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들아, 내가 먼저 암환자가 되었네 / 1편 : 일단 버텨 (수술과 방사선 치료 기간) ]
1-1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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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자! 나는 할 수 있다! "
여전히 대부분의 몸이 잠들어 있는, 이동식 병상 위의 제가 있는 힘껏 소리쳤어요.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았고 발가락 하나 까딱이기 힘든, 전신 마취가 다 풀리지 않은 비몽사몽의 몸 상태였지만요.
암 진단을 받고 두 번째 수술을 받은 날이었어요. 12시간의 긴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도착하자 의료진이 제게 물었어요.
"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
저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에 앞서, 나는 할 수 있다고 크게 소리부터 지른 것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어요. 12시간 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었나 봐요. 부지불식간에 입 밖으로 튀어나온 이 외침은, 이제 살았다는 기쁨의 포효이기도 했고, 앞으로도 잘 살아내겠다는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돌발 행동에 저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도 놀랐어요. 눈을 떠 쳐다보진 못했지만, 어렴풋이 저를 둘러싸고 있는 의료진들의 반응이 느껴졌어요. 일부는 당황하는 듯했고, "흐" 하는 콧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헛웃음을 짓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어요. 긴 시간의 수술 후 중환자실로 실려 온 대부분의 환자들이 기어 들어가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데 익숙했을 테니까요.
그 사이 어느 의료진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어요.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꽤 힘들고 위험한 수술이었던 모양이구나.'
그 반응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어요.
다소 멋쩍어진 제가, 여기는 OO병원이고, 수술을 마치고 들어온 중환자실이라고 다시 원래의 질문에 대한 답을 했어요. 그리고는 이어서 조그만 목소리로 덧붙였죠.
" 저는 살아야 해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어요. "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 다소 의기소침해진 목소리로, 변명하듯이 또 애원하듯이 중얼거렸죠.
뒤이어 눈가에서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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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의 나이에 조기 은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고 수 백억, 수 천억을 가진 자산가가 된 것은 아니에요. 저의 목표는 그런 것이 아니었죠.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완수하고, 우리 부부가 앞으로 낭비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으면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수준의 부를 모아 긴 시간을 자유롭게 사는 것이 목표였어요. 책임과 부담을 내려놓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삶 말이죠.
스물일곱 살의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직장 생활도 조금 일찍 접고 사업을 시작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쉽지 않았어요. 일찍 출발한 만큼 더 많은 시련이 있었죠. 하지만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기회를 만들려고 계속 도전했고, 조그마한 가능성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그 이 십여 년 간 아내가 자주 이렇게 말했어요.
" 학창 시절 이렇게 일하듯이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을 텐데. "
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아내에게 이런 칭찬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늘 자부심을 가졌어요.
긴 시간을 몸 사리지 않고 전력투구 했고, 여러 리스크도 감수했어요. 수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잘 넘고 넘어 여기까지 왔어요. 물론 운도 따랐고요.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맑고 푸른 인생 후반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은 거예요.
벌써 암이라니, 너무 일렀어요. 이제 시작인데.
자고 나면 탄식만 나왔어요.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괴롭고 답답했지만, 그저 좌절하고 넉 놓고 있을 수는 없었어요.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라도요.
수술을 앞두고 다짐하고 다짐했어요.
'쉽지 않을 것이고,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호락호락당하진 않을 것이다. 너에게 쉽게 굴복하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뇌며 정신을 붙잡으려 애썼어요.
"아자, 나는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입 밖으로 튀어나온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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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힘겨운 상황에 마주칠 때면 꺼내 드는 '부적 같은 메시지가 있어요.
'멈추고 싶을 만큼 힘들 때, 그때 더 힘껏 뛰어야 한다. 거기가 승부처다.'
누구나 살다 보면 만나는 '마의 구간'에서, 멈추고 싶을 만큼 힘든 그 시기에, 그때 쉬지 않고 더욱 힘을 내서 뛸 수 있는 사람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고 생각해요. 그 인내력과 정신력이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이런 생각의 출발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딴 후 한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서였어요.
우승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황영조 선수가 자신의 경쟁력은 모두가 힘들어하는 그때, 더 힘을 내서 치고 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한 기사였어요.
실제 그는 마라톤의 마의 구간이라고 하는 35km 전후의 구간에서, 특히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지옥의 구간으로 불렸던, 가장 난코스였던 '몬주익 언덕'에서 더 힘차게 달림으로써 함께 선두 그룹에 있었던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크게 벌린 후, 1위로 결승선에 들어왔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 제가 기억하고 있는 인터뷰 내용이 정확한지 확신할 수도 없어졌지만, 저의 기억 속 황영조 선수의 대답은 - 고난의 순간마다,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정표가 되었어요.
'이럴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힘을 모아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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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수술대 위에서 죽어있던 제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물론, 수술로 인해 원래의 몸 상태로 '리셋' 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암 환자죠.
하지만 분명한 건 살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는 건, 다시 뛸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고 다시 뛰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끝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다시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여기에 올 때까지 어느 한순간도 쉽진 않았어요. 하지만 도전해야 얻을 수 있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도전해서 실패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세상을 원망하고, 좌절하고, 우울에 빠져 있다 보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살면서 배워왔어요.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그다음이기에, 내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체득해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