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오르골 -1-]
같은 공간이었다. 같은 주방장이 만든 같은 음식인데, 그 두 맛은 어떻게 그리 달랐을까.
내 친한 친구는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중화 요리점 외동아이였다. 그런 친구의 생일날, 그 친구는 호기롭게도 꽤 많은 수의 친구들을 불러, 자신의 집인, 그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중화 요리점에서 생일파티를 열었다. 기다란 방에는 테이블들이 끝이 안 보이게 붙여져 있었고, 그 방안에 들어선 아이들은 들뜬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어린아이들에게 그렇게 화려한 생일상은 꿈만 같던 일이었다. 그날 그 중화 요리점 주방장 아저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요리실력을 뽐내며, 주방에 있던 모든 재료를 소진해 버린 듯한 날이었다. 친구들은 신이 났고, 한 껏 들뜬 마음을 숨길 필요 없이, 맛있게 생일파티를 즐겼었다. 내 생애에서 손꼽을 수 있을, 정말 맛있게 짜장면을 먹은 날이었다.
그 생일파티가 있은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시험기간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호기로운 제안을 하나 하셨었는데, 시험 성적이 제일 잘 나온 1등, 2등에게 짜장면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하셨던 거였다. 짜장면이 걸린 시험 성적에 별 기대는 없었지만, 공교롭게도 난 그 두 명중 하나가 되었고, 또 다른 한 명을 알게 되었을 때는, 시험지를 도로 돌려받아 모두 오답처리를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다른 한 명은 내 유치원 생활동안 늘 붙어 다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날 정말 좋아했고, 우린 유치원에서 늘 단짝으로 붙어 다니던 사이였다. 그렇게 지내던 중에, 내가 유치원을 옮기게 되었었는데, 하루는 그 아이의 아빠가 우리 집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아이가 나를 데려오지 않으면 밥을 안 먹는다고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으니, 한 번만 자신의 집에 나를 데려가서 자신의 아이를 달래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하러 오신 거였다. 그날 나는 그 아이의 아빠와 그 아이 집에 갔었고, 그 아이는 그날 다시 밥을 먹었었다.
그랬었는데...
얼마 전에 그 아이가 우리 반에 전학을 왔다. 중학교 2학년, 사춘기가 어렴풋이 시작될 시기인지라, 우리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도 알은체를 하지는 않았다. 서로 말 한 번 섞지 않은 채 잘 지내오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는 그 아이와 내가 아직 모든 끈이 끊어져버린 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한 친구가 와서 내게 물어본 질문 때문이었다. 그 아이의 요지는, 자신이 그 새로 전학 온 아이가 너무 좋아서 사귀자고 했는데, 사귀자는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그 아이는, 유치원 때 친하게 지내던 내가 지금 같은 반이라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는 거였다.
얼떨결에 치정극에 휘말려버린 나는 황당했다. 질투심에 눈이 먼 그 친구는 내게 전학 온 아이를 단념해 달라는데, 난 단념할 마음을 여태껏 품어본 적도 없었기에, 뭐라 대답할지 난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난 담담히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니 둘이 알아서 하라고. 내 대답을 들은 그 친구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은 채 돌아섰고, 그 후 들은 말로는 그 둘은 그렇게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됐다고 했다.
그럴 거면서. 도대체 왜.
그 후로도 난 그 아이와 말 한 번 나누지 않았다. 오히려 괜한 감정이 쌓여, 나는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인데, 난 그 아이와 이제 단 둘이 앉아서 짜장면을 먹게 되었다. 짜장면 면발은 또 왜 이리 긴지. 소스는 왜 이리 질척이는지. 젓가락은 왜 이리 잘 안 움직여지는지. 서로 마주 보고 앉아있는데, 말 한마디 안 나누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절대 없다. 그래서 난 그날 짜장면을 몇 입 입에 넣어보지도 못한 채, 결국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나 없으면 밥도 안 먹겠다고 했었으면서!
같은 공간, 같은 음식인데, 다른 생각이 있으니, 다른 음식이 되었다. 인생 첫 쓰디쓴 짜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