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들 북 컬처: 매직 온 페이퍼] 전시 후기와 함께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강박이 있다.
1) 책은 반드시 종이책이어야 한다.
2) 읽은 책은 내 책장에 꽂혀 있어야 한다.
1번은 일종의 아날로그에 대한 갈망이며, 2번은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안정감이다. 그러나 2번 같은 경우에는 절판되었거나 책장에 꽂을 정도로 맘에 들지 않거나, 주머니 사정 등으로 인하여 가끔 타협하곤 한다. 만약 모든 책을 소유할 수 있다면 따로 작업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번은 절대 타협할 수 없다. 지난 몇 년간 퍼진 e-book 대중화는 오프라인 서점의 폐점 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더욱이 초. 중. 고 학생들은 교과서도 파일로 배포할뿐더러, 태블릿을 정부 사업으로 지원받아 나눠주기도 한다. 대학생들의 사정도 매한가지다. 대부분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수업자료를 내려받는다. 이제는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녹음과 타이핑이 있기에 수업 내용을 놓칠 우려도 없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e-book은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한다. 책을 읽는 행위에는 그저 그 정보의 습득뿐만 아니라 책을 구성하는 종이의 질감과 무게, 글씨의 모양과 크기, 표지의 색감과 재질 등과 교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책을 읽을 때의 장소와 향기, 커피 한 잔은 중요시하면서, 막상 책 자체의 요소들은 중요시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파일을 읽고 있다. 물론 이는 책을 어떻게 정의하기에 달려있겠지만 나에게 '책'이란 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포함된다. 조지 오웰의 <1984>가 공무원 문제집처럼 되어있다면 그만큼 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책이 하나의 디쉬(dish)라고 한다면, 작가의 글은 잘 준비된 식재료다. 최현석 셰프가 <흑백요리사>에 나와 얘기했던 것처럼 "주방에 셰프 위에 있는 건 단 하나, 재료"다. 좋은 재료가 출판사로 왔다면 그것을 멋있게 혹은 맛있게 가공해야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라는 격언도 있다. 질 좋은 소고기를 웰던으로 먹는 것과 레어로 먹는 것은 천지차이다. 한입에 넣었을 때 씹는 느낌도 다르며, 온도감도 다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빳빳하고 반들반들한 질감의 하얗고 무거운 종이'로 읽는 것과 '약간은 노랗고 거친 질감도 나며, 살랑거릴 정도의 가벼운 종이'로 읽는 것은 천지차이다. 또한, 태블릿처럼 '그저 평평하게 빛을 반사하고 있는 딱딱한 유리의 한 뒷면에서 발산하는 빛의 화면'으로 보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탔다고 했을 때, 왜 '책'을 사러 오프라인 서점으로 달려갔고, 다시 책이 인쇄될 때까지 기다리는가? 지금도 여느 온라인 서점을 들어가 보면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 모두 종이책보다 저렴하게 당장 구매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이책을 찾는다.
분명 작가의 글과 더불어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좋은 작가는 유능한 디자이너와도 만나야 한다. 그 책에 기대하는 외형을 그들이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의 외형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다. [슈타이들 북 컬처: 매직 온 페이퍼(Steidl Book Culture: Magic On Paper)] 전시는 독일 출신의 게르하르드 슈타이들이 설립한 출판사 '슈타이들'의 출판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이라는 타이틀은 이를 잘 반영한다. 이들이 책을 찍어내는 주된 노하우 내지 신념은 "SEE, TOUCH, HEAR, SMELL, FEEL"이다. 즉, 책은 "보고, 듣고, 맡고, 만지고, 느끼는" 대상이다. 이 느낌은 디지털 화면이 주는 것과 전혀 다르다.
여기서 책의 역동성에는 그저 겉표지만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소비물로서 책이 눈길을 끌어 소비를 고취해야 함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많은 독자의 성향이 그러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부차적이다. 책의 내용이 좋으면 표지가 예쁘지 않더라도 찾게 된다. 다만 아쉬움이 조금 남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책 안의 폰트와 줄 간격, 종이의 종류, 여백 등이다. 슈타이들 출판사에서 제작하는 어느 시리즈 책들은 모두 그저 빨간 표지에 검정 글씨의 제목과 함께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는 형태였다.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그 기묘한 감각만으로도 전시에서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적인 책들은 모두 비슷한 3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1) 저자의 얼굴이 크게 들어가 있다.
2) 파스텔 톤의 3~5가지 색을 가로로 그라데이션으로 칠해놨다.
3) 쨍한 단색 표지의 중앙에 동글하고 반듯하며 큰 폰트로 제목을 써놨다.
즉, 하나의 책이 히트를 치면 그 책의 디자인을 따라간다. 트렌드를 읽어주는 책들, 조금의 철학적 사유들을 담은 에세이들, 집중력을 도둑 맞은 이유를 얘기하는 책들이 그 히트작들이다. 실제로 이들은 저작권을 주장하며 고소하는 사례도 있었다.
사용하는 언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각 나라의 책의 양식은 달라질 수 있다. 가령 영어는 한 글자씩 옆으로 늘여 쓰고, 한국어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 먼저 한 글자에서 이뤄진다. 그렇기에 줄 간격과 글씨 크기 등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들이 얼마나 책의 가독성과 아날로그적 느낌, 책 자체의 분위기 등에 신경을 쓰는지는 의문이다. 주기적으로 서점에 가는 입장에서 봤을 때 책의 내용이 어떠하든, 책 대부분은 비슷한 종이와 크기, 구성을 가지고 있다. 소설과 에세이의 종이 질감이 비슷하며, 시집과 산문집의 종이 무게가 유사하다. 그들의 목표는 '얼마나 눈길을 끄는 표지 디자인에 성공했는가'이다. 내 책장에 꽂혔을 때 예쁜 책과 그 자체로 감정을 유발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루 만에 뚝딱 찍어낸 몽상을 예쁘게 디자인한 책과 수년간 고뇌하여 적어낸 단출한 표지의 책 중 당연히 전자가 더 잘 팔릴 것이다. 이는 주기적으로 서점에서 가판대의 책들을 둘러보며 "같은 출판사에서 낸 책인가?" "책이 너무 가독성이 떨어지네" "더 작고 가볍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심지어는 "서문부터 맞춤법이 틀렸네"라고까지 개탄해야 하는 사람으로선 매우 속상한 일이다. 출판사가 이처럼 책 자체가 아닌 겉표지에만 집착하게 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단순히 현대 소셜 미디어의 발전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그것에 동조하고 있는 많은 이들도 책임을 회피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