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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나무 Oct 22. 2023

[프롤로그]  친구들아,
내가 먼저 암환자가 되었네

지금 시련 앞에 선 사람들을 위한 암환자의 일상 복귀 분투기


[ 친구들아, 내가 먼저 암환자가 되었네 / 프롤로그 ]



0.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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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 Suffering isn't ennobling. Recovery is. )


크리스천 네이틀링 버나드(Christiaan Neethling Barnard ; 세계 최초로 인간의 심장 이식 수술을 성공한 흉부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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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거치는 인생의 과정이 있죠?

어쩌다 보니,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씩 빠르게 삶의 단계를 밟아 왔어요. 그만큼 시련도 일찍 만나야 했지만요.


23세에 대학 졸업과 동시에  S그룹 S전자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직장 생활은 대학 전공이기도 했고, 창의적인 일을 좋아하는 적성에도 잘 맞는 부서에 배치되어, '신인왕'을 노리며 자신만만하게 시작했지요. 하지만 저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어요. '메이저리그' 직장인들의 염원인 임원 자리는 평생 손에 닿을 것 같지 않은 '마이너리거'의 시간을 길게 보내야 했어요.

27세에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을 하면서 다짐했죠.

'난 20대는 일찍 마감하고, 지금부터 30대를 미리 살 거야.'

29세에는 아빠가 되었어요. 그리고 '남편' 보다도 '아빠'라는 호칭은, 그 무게가 많이 다르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고요.


30세부터는 삶의 가속 페달을 더욱 강하게 밟았어요. 용량 초과의 책임감이 젊은 가장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거든요. 이직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음에도 일찌감치 대기업을 뛰쳐나왔고, 아날로그 세상에 처음으로 디지털 문명이 선을 보이던 시기, 지체 없이 디지털의 바다에 뛰어들었어요.

완벽한 시스템을 자랑하는 안정적 직장을 나와,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IT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로 합류한 거지요. 사실 준비가 안되어있던 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팀장도 안 해본 제가 부사장을 맡았으니까요. 이때부터 회사도 저도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시작했어요. 날마다 문제의 연속이었고, 그 문제는 난생처음 접해본 난해한 '고차 방정식'이었어요. 그나마 인터넷 등장 초창기, 늘 새로움을 추구하던 제겐 너무나 흥미로운 신세계였기에 힘을 낼 수 있었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었어요. 그 덕분에 일주일에 이, 삼 일을 회사에서 밤을 새워가며 미친 듯 일할 수 있었고, 대학원 야간 MBA 과정도 마칠 수 있었어요. 회사도 초기엔 월급도 제 때 못 줄 정도로 폐업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고된 시간을 잘 이겨내고 조금씩 자리를 잡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차츰 이익을 늘려가고, 성장을 거듭하여 업계의 톱클래스 회사가 될 수 있었죠.

37세에는 회사와 한 몸이라 생각하던 저도 함께 성장하여, 대표이사가 되었어요. 이후 코스닥 기업에 회사를 매각하고, 저는 글로벌 마케팅 회사의 한국 대표로 자리를 옮겼죠.


39세에는 전문 경영인에서 벗어나 창업을 했어요.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 시점이었기에 무모하다고 말리는 사람이 많았지만요.

역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창업을 후회하게 만드는 일들이 이어졌어요. 그래도 어려울 때마다 두 아이들이 저에게 초인적인 힘을 주었어요. 뽀빠이 아저씨 손에 쥐어진 '시금치 통조림' 같았죠. 그렇게 10년을, 가장의 무게를 버팀목 삼아 일에 몰입할 수 있었어요. 다행히도 여기에 운이 더해져 좋은 성과를 만들 수 있었어요.

49세에 회사를 국내 대기업에 매각했고, 또래 친구들에 비해 조금 일찍 은퇴를 했어요.


특별히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용기를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살다 보니 많은 걸 동년배보다 조금 일찍 하게 되었어요.

결혼도, 사업도, 은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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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을 서둘러 살았고,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 조금 편한 마음으로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했어요. 방학 숙제를 일찌감치 마친 초등학생처럼 홀가분한 기분으로요.

