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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연고 Sep 20. 2024

상처에서 피어난 꽃

[상상 오르골 -1-]

빵집 문에는 종이 하나 달려있다. 손님이 문을 여닫을 때마다 딸랑-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그 아이는 그날 그렇게 딸랑- 소리와 함께 내 관심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시선은 언제나 땅을 향해있고, 긴 앞머리가 두 눈을 거의 가리고 있다. 두 볼 역시 양쪽에 길게 늘어진 머리로 가려져 있어,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어떤 날에는 반창고가 붙여져 있는 듯도 하고, 또 다른 날에는 유난히 머리를 더 내려 애써 뭔가를 가린 듯할 때도 있다. 아이의 가려진 얼굴은, 언젠가 어둠에 파묻혀 울고 있던 어린 소녀의 모습을 내게 되돌려 놓는다.


아이는 늘 그런 모습으로 목요일 저녁 시간 즈음 빵집에 들러 카스텔라와 단팥빵을 사간다. 오늘은 목요일. 이제 곧 그 아이가 올 시간이다. 딸랑- 그 아이가 빵집 문을 열고 내 시야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역시나 대답은 없다. 그 아이는 익숙한 걸음걸이로 빵 진열대로 걸어가더니, 망설임 하나 없이 카스텔라와 단팥빵을 집어 들었다. 왠지 나는 오늘은 이 아이와 말을 한 번 나눠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정말 덥네요. 


내 인사말에 놀랐는지, 아이가 고개를 조금 옆으로 기울여 곁눈질로 나를 한 번 힐끔 쳐다보고는 재빨리 다시 고개를 숙였다.


카스텔라와 단팥빵을 좋아하나 봐요. 저희 가게 오실 때마다 늘 이 제품들을 골라서 기억하고 있거든요. 저도 저 빵들 좋아해요. 오늘 특히나 카스텔라가 더 촉촉하게 만들어진 거 같아요.


빨리 계산은 해주지 않고 내가 말을 이어가자 초조함을 느끼는지, 아이의 손가락 끝이 서로 엉기며 꼼지락거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오늘은 왠지 내 끈기가 아이의 초조함을 이길 것만 같았다.


제가 늘 손님의 계산을 도와드려서요. 목요일에 손님 올 시간 전에 카스텔라와 단팥빵 남은 개수가 간당간당할 때는 괜히 제가 초조해지는 거 있죠. 후훗.


내 마지막 웃음소리가 아이의 마음을 건드렸을까. 그제야 아이가 손가락 끝의 꼼지락 거림을 멈췄다.


.. 저희가 새로운 빵을 내놓을 때마다 단골손님들께 시식용으로 좀 드리기도 하거든요. 혹시 초콜릿크림빵 좋아해요?


난 호기롭게 아이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아이의 어깨가 흠칫하는 게 눈에 선연히 보였다. 제발 아이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좋겠는데...  역시나 아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지도, 을 열어 목소리를 내고 지도 않은 듯했다.


계산을 마치자마자 아이는 빵이  봉투를 조심스레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평소보다 약간 빠른 걸음걸이로 가게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아이에게 해주고 싶던 을 가만히 혼자 읊조려보았다.


상처에서도 꽃은 피어요.

누구나 그런 꽃은 있어요. 

그 꽃은.. 그래도 참 이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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