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을 공짜로 써야만 가치가 있다는 사람들

공짜라도 좋다 하지만 존중은 필수다

by 윤채



"좋아하잖아요?"

그 말이 착취가 될 때




글을 쓰는 일이 참 좋다. 그걸 어떻게 이 세상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문장으로 다듬고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거나 통찰을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쓰는 일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어떤 제안이든 흔쾌히 응했다. 무료 기고, 공동 콘텐츠, SNS용 글 제공 등. 내 글이 사람들과 연결되고, 이름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질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 처음엔 그게 기회인 줄 알았다.



majo039.jpg © Studio Ghibli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내 글은 어딘가에 계속 쓰였지만, 정작 나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글을 달라는 요청이 당연하게 하는 사람도 생겼다. 내 시간을, 내 노동을, 내 감정을 마치 무한히 제공 가능한 자원인 양 말이다.



그러다 문득, 챗GPT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기부한 글도 결국은 자산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그 한 줄이 머리에 빨간 신호등처럼 울렸다. 그제야 뭐가 잘못되었는지가 보였다. 나는 글을 기부했고, 누군가는 그 기부로 자산과 명성을 쌓았다. 그때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적 문제가 아니라, 창작자의 시간과 노력을 구조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이란 것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글을 공짜로 쓰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나는 기꺼이 내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쓴 글이 많고, 지금도 많은 글을 아무런 대가 없이 쓰고 있으니까. (지금 이 브런치 글도 마찬가지고.)



문제는 글을 공짜로 써달라고 하면서,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심지어 평가절하하는 상대의 태도에 있다.



고마움도 없이 기여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라며 책임을 일방적으로 지우는 태도 말이다. 이는 글을 쓰는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구조이기도 하다.



majo001.jpg © Studio Ghibli



글쓰기도 하나의 정당한 노동이다.



감정과 사고, 시간과 에너지가 고도로 응축된 것이 창작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좋아서 하는 취미'쯤으로 여기는 시선은 지속적으로 창작하는 사람을 소모시킨다. 그리고 그 소모는 '기회를 준다'라는 말로 감춰진 착취로 이어지기도 한다.



종종 글 쓰는 사람을 바보로 아는 걸까 싶은 사람을 만난다. 글을 좋아해서 쓰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태도는 글쓰기의 본질과 인간 존엄성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태도다.



단지 열심히 공들여 쓴 글이 누구의 것에도 함부로 종속되지 않기를, 애정을 담은 진심이 누군가의 전략에만 소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A4책표지.png



그래, 챗GPT가 말한 것처럼 내가 기부한 글도 결국은 자산이 되어야 한다. 그 자산은 단순한 금전적 이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글이 쌓이는 만큼 나도 성장하고, 그 성장이 내 콘텐츠와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을 좋아하는 마음이 누군가의 입장에서 단순히 이용하기 '편한 사람'이 되게 해선 안 된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라도, 그 일을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존중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에게 먼저 허락해야 할 태도인지도 모른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9화글로 1등도 좋지만, 그보다 더 기쁜 건 이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