제가 생각한 은퇴는 흔히 말하는 '놀고먹는 것' 만은 아니었어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즉 경제적 보상이 담보되지 않는 일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황을 의미했어요. 은퇴와 함께 이에 걸맞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고 나름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할 때였어요.


그런데 아뿔싸, 52세에 그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이 발생했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암 진단을 받은 겁니다. 이런 건 천천히 만날수록 좋은 건데, 이 마저 빨리 만나 이른 나이에 암 환자가 되었어요.


이제 인생의 절반쯤 왔고, 아직 갈 길이 절반 더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건강엔 자신 있었죠. 늘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이란 소리를 들으며 살았거든요. 암이란 건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그런데 느닷없이 눈앞에 큰 암벽이 나타나 제 앞을 가로막은 거예요. 죽음이 코 앞에 와 있다는 생각에 너무 놀랐고 많이 무서웠어요.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만큼 그 공포는 더욱 크게 느껴졌어요.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죽음의 두려움 속에, 한 달 간격으로 두 번의 수술과 입원을 해야 했어요. 그리고 퇴원 후에는 일주일에 5일씩 병원에 방문하여, 총 31회에 걸쳐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했고요. 이렇게 100 여 일에 걸쳐 암의 표준 치료라 불리는 과정을 마쳤어요.

암 환자로 지낸 지난겨울은 참 길었고, 참 힘겨웠어요. 육체적으로도 괴로웠고, 정신적 고통은 그보다 더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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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진단을 받은 지 일 년이 다 되었네요. 그 어느 일 년보다 길었지만 그래도 암흑 같던 시간은 흘러갔고, 저는 서서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그 사이, 뒤늦게 암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며 공부를 했어요. 십 여 권의 암 관련 책을 읽고, 유튜브로 각 병원 암 전문의들의 설명도 들어보았죠. 그 결과 두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내가 암에 대해 정말 무지하다는 것과 암에 걸렸다고 당장 죽지는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요.


조금씩 정서적 안정이 찾아오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 질문은 역설적이게도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로 이어졌어요.

'나는 어떤 삶을 살다 죽어야 할까?'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언제까지 살든, 사는 동안에는 세상에 작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게 제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철학자 니체가 이런 말을 남긴 것도 알게 되었어요.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


이후,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했고, 무엇보다 이 시련의 과정을 통해 얻게 된 것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우선 두 가지가 생각났어요.

하나는 '암에 대해 알려주자'였어요.

암은 우리나라 인구 세 명 중 한 명이 걸리는 병이 되었답니다. 하지만 저처럼 무지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죠. 그래서 막상 닥치면 더 크게 겁을 먹게 되고요. 의사는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수준에서 최대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시련 속에서도 의연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였어요.

암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슬프고 괴로운 일이 생기는 것이 인생이잖아요, 저의 경우를 통해 인간에겐 회복 탄력성이 있음을, 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 있음을 알게 해주고 싶었어요. 큰 교훈은 아니더라도 작은 힌트 정도는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이 일을 글을 통해 하고 싶었어요. 이런 목적으로 글을 쓰다 보면, 저 자신도 치유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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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많은 것을 빨리 시작했어요. 그만큼 좌충우돌하면서, 깨져 가면서 배워야 했지요. 고비도 많았고, '월반' 수업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기도 했어요.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과정을 통해 '나 만의 삶의 방식'이 만들어졌고, 더 단단해질 수 있었고, 결국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었어요.

인생 전반기를 마칠 즈음, 힘들었던 창업 초기에 세운 '50세 은퇴' 목표를 달성했어요. 그리고 저에게 칭찬을 해주었어요.

" 나,  참 멋지다. "


보통의 또래들보다 먼저 암이라는 고난을 만났어요. 이번엔 저만이 아니라 현재 이러저러한 문제로 고통에 빠져 있는 친구들과 함께 이겨내고 싶어요. 지금 시련을 만나 분투 중인 이가 있다면,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벗이 되었으면 합니다.

" 친구들아, 함께 이겨내 보자. 그리고 서로 칭찬해 주자. "

" 너, 참 멋지구나. "






성격은 거북이인데, 삶은 토끼처럼 살고 있네요. 당신은 토끼와 거북이 중 누구를 닮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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