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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연고 Nov 01. 2023

강아지가 데려온 인연 2

[상상 오르골 -1-]

아.


그렇게 무슨 정신으로 여자에게 다가갔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여자가 먼저 말을 건네왔다.  

  


잘 지냈어?  

 

어? 어.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응, 보다시피. 강아지를 데려올 사람이 너였.. 구나.


그러게. 이 강아지 주인이 네 사촌오빠?


응, 오빠가 나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일요일 오전에 나오느라 좀 힘들었어.


그랬겠네. 너 일요일 오전엔 늘 늦잠 자는 거 좋아했잖아.


그걸.. 기억하네.......

 
 
어색한 미소와 함께 대화가 끊겼다. 이곳에서 이 강아지와 함께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우리 둘은 이름이 같았다. 정현수와 이현수.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친해졌던 우리는 힘든 고3 시기를 서로에게 의지하며 보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내가 한 고백을 그녀가 받아줘, 우리는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그녀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가게 되어, 우리의 연애는 그리 쉽지만은 않았었다. 새내기 생활이 바빴고, 학업이 바빴고, 친구들과 노느라 바빴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빴다. 그러다 보니 그녀와 연락을 하거나 만나는 횟수가 뜸해졌고, 그렇게 그녀는 어느 날 나에게 헤어짐을 말했었다. 그땐 어렸고, 나는 옆에 있는 소중함을 제대로 보지 못하던 바보였다.  

 


잠깐 앉을까?  


응, 이 옆에 공원이 있어. 괜찮아?


그래.

 


공원 벤치에 앉아서도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한동안 심장만 울려대고 머리는 멍했다. 그런 나를 배려해 주려는 건지, 이번에도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 주었다.  

 


회사 다녀? 너 원래 목표로 하던 회사 있었잖아.


어? 어. 원래 계획대로. 너는? 원래 하려던 일 하고 있어?


응, 나도 원래 하려던 대로. 학교가 이 근처야.


그렇구나….

 


결혼은?이라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대답을 듣기가 왠지 망설여져 다른 말들을 이어갔다.

 
 

예전에… 너와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좀 후회했었어. 너에게 제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한 거 같아서. 내가 우리 만나는 동안 너무 무심했던 거 같고, 좀 이기적이었던 거 같아서.


그랬나? 난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래도 난 좋은 기억들이 많아, 네 생각을 하면. 그냥 그때는 우리 둘 다 뭔가에 얽매여 있기에는 너무 바쁜 시기였으니까. 그리고 헤어지자고 말한 건 나였으니까,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던 사람은 나였지.


다행이네, 좋은 기억들로 남아 있어서.  


음… 그래서 고등학교 동창회에 한 번도 안 나왔던 거야? 내가 불편해할까 봐? 아니면 내가 불편해서?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뭐.. 그냥.

 


사실, 현수를 배려해 주는 마음으로 그동안 한 번도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와 친한 친구들 중에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는 친구가 없어서, 솔직히 그동안 현수가 그 모임에 계속 참여하고 있었는지 여부는 알지 못했었다.

 
  

난… 계속 고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참석했었어.  


어, 그래?


이유 안 물어봐?


이유? 이유가 있었어?


응, 네가 한 번쯤은… 모임에 참석할 거 같았거든. 헤어지자고 먼저 말해놓고, 다시 한번 마주치길 바라왔다고 말하면 뻔뻔해 보일까 봐. 그래서 우연처럼 만나게 되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한 적은 있었어. 후훗, 유비가 너를 이렇게 내 앞에 나타나게 할 줄은 생각도 못했었지만.

 
 
아……. 그 말을 하는 현수를 바라보려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현수의 손이었다. 깨끗했다, 네 번째 손가락까지. 스물여섯이 넘은 후,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겁이 났었다. 혹시 그녀가 결혼을 했을까 봐. 그렇게 나 혼자 겁을 내게 만들던 그녀가, 내게 헤어짐을 먼저 말했던 그녀가, 지금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는, 우연히 만난 이 일요일 아침에 나에게 말해오고 있었다. 나를 다시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난 스물여섯 된 후부터, 네 생각을 할 때마다 겁을 내고 있었어. 너의 네 번째 손가락을 볼 자신이 없어서.


훗, 우리 결혼하기엔 아직 너무 어려. 다행이지?


그러게. 다행이네.

 


유비가 내 현관으로 와줘서, 그 유비를 내가 네게 돌려줄 수 있게 되어서. 내가 이렇게 너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네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현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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