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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배틀애프터어나더 - 자유를 향한 끝없는 투쟁

by 블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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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닷지 승용차를 파란색 머스탱 GT500이 추격한다. 구비구비 고개를 넘는 미친 추격씬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거의 멀미를 유발시킨다. 잠시 후 그 뒤를 닛산 센트라 쿠페가 따라붙는다. 기똥찬 카 체이싱. 과연 누가 누굴 쫓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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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지금 미국의 민낯을 완벽히 드러내는 일종의 정치 영화다. 그런데 법정이나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숨은 저항군과 그들을 섬멸하려는 군대와의 비밀스런 전쟁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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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전 밥 퍼거슨(리어나도 디 카프리오)은 극렬 운동권 단체인 프렌치 75 소속으로 구속된 이민자들을 풀어주는 등 곳곳에서 소요를 일으킨다. 폭약 전문가이지만 사람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일종의 폭죽같은 공포탄이다. 같은 단체에서 만난 베벌리힐즈(테야나 테일러)와 사랑에 빠져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를 낳는다. 하지만 엄마는 도망치고 밥은 16년간 좌충우돌하며 딸내미를 혼자 키워낸다. 혁명이고 나발이고 딸내미 키우다가 진이 다 빠졌다. 하지만 숙적 스티븐 록조 대위(숀 펜)의 무서운 집착으로 밥은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고 딸 윌라마저 놓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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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의 질주(1988)>에서 우린 미국의 비밀스런 저항군들을 만났었다. 그들은 평화를 외치며 반전운동을 했고, 80년대에는 환경과 인권운동으로 전환했다. 그리곤 소식이 없었는데 <원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식 이민정책에 저항했고, 국경과 인종의 편견에 맞서 싸웠다. 반대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이너서클은 그들을 찾아 제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시끄러운 소요를 잠재우는 그들은 제국의 수호자임을 자랑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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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아메리칸 드림은 청교도 정착이후 서부개척사까지의 영웅서사를 기반으로 한다. 그들에게 가족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였고, 악인들로부터 약자들을 지켜내는 정의의 용사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살아있는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지고 성조기에 경례하는 서민들에겐 제국의 억압만 가득하다. 최근의 관세정책으로 전 세계에 주먹을 들이대는 모습은 더 이상 신대륙 탐험가의 면모가 아니었다.



살아야 하기에 몸을 낮추는 것이 처세이지만, 마음속의 저항은 살아있음을 알리는 활력이다. 그걸 실행에 옮기는 프렌치 75의 활극은 이 영화의 묘미이자 2025년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일종의 계몽이기도 했다. 억눌린 멕시칸들과 협력하여 혁명을 꿈꾸는 레지스탕스. 미국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놀라운 시그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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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PTA) 감독.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천착했다. 영원한 라이벌이자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늘 엄격하기만 한 창조주의 메타포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미국에서 가장 몽글몽글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 전환한다. 정확히는 약자를 돌보는 진정한 아메리칸 프론티어 정신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가장 웃겼던 미국의 특권층 크리스마스 모험가. 그들은 극도의 인종차별과 계급차별을 기반으로 멤버십을 형성하고 있었다. 얼핏보면 강고해 보이고 공포스럽다. 유색인종은 물론이고 유대인들조차 배제시키는 그들. 미국을 이끌어가는 실제 모습이 이런 자들이라면 정말 소름끼칠 노릇이다. 비겁한 배제, 끝없는 차별과 폭력에 맞서 우리는 끝까지 침묵해야 할 것인가.


크리스마스야말로 모든 권력과 율법과 계급과 차별을 사랑으로 녹인 메시아가 탄생한 날일진대 지금의 교회는 제국과 똑같이 율법과 차별, 계급과 독선의 모습으로 치닫고 있는 건 아닐까. 흔들리는 미국과 흔들리는 교회에 일침을 가하는 PTA의 날카로운 풍자는 유머와 함께 전해지며 우리를 설득한다.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결국 몰락할 것이라고. 교회의 울타리에 갇힌 예수님을 해방하라고. 투쟁이 없으면 변화는 생기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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