. 애석하게도 이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어렸을 때 사고로 얼굴을 다친 이후부터 늘 ‘언젠가’라는 시점을 두고 살았다. 친구들에게 놀림 받으며 울었던 날도 ‘언젠가’ 달라질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현실을 이겨낼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주위의 응원이 아닌, 현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구질구질한 집안 살림 속에서도 ‘혹시 내가 부잣집의 숨겨진 딸?’과 같은 망상을 하는 대신 계속 그 언젠가라는 말만 떠올렸다. 이런 상상은 20대가 되어도 30대가 되어도 계속 됐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에게 친절할 수 없고 누군가의 빛나는 성취가 내 것일 이유가 없는데도 그놈의 ‘언젠가’라는 생각은 도무지 멈춰 지지가 않았다. 지금은 비록 이 정도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거대한 착각, 나는 그런 망상에 빠져 사느라 평생의 시간을 보냈다.


균열이 생기는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인기 작가의 소설을 보다가 문득 나의 고민이 보편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세상은 이미 여기에 공감했다는 것에 절망했다. 그것은 영화이기도 했다가 드라마이기도 했다.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또 어느 날은 거울 속의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또 누군가에게 찍힌 사진을 받아보는 것에서도. 매우 일상적이고 사고 하나 없는 하루들은 매번 그 균열을 크게 만들었다.


‘언젠가’를 그렸던 수많은 오늘이 가리키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너는 특별하지 않아.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고 그저 보통의 인간”이라는 것. 매일을 망상으로 사는 내게 그것보다 괴로운 일은 없었다. 실은 평균 이상의 불행을 안고 살아왔으니 평균 이상의 보상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불운한 일이 생길 때마다 마치 이것은 내 미래를 위한 포인트를 쌓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런데 ‘보통의 인간’ 이 최선이라니!


영화 같은 결말도 소설 속의 감동도 유튜브의 중독성도, 그 무엇에도 해당 되지 않는 ‘보통의 인간’. 장롱 위 쌓이지도 못하는 아주 가벼운 먼지이거나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이름, 그것이 나의 결말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망상으로 너무 오랜 세월을 보내왔고 이미 굳어버린 뇌는 그 방향을 전환하지 못한다. 애써서 사회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도 문제없는 1인 가구의 삶을 사는 것도 혹은,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사소한 일에 깊은 우울에 빠지지 않는 것도, 그 어느 것도 잘하지 못 하는데 이제 와서 ‘보통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반쯤은 두려운 마음으로, 또 반쯤은 여전히 이름 없는 행성에 머무는 나의 정신머리를 지구로 당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제 그만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도 같다. 너무 늦어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쪽팔리게도 다시 한번 우울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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