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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l 08. 2024

나는 버섯 똥꾸다

우리 아들은 버섯 똥꾸일까? 아침부터 “나는 버섯 똥꾸다!”와 “이히히!”를 50번 정도 들었더니,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섯 똥꾸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는데 말이다. 웃지는 마시라. 멀리서 보면 희극인 이 일은 가까이서 보면 분노와 한숨의 격정 드라마다.

어젯밤 잠이 안 오신다며 내 방을 4만 7천 번쯤 드나들던 버섯 똥꾸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우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그는 결국 식탁 앞에 누워 다리를 떨며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시간은 8시 반. 엄마는 출근하러 자리를 떴다. 30분 만에 밥을 다 먹이고, 치카치카와 세수, 로션 바르기, 옷 입히기, 유치원 등원시키기까지 다 해낼 수 있을까?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가능은 할 것 같다. 맴매를 들고 버섯 똥꾸를 째려보며 언성을 높이면 된다. 하지만 그 부작용을 경험했기에 요즘엔 채찍보다는 당근으로 꼬시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잘 꼬셔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워있던 버섯 똥꾸가 기적적으로 앉아서 밥을 한 숟갈 먹으면, 그다음 숟갈을 뜰 때까지 대략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다. 유치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집에서는 왜 그러는 것일까? 아빠의 인내심을 키워주는 것일까?

‘나중에 더 큰 일 겪으실 텐데, 이 정도는 참아주셔야죠? 아버지?’


우리 아들은 안 그러는 줄 알았는데, 요즘 갑자기 이러신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틀이 지나 밥을 한 숟갈 정도 남긴 버섯 똥꾸는, 먹을 거냐 아니냐를 두고 또다시 5시간 정도 실랑이를 벌였다. 그만 먹을 거면 먹은 것을 정리하라고 하면 더 먹을 거라며 엉엉 운다. 그럼 더 먹으라고 하면, 싫다고 징징 거린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걸까? 자기가 그만 먹고 싶은지 아닌지도 잘 알지 못하는 이 생물체는 자기감정의 불확정성에 대한 좌절을 고스란히 나에게 돌려준다. 결국 오늘은 “그만 먹어! 이따 유치원 가서 간식 먹어.”라며 그릇을 빼앗아 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아니, 마무리가 안 됐다. 그의 감정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 이제 치카치카를 시켜야 하는데, 난이도가 270배 정도 상승했다. 혼자서 놀이처럼 해보게 하며 물을 300L 낭비하게 하는 것도, 이제껏 우리가 울며불며 쌓아온 지난 치카치카의 시간을 통해 치과 선생님의 완전한 합격 판정을 받아냈다는 사실도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항과 비명이 욕실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주민이 이 소리를 듣고 일어날 것 같은 데시벨이었다. 아동 학대로 신고가 들어오지 않을까 두려웠다. 마음이 급해졌다. “밥을 먹은 자는 치카치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치카치카를 하지 않은 자는 유치원에 갈 수 없다.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면 집에 있든지 마음대로 해라. 아빠는 준비하고 모임 나가야 하니까.” 결국 아빠는 계엄령을 선포한다. 추상같은 눈빛과 포효하는 불호령에 아이는 굴복하고야 말았다. 아이는 훌쩍이며 무사히 양치와 세수를 마쳤다.


“이히히~”

이히히? 이히히라고? 그랬다. 이히히였다. 아이는 얼굴을 닦자마자 거실로 뛰어나갔다.

‘어리석은 아빠 녀석, 여기서 끝난 줄 알았더냐?’

버섯 똥꾸는 완전체로 진화했다. 이제 모든 것은 광기와 혼돈으로 변했다. 거실을 뛰어다니며 장난감을 집어 들고 버섯 똥꾸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천명하는 그는 이미 현실 세계의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아, 이곳이 지옥인가. 팬티를 벗어서 머리에 감고 광기 어린 웃음으로 뛰어다니는 저 괴생물체를 어떻게 제압해야 할 것인가? 신은 자기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던데, 도대체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신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 같은데. 뭐, 하긴 그러니까 내가 신이 아닌 거겠지.

시간은 벌써 9시를 넘었다. 일어나고 있는 일은 어쩔 수가 없다. 최대한 해결해 봐야지. 나는 모든 분위기를 잠재울 수 있는 신종 무기를 생각해 냈다. 그것은 바로 침묵이었다. 버섯 똥꾸가 입어야 할 바지를 들고 그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침묵은 그에게서 모종의 두려움을 생산해 내고 확대시켰다. 광기와 혼돈은 자기 안에서 무너지고,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는 내 앞에 차렷 자세로 섰다. 이제 이 전쟁은 마무리되는 것 같다. 여전히 버섯 똥꾸와 이히히는 여운처럼 계속되었지만.

버섯 똥꾸가 신발을 신는 사이에 내 준비는 끝났다. 12초 정도 걸린 것 같다. 집을 나서기만 하면 등원하기는 어렵지 않다. 집에서 차까지 킥보드를 태웠다. 차에 타는 건 좋아하는 편이라 투정 부린 적이 없다. 차에서 내려도 가는 길까지 적절히 반응만 해주면 된다. 원래는 이 시간에 아빠 전화번호를 암기시키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는 식의 4가지 복무신조를 읊어주곤 한다. 그걸 까먹은 걸 보면 오늘 진이 많이 빠지긴 했나 보다.


유치원에 내려 아이와 함께 입구로 걸어갔다. 한 엄마가 유모차 쪽을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 안엔 한 천사가 미소 짓고 있었다. 얼굴도 조막만 하게 작고 귀여운 딸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여운 광경인가? 등원 도우미 선생님에게 인사하라고 40번 정도 말해야 겨우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 목이 뻣뻣한 버섯 똥꾸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신발을 갈아 신을 생각도 안 하고, 원에 들어오는 다른 친구들을 한없이 바라보던 그는 결국 선생님에게 끌려 들어갔다. 버섯 똥꾸가 딸이었다면 어땠을까 망상을 하며 나는 맥없이 차에 주저앉았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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