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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 너 또한 시가 될테니

by 블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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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튼 고교의 교훈은 네 단어로 요약된다. 전통(Tradition), 명예(Honor), 규율(Discipline), 최고(Excellence). 이곳의 공기는 고요하지만 숨이 막힌다. 75%를 아이비리그대학에 보내는 명문고는 결국 스카이캐슬의 미국판이었다. 1950년대 미국 엘리트 교육의 명암을 그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시 보고 우리나라 교육현실과 연결되어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들에게 미래는 정해진 진로와 우수한 성적이라는 좁은 문을 통해서만 주어진다. 수업시간에서의 시(詩)는 시험 문제 속의 인용구일 뿐, 살아 숨 쉬는 영혼의 언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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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 날, 키팅 선생이 들어왔다. 그는 학생들을 데리고 복도에 걸린 옛 사진을 보게 한다. 오래전에 졸업해 사라진 얼굴들 속에서, 그는 속삭인다. “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붙잡아라.” 그리고 시를 정의하는 교과서 서문을 찢게 하며 말한다. “시는 우리가 느끼는 원초적인 영혼의 언어다.” 그 순간, 교실 안에는 오래 잠들어 있던 낭만주의의 숨결이 깃든다.


월트 휘트먼은 미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으로 그의 구절을 <소피의 선택>에서 네이던이 읊었던 것을 기억한다.


“O Me! O life! … The answer: That you are here—that life exists, and identity,

That the powerful play goes on, and you may contribute a verse.”

(오 나여! 오 인생이여… 대답은 이것이다. 네가 여기 있다는 것—삶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정체성이 있다는 것, 강렬한 연극은 계속되고, 그 속에 네가 한 구절을 더할 수 있다는 것.)


영화 속에서는 "강렬한 연극이 이어지고 너 또한 시가 될테니..."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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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은 그 부름을 무대 위에서 응답한다. 녹스는 사랑을 향해 달려간다. 앤더슨은 침묵의 껍질을 깨고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불꽃은 언제나 현실의 찬 바람과 부딪친다. 닐의 아버지는 그에게 하버드 의대 진학을 강권한다. 연기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고민하는 닐에게 키팅선생님은 묻는다.


"아버지께 지금 너의 진심을 말했니?"

"아뇨, 먹히지 않을거에요. 아버진 내 인생을 자신이 계획하세요"

"그럼 넌 연기를 해 온 거다. 충실한 아들 연기.."

"아버진 의대아니면 다른 선택이 없어요. 연기를 한다면 저를 용납하지 않을거에요."

"넌 계약제 하인이 아니야..."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닐은 결국 연기를 마치고 삶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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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상 서랍엔 헨리 데이빗 소로의 시가 적힌 책이 있었다. 키팅선생님은 자신이 적어놓은 그 시를 읽으며 오열한다.



나는 숲으로 갔네.

나 스스로 살고 싶어서.

삶의 골수를 빨아들이고

삶 깊숙이 살기 위해

삶이 아닌 그 모든 것을

물리치기 위해

내 끝을 맞이했을 때

내 삶이 아님을 깨닫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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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희생양이 되어 학교를 떠나는 키팅 선생님.

마지막 장면에서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 외친 “O Captain! My Captain!”은 패배의 울음이 아니라, 남겨진 자들의 선언이 된다. 휘트먼이 링컨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시의 한 구절은, 이제 키팅에게 바쳐진다.


“O Captain! my Captain! our fearful trip is done…

But I with mournful tread, walk the deck my Captain lies, fallen cold and dead.”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 우리의 두려운 항해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나는 슬픈 발걸음으로, 갑판 위를 걷습니다. 내 선장님이 차갑고 죽은 채 누워 계십니다.)


그 짧은 순간, 교실은 더 이상 규율의 감옥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의 갑판이었고, 학생들은 항해를 계속할 새로운 선원들이었다. 웰튼의 벽 속에 잠시 열렸던 이 틈새는, 인생이라는 강렬한 연극 속에서 한 구절을 남기려는 모든 이의 가슴 속에서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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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낭만주의는 교과서 속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숨을 들이마시고, 가슴이 뛰는 대로 발을 내딛는 행위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의 마지막 구절은 무엇이 될 것인가? 너는 어떤 시가 되고 싶은 것인가?”


그 대답은, 각자가 써 내려가야 할 시 속에서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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