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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l 18. 2024

부끄러움 극복 훈련

주의 : 손발이 오그라들기 전에 우선 주먹을 좀 쥐고 읽어보세요.


그리임자


가로등의 주황이 빗물에 흔들리면,

부유하는 부스러기들.

한숨으로 다 내보낼 수 없기에

매번 숨을 내 쉰다


영원히 등 돌린 듯 떠나왔지만

그리움 마저 그리하지는 못했다

그리어나, 그리엄에도 불구하고, 그리하니까,

돌아가는 길을 푸념하지 않아야지


비가 더 오면 좋겠다

흔들리고 흔들리겠지,

흐르고 흘러가겠지.

그리고 그리한다면, 그리워한다면

언젠가는 거기에 다시 있겠지




시를 썼다. 아니다, 시라고 하긴 좀 그런가? 시집을 단 한 줄도 읽지 않는 사람인데 무슨 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싸이월드 감성글 정도라고 하자. 어쨌든 아침부터 감성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아내에게, 글쓰기 모임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유일한 시 쓰는 사람에게 보내주었다. 아내는 손발이 오그라 든다고 했다. 글쓰기 모임의 한 멤버는 “좋아하고 즐겨 쓰는 장르 불문하고 언어를 되게 잘 사용하시는 거 같”다고 했다. 시 쓰는 이는 “이미지나 서정보다 리듬만 너무 눈에 띄는 느낌”이라고, 시를 좀 읽어보라고 했다.

이 모든 말들을 들으며 내가 느낀 감정은 행복이었다. 나의 애초의 목적은 감성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마냥 기뻤다. 사실, 나는 감성적인 글을 좋아한다. “널 보고 싶어서, 바다에 갔어.” 이런 식의 직설적이고 유치한 글. 중2병 충만하고, 괜히 옆 사람을 때리고 싶어지는 글을 사랑한다. 누군가 웃어넘기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쓰는 것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글을 보내어 평가까지 받다니. 마음이 많이 건강해졌다는 걸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부끄러워하고 비웃었던 건 바로 나였다. 내면의 화해가 언제쯤 일어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지금 나는 내 감성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이제부터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감추었던 것들을 다시 꺼내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물론 그들의 시선을 존중하고 배려하겠지만, 연연하지는 않는 태도를 가지려 한다. 다시 말하지만 매일 감성글을 쓴다는 말은 아니다. 이미 미션을 완수했으니 됐다.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면 된다. 다음 과제는 아재 개그와 말장난이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모임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트리로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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