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가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 이 영화에 깃든 참혹한 진실의 서막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솟아오른다. 이 작품이 종교 분쟁에서 시작해 종족전쟁으로 비화한 레바논 내전(1975~1990)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결말의 충격이 너무 거세서, 스토리의 일부가 뇌에서 지워진 듯 줄거리를 제대로 이어 붙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원제 Incendies는 ‘불길’, 혹은 ‘화염’을 뜻한다. 동명의 연극은 레바논 출신 캐나다 극작가 와지디 무아와드의 작품이고, 드니 빌뇌브 감독은 그 연극을 본 뒤 직접 판권을 사들여 5년 동안 영화로 재창조했다.
영화는 실어증에 빠진 어머니 나왈이 공증인을 통해 남긴 유언에서 출발한다. 수학자인 딸 잔에게는 아버지를 찾아가라는 메시지가, 아들 시몬에게는 존재조차 몰랐던 형을 찾아가라는 지침이 주어진다. 쌍둥이는 엄마의 과거를 좇아 중동의 사막으로 향하고, 그 여정 속에서 ‘나왈’이라는 이름이 왜 고향 사람들의 표정을 굳게 만드는지, 그 이유를 서서히 마주하게 된다.
나왈은 무슬림 난민 와합과 사랑에 빠져 임신하지만, 우익 기독교 민족주의를 따르는 오빠는 그를 사살한다. 환영받지 못한 아이는 고아원에 맡겨지고, 나왈은 전쟁의 어둠을 피해 대학에서 불어를 공부한다. 네 해 뒤 아들을 찾기 위해 돌아왔을 때, 고아원은 이미 폭격으로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버스 안에 탄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기독교 민병대의 광기를 목격한다. 십자가 목걸이를 들어 보이며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나왈의 마음은 이미 더 깊은 어둠으로 잠식되어 있었다. 결국 복수를 결심한 그녀는 민병대 지도자를 암살하고, 그 대가로 악명 높은 감옥에서 15년 동안 고문과 성폭력을 견뎌야 했다.
영화가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분노했고 비통해했다. 한 여성을 파괴하는 비극의 가해자가 다름 아닌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 사랑과 평화를 설파해야 할 종교가 전쟁과 학살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는 현실은 관객을 더욱 큰 진실 앞에 서게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등장한다.
민병대 지도자가 식탁에 앉아 아들에게 “불어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다정하게 말하는 장면이다. 따뜻한 식사, 차분한 오후 햇살, 아버지의 온화한 목소리—겉으로만 보면 그저 평범한 가족의 풍경이다. 총성과 비명으로 가득한 전장의 이면에서, 폭력의 주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자연스레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수용소 담장 밖에서는 대학살이 벌어지는데, 담장 안의 가족은 정원을 가꾸고 음악을 듣고 아이에게 예절을 가르친다. 잔혹함과 평범함이 무섭도록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풍경. 이 병치는 두 영화 모두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악은 언제부터 이렇게 일상이 되었는가?”
그럼에도 살아남은 나왈. 삶은 과연 그 자체로 살아내야 할 거룩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가 말한대로 분노의 화염을 사랑의 샘물로 모두 녹여내기 위해 끝까지 참아낸 것인가. 현대사의 신화같은 비극앞에서 나는 그저 가엾은 삶을 살아낸 엄마의 위대한 사랑이 종교보다 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