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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l 06. 2024

뜻밖의 만남

(feat. 나란 남자 소심한 남자)

날파리가 자꾸 날아온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찾아오는 것이 내게서 매력적인 향기가 나나 싶을 정도다. 쓰던 글이 마무리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카페를 떠날 시간도 다가와서 마음이 급했다. 거기에 날파리까지 난리를 치다니. 신경이 쓰이는 정도가 아니라 도무지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날파리 잡느라 글을 쓰다 말고 춤을 추는 나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짐을 챙겼다. 노트북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리고 보니 최근 며칠 동안 날파리가 나를 계속 괴롭혔다. 내가 에프킬라를 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떻게 해야 날파리를 물리칠 수 있을까? 카페가 깔끔했기 때문에, 음식물이나 쓰레기에서 날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닐 것 같았다. 큰 화분이 몇 개 보이는데. 어쩌면 저것이 원인이 아닐까? 나는 빈 컵을 카운터에 내려놓으며 사장님에게 말했다.

“날벌레가 날아다니네요. 저 여기 거의 매일 오는 거 아시죠? 날벌레가 계속 있는 날아다녀요. 화분에 약이라도 뿌리시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런데 사장님은 정신이 없었는지 내 말을 놓쳤다.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날벌레가 저한테 자꾸 날아오더라고요. 저 때문에 날벌레가 꼬이는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하. 암튼 신경 좀 써주세요!”

사장님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왔다. 날파리 때문에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한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보니 날파리뿐만 아니라 최근에 카페가 전체적으로 좀 어수선하긴 했다. 갑자기 문을 닫는다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카페 사장님이 바뀐 것 같았다. 카페가 다시 열리는 날 글을 쓰러 갔다. 연예인이 보낸 개업 축하 화분이 있었다. 사장님과 어떤 관계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그걸 물어볼 사장님이 누군지 찾는 것도 문제였다. 카운터 안에는 5명이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아마 본사에서 세팅을 도우려 나온 것 같았다. 나중에 내 옆자리에서 설명을 듣고 뭔가 쓰고 있는 분이 사장님이겠거니 추측할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 커피가 나오지 않았다. 출근하는 테이크아웃 손님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도 목을 빼고 기다렸는데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 제품은 아닐 텐데. 한 직원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분이 나에게 물었다. 마치 ‘아, 그럼 이게 니 거였구나!’라는 뉘앙스였다.

“저, 혹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하셨어요?”

“네. 그런데 제가 포장이 아니고, 매장에서 마시는 걸로 주문했거든요.”

플라스틱 컵 속에 얼음이 녹아가고 있었다. 직원은 실수했다며 커피를 재빨리 유리컵에 옮겨 건네주었다.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니, 이게 왜 맛이 달라졌지?’

맹숭맹숭해서 보리차 맛이 느껴졌다. 얼음이 녹아서 그랬을까? 그렇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매일 이곳에 앉아서 얼음이 녹은 물까지 다 마시던 감이 있지 않은가? 특유의 탄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가형 프랜차이즈 카페인데, 맛이 이렇게 차이가 날 수도 있는 걸까? 맛이 영 변해버린 걸까? 커피를 바꿔달라고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커피를 바꾼다고 뭔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커피 때문에 괜히 스트레스받지 말고 글쓰기에 집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보리차맛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며 속을 달랬다.


‘아, 오늘 왜 이러냐.’

인터넷이 열리지 않았다. 와이파이가 아예 잡히지 않는 상태였다. BGM을 틀어야 글쓰기의 세계로 입장할 텐데. 별 수 없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수밖에.

“저기… 와이파이가 안 되는데요.”

그러자 사장님이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와이파이가 안 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본사 직원들 중에 남자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처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다들 너무 바빴다.

“당장은 안된다는 거죠? 일단 알겠습니다…”

자리로 와서 핫스팟을 켰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임에도 불구하고, 핫스팟을 켜는 것이 불안한 건 나뿐인 걸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제 드디어 몇 문장을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오셨다. 와이파이가 되니까 한번 해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여전히 신호가 뜨지 않았다. 우리 집이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사장님은 당황하셨고, 나는 글쓰기가 계속 방해받는 느낌이 들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쯤 내 표정이 차가워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남자 직원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와이파이가 되니까 말해주러 오는 것이겠지. 나는 와이파이 설정창을 켰다. 직원이 말했다.

“이제 와이파이 되실 거예요.”

“네. 키고 있어요!”

직원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표정하게 모니터를 보며 대답했다. 나는 글을 쓰느라 바쁘니까 이제 나를 더 괴롭히지 말라는 뜻이었다.


‘날파리만 처리되면 별 문제없겠지.’

애정하는 글쓰기 자리를 잃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애써 달랬다. 나에게는 여전히 이 카페가 최선이었다. 부디 앞으로는 문제가 없기를 바랐다. 오후에 일을 처리하고 아이를 하원시키러 유치원에 갔다. 아이는 유치원 놀이터에서 좀 놀다 가겠다고 했다. 먼저 집에 가서 간식을 먹고 저녁에 좀 선선해지면 나오는 게 어떻냐는 나의 합리적인 질문은 묵살되었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어떤 분이 나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아, 애기가 여기 다니시는구나? 반가워요!”

어디서 낯이 많이 익은 여성분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머릿속을 한참 뒤져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온몸에 돋는 소름. 조금만 더 놀랬으면 식은땀이 흐를 판이었다. 그분이었다.

“아… 혹시.. 그…. 카페 사장님… 그 맞으시죠?”

“아, 네 맞아요.”

그런데 어째서 지금까지 얼굴을 한 번도 못 본 것일까? 그러다 문득 우리 아이 반에 새로 온 친구가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혹시… 그.. 이번에 들어오셨죠?”

“아, 네. 맞아요. 저희가 이번에 들어왔어요.”

불길한 상상은 소설처럼 맞아떨어졌다. 카페 사장님은 우리 아들의 친구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실수’라는 검색어로 지난 며칠간의 기억을 샅샅이 구글링 했다. 내 뇌는 그 짧은 순간에 잠정적인 답을 도출했다.

‘내가 좀 예민하게 굴었네. 아들이랑 같은 반 친구 학부모인 줄 알았다면, 안 그랬을 텐데. 크게 실수한 건 아닌 거겠지? 진상은 아니었을 거야. 그래. 내가 예민해서 그렇지, 막 돼먹은 사람은 아니잖아. 아니 그리고 내가 맨날 매출 올려주잖아? 아 그런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자리 오래 차지하긴 하니까 진상인가?”

머릿속에는 채 언어화되지 못한 생각의 조각들이 이리저리 떠다녔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과장되게 웃는 것밖에 없었다. 다분히 계산되고 의도적인 미소와 함께, ‘학부모’ 모드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속도가 비슷한 두 어린 친구의 걸음 덕분에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같이 머물러야 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는 왜 그리 안 바뀌는지. 왜 우리는 자꾸 동선이 겹치는지. 너무 어색한 나머지 도로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였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구급차에 실려가는 게 더 낫겠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안다. 굳이 그렇게 까지 생각할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하지만, 내가 소심한 걸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그 억겁의 시간이 지나고 30년 정도는 늙은 나는, 한 며칠 그 카페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로 결심했다. 내 마음을 최대한 보살펴주고, 큰 용기를 내어서 언젠가는 내 자리를 다시 탈환해 내리라 다짐했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모임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트리로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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