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읽기 54
꼽추가 말한다:
"짜라투스트라여! ...... 당신은 맹인을 고쳐주거나 절름발이를 달리게 하거나, 또 지나치게 많은 짐을 진 자들에게서 짐을 얼마간 덜어줄 수도 있으리라." (1)
다분히 예수의 행적과 언행을 상기시키는 구절이다. 이에 짜라투스트라는 답한다:
"꼽추에게서 그 군살을 떼어냄은 그의 정신을 빼앗는 것과 같다." (2)
이 부분을 나는 두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 니체는 예수의 맹인 고침을 비유적으로 이해하고, 예수의 의도에 공감했다고 보는 것이다. 즉, 맹인의 두 눈을 고쳐 앞을 보게 해 준다는 것은 단순히 시력을 회복시켜 줌을 의미하지 않고, 맹인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고쳐주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꼽추나 맹인이 치유되어 오히려 빼앗기는 것이 '정신'이라고 니체가 말했다. 니체가 정신을 육체에 비해 경멸적으로 취급해 온 것을 생각해 보면 (3), 그리고 니체의 허무주의나 기독교적 수치심 비판 등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꼽추나 맹인이 치유되어 빼앗긴 것은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죄의 의식'을 잃는 것이다. 성서에서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로부터 눈을 고친 맹인에게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 (요한 9:33-34)라고 되어있다.
두 번째 나의 해석은 니체가 예수의 맹인이나 꼽추 구제를 글자 그대로 이해했다고 보는 것이다. 시력을 회복시켜주고 등의 혹을 사라지게 해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분명 예수의 구제 행위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폄하 (貶下)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나, 이 사람에게도 눈이 하나 없고 저 사람에게는 귀가 하나 없으며 그리고 세 번째 사람에게는 다리가 하나 없다는 것을, 거기에다 혀나 코나 머리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보았거니와 그런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돌아와서 겪은 것 가운데 하찮기 그지 않는 것이다." (4)
그렇다면 짜라투스트라가 산속 높은 곳 동굴에서 은거하다가 하산하여 사람들 사이에 '돌아와서 겪은 것'은 어떤 것들이길래 맹인이나 꼽추, 심지어 머리가 없는 사람들을 본 것이 그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다는 말인가?
짜라투스트라는 사람들 사이에 돌아와서 '너무나 역겨운 것들을 보고 있고, 본 일도 있다'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리하여 몇 번 본 후에 드디어 말했다. <놀라운 귀로다! 인간과 똑같은 크기의 귀로다!> 나는 더욱 자세히 보았다. 실로 그 귀 밑에는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질투에 얽힌 작은 얼굴도 볼 수 있고...... 부푼 영혼이 매달려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실로 이 거대한 귀는 말라빠진 작은 줄기 위에 붙어 있었다 --이 줄기가 인간이었던 것이다." (5)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이 글에서, 인간의 몸 만한 '귀'나 '눈'과 같은 신체기관은 글자 그대로의 육체적인 귀나 눈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이 공들여 오래 익혀서 잘 알게 되거나 잘하게 되는 직능이나 기능을 말한다. 그 분야에 탁월한 인물이 되기 위해 집중하여 고강도로 훈련한 결과, 특정 기능이나 직능이 과도하게 발달하여 인간성 자체를 압도하게 된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이렇게 설명해 나간다:
"단 한 가지만을 지나치게 많이 가졌을 뿐 그 밖의 모든 것은 다 없는 인간들--하나의 커다란 눈, 하나의 커다란 입, 하나의 커다란 배, 혹은 또 다른 뭔가 큰 것이 다름 아닌 인간들이다 -- 그러한 인간들을 나는 전도된 불구자라고 부른다." (6)
이어서 니체는 더욱 기가 막힌 상황을 지적한다. 즉 이런 '전도된 불구자들'이 사람들의 전형, 모범, 혹은 이상형이라고 대중이 생각하는 상황이다.
" 민중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 위대한 귀는 단순히 일개의 인간일 뿐 아니라, 위인(偉人)이며 천재인 것이다." (7)
사람들이 추앙하는 소위 천재나 위인이라고 하는 자들은 기술이나 직능의 면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지만, 한 인간으로 보기에는 온전하지 않고, 온전한 인간의 단편 (斷片)이나 파편(破片)__입, 눈, 배, 팔과 같은__에 불과한 것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입이 몸만큼 큰' 사람을 성서적인 상황에서 상상해 보자__바리새인이 떠오른다. 그의 세계는 율법과 관습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는 율법과 관습을 줄줄 외우면서 사람들의 행동에 적용시키는 두꺼운 입술의 직능인, 두꺼운 입술의 기술자다. 예수의 구제 행위가 완전한 구제가 되기 위해서는 맹인이나 꼽추의 육체적 구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바리새인과 같은 두꺼운 입술의 직능인을 구제했을 때 비로소 구제다운 구제라고 니체는 말하는 것 같다.
(1)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최승자 옮김, p. 180
(2)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56
(3) 니체는 '정신'이란 단어를 종종 경멸적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자유롭지 않은 의지에 대해 '징벌이나 앙갚음의 정신'을 지닌다고 하던가, "정신이란 그저 '정신처럼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기도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p. 237, p.216
(4)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p. 234
(5)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57
(6) 짜라투스트라는 말했다, 최승자 옮김, p. 180
(7)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P.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