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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Oct 27. 2024

이방인

 4년 정도 회사를 다니니 대리가 되었다. 사내 인간관계가 엉망이라 승진이 안 될 줄 알았는데, 우리 회사는 대리까지는 대부분 승진을 시켜주는 분위기였고 대리급 직원이 너무 모자라 충원을 해야된다는 인력 상황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승진해서 오랜만에 밥이나 살까 싶어 엄마랑 누나들한테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서희 누나는 당시 해외에 있었다. 그래서 서희 누나가 집에 들어오는 일정에 맞춰서 약속을 잡으려고 서희 누나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그런데 서희 누나가 갑작스러운 소식을 가져왔다. 근시일 내 누나가 국제결혼을 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누나들 중에서도 서희 누나랑 가장 친하다. 나이도 가장 가깝지만, 취향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가 나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던 서연이 누나나, 지극히 현실적인 성격이었던 서윤이 누나와 달리 나와 서희 누나는 예술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을 좋아했다. 누나는 나보다 그림을 잘 그렸고,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했다. 특히 영화는 우리 둘의 공통 관심사 였는데, 우리는 영화전문채널을 종종 함께 보거나 용돈을 모아 영화관에서 가서 친구처럼 지내며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어느 날은 누나랑 TV에서 '노팅힐'을 봤는데, 우리는 극 중 줄리아 로버츠에게 가십과 긴장의 연속인 미국과 대비되는 영국에서의 일화들을 보고 '영국'이라는 단어를 암울한 우리 집안과 대비되는 이상향의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이게 그저 추억거리에 불과한 어렸을 때의 장난으로 남았지만, 누나에게 이 '영국'이라는 단어는 강력한 인상으로 남았던 것 같다.


 아무튼 이처럼 예술분야에 나 못지 않게, 혹은 더 많이 관심이 있던 누나가 경영학과에 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무척 놀랐다. 누나가 영상학과, 적어도 미디어학과 같은 곳에 가서 꾸준히 영화에 대한 공부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버지가 권하신 것은 맞지만, 누나는 그 전부터 이미 경영학과에 가야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누나는 영국으로 한 번, 캐나다로 한 번, 교환학생을 총 두 번 다녀오고, 3학년 때부터 방학 마다 해외 인턴십을 나갔다. 그래서 나는 군 휴학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누나가 대부분의 시간을 해외에 있었기에 바로 옆 학교에 다니는 누나를 거의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걸 보면 누나가 좋아서 하는 일이 분명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먼 발치에서 응원했다. 누나는 그렇게 대학교 4년을 해외 관련된 프로그램으로 점철시키더니 결국 졸업 후 말레이시아의 한 전략컨설팅 회사에 입사했다. 그 이후 대학생 때 누나의 초대로 한 번 누나를 만나러 말레이시아에 갔었는데,


"누나, 오랜만이야. 얼굴 좋아 보이네. 여기 진짜 덥다. 누나는 이제 현지인 같은데?"

"계속 있다 보면 적응 될 거야. 너는 말레이시아 처음이지? 여기 진짜 좋아."

"응, 처음이야. 근데 뭐 우리 어렸을 때 갔던 태국이랑 큰 차이는 없어 보이는데?"

"아니야. 말레이시아가 동남아시아에서는 그래도 굉장히 부유한 편이야. 그리고 인프라도 나쁘지 않아."

"그렇구나. 누나 회사는 어때? 아무튼 전략컨설팅 회사면 이 나라 계열 회사는 아닐 거 같은데."

"맞아. 영국계 회사야. 우리 보스도 영국인이야. 솔직히 난 여기 아니고 한국 회사였으면 내가 다닐 수 있었을까 싶어. 서윤이 언니나 한국에서 취업한 다른 동기들 얘기 들어보면, 우리 회사는 진짜 합리적인 거 같아."

"너무 환상 가지는 거 아니야? 하하. 다 사람 사는 곳인데 그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나?"

"아예 다르다니까. 여기는 뭐 막내라고 수저 깔고, 승진 차례가 어떻고 하면서 승진 양보하고, 윗 사람이 말하면 무조건 들어야 되고, 이런 게 하나도 없어. 내가 네 성격을 아니까 하는 말인데, 너도 나중에 외국에서 취업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오호, 알겠어. 그럼 지금부터 외국어 공부 좀 해야 되려나."

