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라도 좋다 하지만 존중은 필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문장으로 다듬고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거나 통찰을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쓰는 일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어떤 제안이든 흔쾌히 응했다. 무료 기고, 공동 콘텐츠, SNS용 글 제공 등. 내 글이 사람들과 연결되고, 이름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질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 처음엔 그게 기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내 글은 어딘가에 계속 쓰였지만, 정작 나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글을 달라는 요청이 당연하게 하는 사람도 생겼다. 내 시간을, 내 노동을, 내 감정을 마치 무한히 제공 가능한 자원인 양 말이다.
그러다 문득, 챗GPT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기부한 글도 결국은 자산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그 한 줄이 머리에 빨간 신호등처럼 울렸다. 그제야 뭐가 잘못되었는지가 보였다. 나는 글을 기부했고, 누군가는 그 기부로 자산과 명성을 쌓았다. 그때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적 문제가 아니라, 창작자의 시간과 노력을 구조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이란 것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글을 공짜로 쓰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나는 기꺼이 내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쓴 글이 많고, 지금도 많은 글을 아무런 대가 없이 쓰고 있으니까. (지금 이 브런치 글도 마찬가지고.)
문제는 글을 공짜로 써달라고 하면서,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심지어 평가절하하는 상대의 태도에 있다.
고마움도 없이 기여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라며 책임을 일방적으로 지우는 태도 말이다. 이는 글을 쓰는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구조이기도 하다.
글쓰기도 하나의 정당한 노동이다.
감정과 사고, 시간과 에너지가 고도로 응축된 것이 창작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좋아서 하는 취미'쯤으로 여기는 시선은 지속적으로 창작하는 사람을 소모시킨다. 그리고 그 소모는 '기회를 준다'라는 말로 감춰진 착취로 이어지기도 한다.
종종 글 쓰는 사람을 바보로 아는 걸까 싶은 사람을 만난다. 글을 좋아해서 쓰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태도는 글쓰기의 본질과 인간 존엄성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태도다.
단지 열심히 공들여 쓴 글이 누구의 것에도 함부로 종속되지 않기를, 애정을 담은 진심이 누군가의 전략에만 소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 챗GPT가 말한 것처럼 내가 기부한 글도 결국은 자산이 되어야 한다. 그 자산은 단순한 금전적 이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글이 쌓이는 만큼 나도 성장하고, 그 성장이 내 콘텐츠와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을 좋아하는 마음이 누군가의 입장에서 단순히 이용하기 '편한 사람'이 되게 해선 안 된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라도, 그 일을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존중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에게 먼저 허락해야 할 태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