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로그

아이의 행복이 최우선

by 팅커벨


우리 가족은 외국에서 살다 귀국하였다.

아이가 세 살에 한국을 떠났다가 열 살, 학교를 시작하기 3일 전에 한국에 들어와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학교생활을 시작하였을 때는 언어도 어눌하고, 들은 단어를 기억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를 이해하고 해 가기는 힘들고 바빴다.


남편과 나는 아이 학교 공개 수업도 보고, 친구들과 어울려 잘 지내는 것도 보았다.

어느 부분에서 편안하지 않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들이었다.


그런 생활 중, 친구들이 문화적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를 향해 바보 아니냐는 말을 들으며 학교를 보내야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아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과제들을 함께 했던 시간들이 아이와 나의 생활을 버겁고 힘들게 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이에게 학교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이는 쉬는 시간에 책 읽는 것이 첫 번째, 점심식사 후에 책 읽는 것이 두 번째이고, 세 번째는 햇살 좋은 날 점심식사 후 개미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무심결에 "행복하지 않으면, 즐겁지 않은 것은 인생이 아니란다. 학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라는 말에 "그럼 나 내일부터 안 갈래."라고 말하며 기뻐하는 아이를 보았다.

교육에 대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학교를 그만둘 만한 이유는 아니었다.

단지 아이만 바라보았다.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랐고, 그 무엇보다 자신감 있게 자라길 바랐다.

그래서 학교를 시작한 한 학기를 마치고 홈스쿨링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의 선택에 후회가 있지 않을까 여러 번 물어보았다.

"학교도 재미있지만, 집이 더 재밌어."라는 말이 홈스쿨링을 하는 내내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했다.


반면에 둘째 아이는 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병설유치원에 다녔다

둘째 아이는 학교 가고 싶어 하지 않을 때에도 그 당시 나름의 이유로 초등학교를 다니게 했다.


형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니 중학교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둘째 아이도 중학 과정 홈스쿨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둘째의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없었다.

단지, 형보다 자신을 덜 사랑한다고 느낄까 봐 엄마로서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의 홈스쿨링은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두 아이가 각자 다른 시기에 시작하였고, 그들의 의사가 가장 많이 반영되었다.

부모로서의 관점으로 보면, 남편은 아이들과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될 엄마인 나의 생활을 가장 우려했지만 환영했다.

엄마인 나는 그저 아이가 자신감 있게 자라길 바랐다.

그리고 즐겁게 자신의 결정을 하면서 자라길 바랐다.


그 시기를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남지만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교를 다녔어도 역시 아쉬움이 남은 채로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