"언어도 중요하지만, 활동이 더 중요해. 교환학생도 가고, 인턴십도 하면서 그 문화에 익숙해지는 게 훨씬 중요해. 어차피 너 영어는 충분히 잘하잖아. 여기만의 인터뷰 방식이 있고 일하는 스타일이 있어. 그런 걸 배우려면 열심히 학생 때부터 해외에 나가서 경험을 해봐야 돼."

"오케이, 오케이. 알겠어. 일단 그런 건 나중에 얘기하자. 오늘은 누나랑 재밌게 놀려고 온 거잖아. 얼른 재밌는 데 좀 갑시다."


 대화를 하며 받았던 느낌은, 누나가 해외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환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누나가 말한 것은 대부분 맞을 것이다. 승진 차례 문화 같은 것은 거의 없긴 하겠지. 그리고 수저 까는 건 우리나라 외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문화니까 말할 것도 없다. 윗 사람한테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도 아무래도 더 자유로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외국과 그 곳의 회사가 다 이상향은 아닐 텐데 말이다. 예를 들어 누나는 내 식성을 잘 안다. 나는 곧 죽어도 한식파다. 솔직히 양식이나 일식만 되어도 잘 못먹는다. 하물며 동남아나 인도 음식 등은 입에 대본 적도 없다. 외국 생활은 조직문화뿐만 아니라 그런 세세한 것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누나는 내가 아직 외국에서 취업을 하고 싶다고 확실히 밝힌 것도 아닌데 해외 취업 방법에 대해 역설하며 강권에 가까운 추천을 했다. 이를 미루어보면 누나는 지금 상황에 엄청나게 만족하고 있고, 완전히 이 생활에 빠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빠지게 되면,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이 흐려진다. 내가 보기에 누나는 그런 상태로 보였다. 혹시 누나의 해외 취업에 대한 의지가 교환학생과 인턴십을 통해서 생겨난 게 아니라, 오히려 맹목적인 해외취업의 의지가 먼저 선행하고 역으로 교환학생과 인턴십은 그 수단적 성격으로 후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누나는 그 회사에서 3년을 근무했다. 그리고 국제 결혼의 상대방이 될 외국인 남편도 이 회사에서 만났다. 바로 그 영국인 보스였다. 나이가 12살 정도 차이가 났다. 그 남자는 해당 전략컨설팅 회사의 본사 직원으로, 말레이시아 지사에 관리자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인사발령으로 다시 영국 본사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누나 역시 결혼과 동시에 말레이시아를 떠나 영국으로 이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노팅힐에서 본 누나의 이상향, '영국'이 현실화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사 채용인 누나는 본사로 함께 발령을 낼 수는 없어, 회사를 그만두고 따라가게 되었다고 한다.


 전화를 받고 나서 세 달 쯤 지나고 그 남자를 데리고 누나가 한국에 인사를 왔다. 아버지는 조악하게나마 영어를 짜내서 외국인 사위한테 말씀을 건네셨다. 몇 번 농담을 건네다가는 할 말이 떨어졌는지 외국인 매형에게 연신 소주를 먹였다. 사람은 취해봐야 그 속을 안다며, 외국인 입장에서는 술 강요 이상으로는 딱히 보이지 않을 짓을 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술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별 일은 없었고, 성격이 워낙 둥글둥글해서 아버지도 맘에 들어하시는 것 같았다. 또 국제결혼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선진국 사람이라 다행이라며, 앞으로는 사돈을 만나러 갈 겸 영국에 자주 놀러갈 수 있어 좋겠다는 말도 하셨다. 그리고 결혼식은 양국에서 한 번씩 올리기로 했다. 이렇게 대략적인 결혼식을 위한 일정 조율이 끝나고 누나는 매형과 영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처음에는 급작스러워 당황했지만, 서연이 누나 때처럼 이건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었고, 우리 서희 누나가 한 선택이라면 충분히 고심 끝에 했을 것이라 믿고 앞으로 행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나는 이제 '노팅힐'의 줄리아 로버츠처럼 평생 영국에 살게 되겠지.


