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밖으로 나서면 골목시장이다. 개원할 때부터 있었으니 20년도 더 된 시장이다. 백 미터가 채 안 되는 골목에 스무 개 남짓한 가게들이 각양각색의 이름을 하고 줄지어 서 있다. 봉순이네, 만물이네, 완도 건어물, 남해 수산, 전주 반찬, 뚱땡이네 채소. 점심을 먹으러 나오거나 퇴근길엔 어김없이 골목시장을 지난다. 요즘은 다들 대형마트를 찾느라 골목시장은 늘 한가하다. 그나마 퇴근 시간에는 저녁 반찬을 사러 나온 동네 주민들의 발걸음이 종종거렸고 물건을 담고 계산하는 상인들의 손이 재빨랐다. 시장상인들 중에는 단골 환자들도 있다. 봉순이네 과일 아주머니는 오늘도 배달 온 점심으로 한 끼를 때우신다. 간이의자에 앉아 허겁지겁 드시다 손님이 오면 먹다 말고 사과는 얼마고 배가 맛있다는 둥 흥정에 바빠진다. 저러다 역류성 식도염이 또 재발할 텐데 조마조마하다. 옛날 떡집 아주머니가 여전히 모자를 쓰고 있는 걸 보니 아직 항암치료가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지난 설에 우리 병원에서 유방암을 진단받고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잘하시고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다. 평범하고 소소한 골목시장도 명절 때가 되면 북적인다. 제수 음식을 준비하러 나온 사람들, 전이며 떡이며 과일이며 명절을 풍성하게 보내고 싶은 사람들의 장바구니가 무겁다. 상인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좁은 골목은 오랜만에 활기찬 곳이 된다.
무더위에 모두 지쳐 있던 고3 여름, 담임 선생님은 주말에 시장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보면 정신이 번뜩 나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 거라고. 선생님 말씀대로 어느 토요일 오후에 남대문 시장을 찾았다.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인파 속에서, 상인들이 가판대 위까지 올라가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연신 “골라, 골라”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날 특이한 상인들의 목소리만 기억에 남았을 뿐 삶이 치열하다는 걸 알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정작 삶이 치열하다는 걸 안 건 내가 직접 삶의 현장에 선 다음이었다. 아침 출근길 하품을 하며 셔터문을 올리는 사장님과 눈이 마주치면 나 역시 삶의 고단함을 느꼈고, 명절 때 활기찬 상인들을 보며 나 역시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석 무렵이었다. 얼마 전 위내시경을 받은 중년 남성의 조직검사 결과가 위암으로 나왔다. 병변의 위치가 위의 초입에 있어 수술하게 되면 위를 전부 절제해야 하는 상황이라 안타까웠다. 서둘러 환자에게 연락하여 결과를 들으러 오시라고 했다. 정작 환자는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몇 번의 헛기침으로 뜸을 들이다가 결과를 말씀드렸다.
‘2년 전 내시경에서는 역류성 식도염만 있었는데 이번 검사에서는 식도 아래 이렇게 염증이 있는 부위가 있어서 조직검사를 했어요. 그런데 조직검사 결과가 안 좋게 나왔네요…. 위암입니다…. 내시경 점막절제술로 제거가 되면 좋을 텐데 만약 수술하게 된다면 식도랑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위를 전부 절제할 수도 있습니다.’
비교적 담담히 결과를 듣고 의뢰서와 조직검사 결과지, 앞으로 하셔야 할 일들이 써진 메모지 그리고 내시경 시디까지 챙겨서 돌아간 환자가 얼마 뒤에 다시 접수됐다.
‘원장님, OOO 환자분 의뢰서와 조직검사 결과지 다시 출력해 주세요. 집에 가시다가 요 앞 골목시장에서 다 잃어버리셨대요.’
아무 생각 없이 건강검진 내시경 결과를 들으려고 병원에 왔다가 위암이라는 소리와 함께 생소한 서류들과 시디를 받아들고 집으로 향하던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누구에게 먼저 이 황당한 소식을 알려야 할지, 예약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토요일만 쉬는데 평일에 진료를 잡으려면 직장에는 뭐라 이야기해야 하는 건지, 별 증상도 없는데 위암이라니…. 머릿속에 혼돈이 밀려왔을 것이다. 주머니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시디 한 장만 손에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
‘저기요… 그런데 제가 집에 가다가 저한테 주셨던 그 종이들을 다 잃어버렸어요…’
그날 나는 골목시장을 지나 퇴근했다. 추석을 앞둔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남해수산을 지날 즈음 문득 위암 환자가 여기서 의뢰서와 쪽지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생각났다.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시장에서 그는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잃어버렸다. 아니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을 것이다. 나도 저 대열에, 상인들과 사람들이 장사하고 명절을 준비하는 대열에 있어야 하는데 자기만 홀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현장이 또 길을 잃어버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잠시 어지러웠다. 나 역시 개원을 하고 20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길을 잃은 적이 있었고 그것 역시 진료의 현장에서였다. 애석하게 환자를 잃었을 때, 과중한 업무로 건강을 잃을 뻔했을 때, 경영이라는 이유로 환자를 위해 살겠다는 초심이 흔들렸을 때 나는 길을 잃곤 했다. 그럴 때면 인생 중반에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단테의 신곡 첫머리가 떠 올랐다.
정신을 차려 시장을 바라본다. 기름지고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전주 반찬에서 명절 전을 부치고 있었다. 옛날 떡집에서는 갓 찧어낸 송편들이 매대에 가득했고 사람들이 줄지어 떡을 사 갔다. 능숙하게 떡을 주워 담고 계산하는 떡집 사장님은 전혀 암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살다가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길을 잃고 힘겹게 살다 보면 또 어느새 삶의 자리에 돌아와 있다. 길을 잃은 곳이 삶의 현장이니 길을 찾는 곳도 삶의 자리일 것이다. 삶이란, 길을 잃을 정도로 과중하면서도 길을 다시 찾을 만큼 자애롭다.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역시 인생의 굴곡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다시 찾기도 한다. 이제는 골목시장이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이곳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쳐 버릴 정도로 붐비는 활기참 속에서 삶이 길을 잃을 수 있는 곳임을, 손님이 없을 때는 마늘을 까고 채소를 다듬고 하릴없이 핸드폰을 쳐다보는 한가로움 속에서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길을 찾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곳이다. 골목시장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한층 더 복잡해졌지만 가을하늘 깊은 들숨에도 다 담지 못할 것 같은, 삶이라는 과묵하면서도 인자한 버팀목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 혼자 동떨어져 낙오됐다고 느낄 때 골목시장 어디선가에서는 돌아오라는, 삶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느 해 어느 명절에 내 환자도 이 골목시장에서 손에 알 수 없는 서류들이 아니라 좀 더 깎아달라며 흥정하는 아내 옆에서 양손에 장바구니를 가득 들고 인제 그만 집에 가자며 재촉하면서도 마음만은 행복한 장보기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