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39
니체의 '자유로운 정신'에 대한 묘사를 보면, 자유롭기는커녕 경직되고, 외골수고,
고립무원을 자초하는 차디찬 정신, 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정신으로 여겨진다.
짜라투스트라는 말한다:
" '자유로운 정신(精神)'은 다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고 산 (山)이며,
다정하기는커녕 쇠망치처럼 잔혹한 것이며, 불꽃 따위가 아니라 불덩어리 그 자체이며,
겸양이 넘볼 수 없는 긍지로 우뚝 선 것이며, 옹졸한 시인이 도피를 하는 곳도 아니며,
독수리가 닿는 높이만큼 깊은 심연이며, 그 심각함이 얼음처럼 차며,
강한 바람을 안고 요동치면서도 미끄러지듯 바다를 가로지르는 돛처럼 거친 것이다. "(1)
행복과는 이토록 거리가 멀듯한 자유로운 정신이 귀중한 이유는 그것이 '정신적인 진리'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진리는 결코 민중에 의해 소유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진리로 가는 문은 민중이 통과하기에는 너무 좁은 문이기 때문이다.
한편, 민중의 칭송에 도취한 소위 ‘현자(賢者)들’의 지혜는 '민중에게로 도달하는 회로’를 빙빙 도는
‘단순한 기지(機智)’ 로 그친다. (2) 민중의 비위를 맞추기에 적당한 상식적인 기지로 그친다는 것이다. 현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정신만이 통과하는 진리에의 좁은문을 선택하기보다는 민중의 환호와 칭송을 향해 열려있는 커다란 문으로 노선을 정한다. 민중을 향한 커다란 문은 바로 선동적인 권력이 지향하는 문이다. 그래서 이 큰 문에서 현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권력은 만나서 악수를 하기 마련이다.
짜라투스트라에 따르면 민중을 잡기 위해 권력자가 던진 그물에 '고매한 현자'가 제일 먼저 포획되고,
그물에서 집어내어져 그의 '당나귀'가 된다.(3) 주인이 고삐를 당기는 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당나귀 역할을 하면서 ‘고매한 현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 하인일 바에는 그대의 봉사로써 가장 이익을 많이 얻는 자를 구하라! ……
그의 정신과 도덕이 증대함에 따라 그대 자신도 증대할 것이다. " (4)
줄을 잘못 서면 자신의 고매성과 현자임은 끝장을 본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약으면서도 둔한 당나귀’ 다. (5)
(1)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p. 121-122 참조.
(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p. 119- 120 참조.
(3)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20 참조.
(4)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21
(5)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