 계획대로 양국을 오가며 결혼식은 끝이 났다. 적어도 결혼식에서 누나는 무척이나 행복해보였다. 그래도 서희 누나가 해외 결혼을 해서 앞으로 보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아버지와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서윤이 누나도 와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다 모이는 행사가 되었다. 누나는 회사 일로 종종 영국에 출장을 오니 겸사겸사 서희 누나를 만나고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웠다. 나도 영국에 업무차 올 일이 있으면 좋을 텐데, 내 업무 반경에 영국이랑 엮일 일은 없었다. 이처럼 서희 누나는 우리 가족 구성원 모두와 관계가 좋은 사실상 유일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우리 집에서 가장 사랑 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마지막까지 누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며 영국을 떠나왔다.


  내가 그 다음에 영국에 간 것은 2년 후 여름 휴가 때였다. 만나보니 누나는 얼마 전에 임신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니 배가 약간 부른 것 같기도 했다. 몇 개월 차인지는 정확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는 누나에게 축하를 건넸다.


"일단 임신 축하해. 계획하고 낳는 거지? 아들인지 딸인지 몰라도 누나 닮았으면 아기는 예쁘겠다. 엄마랑 아버지한테는 말했어?"

"아니, 아직. 그래도 고마워. 임신은 당연히 계획했지. 너도 결혼할 생각이면 슬슬 여자친구 사귀고 해야지?"

"결혼이라... 아직은 잘 모르겠어. 당장은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데 결혼 생각을 먼저 하는 게 이상한 거 같기도 하고."

"한국에서 못 찾겠으면 외국에서 찾아보는 건 어때? 시야를 넓혀보는 것도 좋아."

"찾고 그럴 문제는 아닌 거 같아. 그냥 아예 결혼이 하기 싫은 거 같기도 하고, 일단 내가 연애든 결혼이든 하고 싶은지 그것부터 정해야 될 거 같은데."

"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걸 고민하고 있어? 참나, 하긴 이해가 되긴 한다."

"뭐가 이해가 돼?"

"나도 한국에 살았으면 연애든 결혼이든 안 했을 거 같거든."

"왜?"

"일단 한국은 너무 연애나 결혼 같은 문제에 있어서 허례허식이 많은 것 같아. 예를 들면 여기는 출산도 혼외출산을 많이하고 정부에서도 혼인 내 출산과 동등하게 지원을 많이 해줘. 그리고 남자들도 젠틀하고, 여자를 배려할 줄 알아. 솔직히 나는 한국에서 그런 남자들은 못 봤거든."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겪어 온 환경에서만 놓고 보면 수준 이하의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며 철저하게 개인과 집단을 분리해서 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나는 조금 성급한 일반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만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니면 되잖아. 그 정도는 찾으면 있을 거야. 멸종위기종도 아니고."

누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없어. 있어도 그걸 찾는 탐색비용을 감당 못해. 사막에서 바늘 찾기인데 어디서 그런 남자를 찾을 것이며,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 것이며... 끝이 없는 문제가 돼. 너도 알면서 왜 모르는 척 해? 난 그나마 내 동생인 너 말고 믿을 만한 남자를 본 적이 없어."

"아니 그래도 누나, 누나 답지 않아. 그건 조금 위험한 넘겨 짚기 같아. 우리가 보는 게 다가 아닌 걸 알잖아."

누나가 한숨을 쉬었다. 약간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끝난 게 아니야. 제도를 포함한 환경적 문제가 있어. 아까 말한 출산 지원도 그렇지만, 너도 그렇고 서윤이 언니도 그렇고 한국 회사는 업무 강도가 너무 강해. 그렇다고 노동 시간 대비 돈을 많이 주는 편도 아니야. 아기를 키우거나 부부 생활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여기 오니까 솔직히 배달 음식도 한국 만큼 편하지 않고, 가게들도 일찍 문을 닫는 게 불편하긴 해. 그런데 그런 자영업자들조차 자기의 삶과 일을 철저히 분리해서 지켜내. 뭐 저기 시티 쪽에 가면 업무 강도가 한국 저리가라 할 정도로 빡센 곳도 있지. 그런 곳은 대신에 압도적인 연봉으로 보상을 해줘. 평균적인 삶의 수준이 높고, 돈을 벌고 싶더라도 선택지가 있다는 뜻이야."


 솔직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노동 시간이 길고 급여는 낮은 편이다. 배달 음식이 편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들의 시간을 갈아서 만들어진 인프라였다. 그래도 반박하고 싶었다. 내가 나고 자란 나라다. 내 스스로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나쁜 나라로 누나가 내려치게 둘 수는 없었다.


