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수정을 통해 꽃 피는 예술이다
커서가 깜빡인다. 벌써 30분째다.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글은 멈춰버린다. 머릿속에서는 수십 가지 후보가 떠오르지만 손끝에서는 아무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빈 화면 앞에서 깜빡이는 것은 커서가 아니라 우리의 망설임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글은 쓰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처음 떠올린 문장은 대개 마지막까지 살아남지 못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였던 문장이, 글이 완성되고 나면 전혀 어울리지 않게 될 때도 있다.
많은 작가들이 고백한다. 첫 문장은 애초에 완성본이 될 수 없다고.
원고를 다 쓰고 나서 첫 문장을 통째로 갈아엎기도 하고, 아예 중간부터 쓰기 시작하기도 한다. 결국 첫 문장은 글을 다 쓰고 난 뒤에야 제자리를 찾는다.
내가 아는 한 블로거는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도 쓴다." 그게 전부다. 멋지지도, 인상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그는 매일 글을 쓴다. 첫 문장에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쓴다"라고 쓰고 나면, 그다음 문장은 의외로 쉽게 이어진다. "오늘은 날씨가 좋았다." "오늘은 별일 없었다." 평범한 문장들이 쌓이며 글의 방향이 잡힌다. 그리고 수정할 때는 처음 쓴 문장을 과감히 지워버린다.
중요한 건 완벽한 첫 문장이 아니라, 일단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첫 문장은 임시 발판일 뿐, 완성작에 반드시 남아야 할 문장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를 떠올려 보자.
첫 문장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읽기를 멈추는가?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두세 문장을 더 읽다 보면 글의 흐름이 보이고, 그 흐름이 흥미롭다면 끝까지 읽는다.
독자는 생각보다 관대하다. 첫 문장에 집착하는 건 글쓴이뿐이다. 독자는 그저 이 글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지, 공감되는지를 본다.
오히려 첫 문장을 지나치게 공들여 쓰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거창하거나 어색하게 멋을 부린 문장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 사람, 너무 애쓰는데?" 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차라리 평범하고 솔직한 문장이 독자를 더 편하게 한다.
헤밍웨이는 말했다. "초고는 쓰레기다." 그는 한 문장을 수십 번 고쳐 쓰기로 유명했다. 완벽한 첫 문장을 단번에 쓰는 게 아니라, 일단 쓰고 나서 고치고 또 고쳐 완성했다.
글쓰기는 단번에 완벽한 문장을 뽑아내는 마술이 아니다. 글쓰기는 수정의 예술이다. 처음엔 대충 쓰고, 그다음에 다듬고, 또 다듬는 과정. 그 과정에서 첫 문장도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간다.
나 역시 이 글의 첫 문장을 처음엔 이렇게 썼다. "당신은 첫 문장 때문에 글을 포기한 적이 있는가?" 하지만 너무 딱딱하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첫 문장은 언제나 우리를 배신한다."라고 바꾸었다. 훨씬 더 생생하고, 독자가 상황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또 "커서가 깜빡인다. 벌써 30분째다."라는 문장으로 바꾸었다.
이렇게 첫 문장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혹은 다 쓰고 나서 비로소 완성된다.
완벽한 첫 문장을 기다리지 마라. 그 시간에 아무 문장이나 쓰라. "오늘은 날씨가 좋다." "나는 지금 화가 났다." 심지어 "아, 뭐 쓰지 모르겠다."도 괜찮다.
한 문장을 쓰면 두 번째 문장은 의외로 쉽게 이어진다. 세 번째, 네 번째 문장이 따라온다. 어느새 당신은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수정할 때 처음 쓴 문장은 아무렇지 않게 지워버리면 된다.
중요한 건 완벽한 시작이 아니라, 시작 그 자체다. 완벽한 첫 문장을 기다리다 끝내 쓰지 못하는 사람보다, 형편없는 첫 문장으로라도 시작해 끝까지 쓰는 사람이 훨씬 낫다.
지금 당장 커서를 움직여라. 아무 문장이나 쓰라. 그 순간이 바로 당신의 글쓰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