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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타이핑부터

AI가 못 쓰는 문장은 당신의 손에서 시작된다

by 윤채

글을 쓰려다 멈추는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생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비문은 아닐까?"

"이런 내용 써도 될까?"

"좀 더 구조를 잡고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 때마다 손끝은 멈춘다. 머리는 복잡해지고 커서는 깜빡이기만 한다. 그 순간, 글쓰기는 더 이상 글쓰기가 아니라 '머릿속 회의'가 되어버린다.



생각하면 할수록 글은 멀어진다

나도 그랬다. 글을 쓰기 전 며칠을 고민했다. 어떻게 써야 읽힐까, 어떻게 써야 완벽할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생각을 많이 하면 할수록 글은 점점 멀어졌다.



고민하다 반대로 해보기로 했다. 생각을 멈추고 손부터 움직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문장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은 것은 글은 생각해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생각이 만들어진다는 점이었다.



머릿속에서 문장을 완성하려 하면 영원히 시작할 수 없다. 하지만 일단 한 문장을 화면에 옮겨놓으면, 그다음 문장이 보인다.



첫 문장이 형편없어도 상관없다. 두 번째 문장을 쓰다 보면 첫 문장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알게 된다.



글은 순서대로 완성되지 않는다. 글은 쓰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모양을 찾아간다.




AI 시대, 그래도 손끝이 필요한 이유

AI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글쓰기도 AI가 대신해 주는데, 내가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그 질문은 언뜻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위험한 착각이다.



AI는 생각을 대신 정리할 수 있어도, 감정을 대신 경험할 수는 없다. AI가 문장을 대신 써줄 수는 있어도, 그 문장 속에 당신의 체온과 맥박을 담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 비가 와서 기분이 우울했다."라는 문장을 AI에게 시키면, AI는 "비 오는 날의 우울함"을 수십 가지 표현으로 변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장에는 당신이 그날 느꼈던 공기의 냄새,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의 리듬, 그 순간 떠오른 사람의 얼굴이 없다.



AI는 풍경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감정을 재현하지는 못한다.



글쓰기란 '무엇을 아느냐'보다 '무엇을 느꼈느냐'의 기록에 가깝다. 자신만의 느낌을 손끝으로 옮기는 순간, 글은 비로소 살아난다.



손이 생각보다 빠르다

머리로 쓰려 하면 문장이 막히지만, 손으로 쓰면 생각이 열린다.



심리학적으로도, 손을 움직이는 순간 뇌의 판단 영역보다 감각·운동 영역이 먼저 활성화된다고 한다. 즉, 생각보다 손이 먼저 길을 연다.



그래서 나는 글이 막힐 때마다 노트북을 열고 무작정 타이핑부터 한다.



"아무 생각도 안 나."라고 쓰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다음 문장이 따라온다.



"그래도 이렇게 쓰고 있으니 마음이 좀 편해진다."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에 이상한 꿈을 꿨다."



이렇게 문장이 이어지고 문단이 생기고 글의 리듬이 돌아온다. 처음 쓴 "아무 생각도 안 나."라는 나중에 지워도 좋다. 중요한 건 그 문장이 당신을 다음 문장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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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은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행위다

글은 멈춰 있는 사람의 머리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흐르는 손끝에서만 탄생한다.



타이핑은 단순한 입력이 아니라,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물리적 행위다. 머릿속의 생각은 허상이고, 손끝을 통해 옮겨질 때 비로소 실체가 된다.



그래서 나는 '뇌 빼고 글쓰기'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생각을 버리자는 뜻이 아니다. 생각이 손을 방해하지 않게 하자는 뜻이다. 글쓰기는 생각의 예술이 아니라 행동의 예술이다.



AI가 못 하는 단 하나

AI 시대의 글쓰기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마지막 영역이 바로 이것이다. 기계는 감정 없이 문장을 만든다. 그러나 인간은 감정을 통과하며 문장을 쓴다.



문장을 쓰는 동안, 우리는 자신을 다시 본다. 손끝의 리듬에 따라 감정이 흘러가고, 타이핑의 속도만큼 생각이 정리된다.



그 모든 과정이 글쓰기의 본질이다.



AI가 만들어낸 문장은 완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망설임이 없다. 인간의 문장은 불완전하지만, 바로 그 흔들림이 진심의 증거다.



지금 당장 타이핑부터 해라

이제 당신이 할 일은 단 하나다. 지금 머릿속을 정리하려 하지 말고, 커서를 두고 아무 문장이나 써라.



"오늘은 머리가 복잡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쓰기 시작했다."



그 문장으로 시작해도 괜찮다. 글은 타이핑을 시작하는 그 순간 이미 움직이고 있다.



머리를 비우고 손부터 움직여라.



당신의 글은 생각보다 손끝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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