"대신 우리나라 근로 관련한 법들이 나쁘지 않아. 물론 잘 안지켜지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해고하기가 어려운 구조야. 영미권은 해고가 상대적으로 쉽잖아. 장단점이 있는 거 아닐까?"

하지만 이 정도로는 기세를 탄 누나를 누를 수는 없었다.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아.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종신 고용시대는 이제 거의 끝나지 않았니? 우리 아버지만 해도 정년을 못 채우고 퇴임하셨잖아. 더 큰 문제는 뭔 줄 알아? 직장 내에서 직원들끼리 눈치를 준다는 거야. 내 대학교 동기가 그러는데 휴가만 써도 같은 팀 사람이 자기가 일 대신해야 한다고 눈치를 준다며? 그건 시민의식의 문제야. 위에서 괜찮으니 휴가 쓰라고 해도 옆에 사람이 눈치 주는데 뭐가 바뀌겠어. 나는 내 자식이 적어도 그런 환경에서 일하지 않기를 바라."

뭐라도 좋으니 반박 거리를 떠올리고 싶었지만 이미 머리에 과부하가 걸렸다. 원론적인 반박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누나, 그래도 무작정 어디가 좋다고 하는 건 항상 위험한 거 알잖아. 영화에서도 단골 소재인데 그건."

"무작정 좋다고 하는 거 아니야. 당연히 단점이 있지만, 분명히 더 나은 부분이 많다는 얘기를 하는 거야. 하... 동생인 너한테 이런 얘기까지 하면 조금 그럴 수 있는데, 막말로 섹스 얘기를 할 때도 여기 남자들이랑은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어. 그런 이야기를 부부니까 당연히 할 수 있는 거고, 여기서는 학생 때부터 성교육이 잘 되어서 그런 이야기를 해도 부끄럽거나 죄악시 되는 느낌이 아니야. 나도 여기 와서 그런 게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고 충분히 일상적인 이야기로 친구랑 할 수 있는 대화거리라는 것을 알았어."


 누나가 동생 앞에서 섹스 이야기까지 꺼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고 아무리 나한테 말한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남사스러움이 몰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앞으로 나올 화제가 이보다 더 강할까봐 슬슬 두려워졌다. 더 이상 누나를 자극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누나, 그런데 예전부터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 누나는 영화를 좋아하잖아. 중학생때부터 지금까지 블로그에 평론도 꾸준히 써왔잖아. 난 아직도 누나 글 읽는데, 누나는 왜 경영학과에 간 거야?"

누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

"솔직히 영화가 아직도 좋긴 해. 그런데 그 때나 지금이나 그걸로 밥을 먹고 살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경영학과에 간 거야.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벌고, 영화는 취미로 보는 거지."

"한 번 시도는 해보고 취업해도 되잖아. 경영학과를 나와야만 취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한 번이 무섭더라고. 한 번 하면 계속 하고 싶을 것 같았어. 동시에 나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었어. 그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단 말이야. 그런데 영화 쪽으로 한 번 발을 들이면 영원히 그것과 멀어질 것 같았어."


 누나는 두 개의 꿈이 병행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한 쪽을 과감하게 포기한 것이었다. 영화 쪽 일을 하고, 한국에 살았으면 누나가 결혼도, 아이도, 행복도 포기해야했을까? 나는 솔직히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고프지 않은 예술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서희 누나조차도 우리 집에 결여된 '행복한 가정'이라는 컴플렉스를 안고 살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결국 우리 집에 결여된 화목이라는 가치는 나의 세 명의 누나 모두에게 대물림되었고, 그것을 각자의 방법으로 얻어내고자 각기 다른 양상으로 전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나는 구태여 더 누나한테 묻고 싶은 게 없어졌다. 그냥 누나가 만족하면, 나는 응원하는 게 논리적으로도 합당하다는 판단을 했다. 누나의 인생에 대해 내가 간섭할 권리는 없다. 이 문제는 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후 나는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의 말에는 사실도 있고, 환상도 있다. 누나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나는 감히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한 가지를 확실히 안다. 유사 이래 세상 어느 사회에서도 이방인이 완벽히 녹아드는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영국에 아시아인 줄리아 로버츠는 존재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안다. 그 결과는 나중에 누나가 스스로의 인생으로 보여줄테지. 나는 그렇게 누나와의 남은 휴가를 보내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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