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들아, 내가 먼저 암환자가 되었네 / 1부 : 일단 버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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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에 글로벌 마케팅 회사의 한국 대표가 되었습니다. 본사와의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걱정되었지만, 통역사를 붙여준다는 말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죠. 외국계 기업 근무가 처음이었던 저는 한국 사업만 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건 저의 착각이었고, 언어의 장벽은 너무나 높았습니다. 그때가 제 평생직장 생활의 가장 힘든 시간이었어요. 요즘 생각해 보면, 이때 암이 생긴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대표를 맡고 얼마 안 되어, 언론에서나 접하던 글로벌 그룹 회장님의 방문이 있었고, 한국에 있는 10여 명의 계열사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신임 대표인 저만 회장님과의 첫 미팅이라 제 소개를 해야 했습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한 후, 떠듬떠듬 준비한 말을 하고, 마지막으로 덧붙였어요.
"I'll do my best!"
회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그거면 충분하다고 하더군요.
'최선을 다한다'는 건, '기대'에 대한 - 만국 공통의 '해답'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결과는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늘 그런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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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도, 미래는 모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도 최선을 다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체력 보충을 위해 의식적으로 잘 먹고 잘 쉬었습니다. 잘 때도 똑바로 누워서 자는 연습을 했고, MRI나 CT 검사를 대비하여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있는 호흡법도 익혔어요. 혹시라도 나쁜 마음이 들 때를 대비하여, 그럴 때 떠올릴 지난 시절의 좋은 추억 거리 리스트도 미리 만들어 두었고요. 입원 중에는 책을 보기 어려울 테니, 오디오북 기능이 있는 - 암을 다룬 전자책도 다운로드해 두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두려웠지만, 다른 한편으로 반드시 이겨내겠다는 정신 무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현실은 많이 달랐습니다. 12시간 진행된 수술과 중환자실 입원을 포함해서 열흘을 지내야 했던 입원 기간 동안의 제 모습은, 병원 오기 전의 생각과 많이 달랐습니다. 첫 번째 수술의 고통은 두 번째 수술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습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특히 입원하고 4,5일이 지날 때까지는 의지를 갖고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저 본능적으로 반응할 뿐이었죠.
뇌를 감싸고 있는 뇌척수액이 코나 입으로 새어 나올 수 있어서 '절대 안정'이 필요했고, 따라서 병상에서 내려올 수도 없었어요. 배액관과 소변줄이 달린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어야만 했죠. 코를 통해 내시경 수술을 했기 때문에, 양 쪽 코 안에 실리콘 막대기를 붙여 두었고, 코 속을 이 중, 삼 중의 솜으로 막아 두었습니다. 당연히 코로 숨을 쉴 수 없었고요. 병실의 건조한 공기는 가습기를 24시간 얼굴 옆에 틀어 놓았음에도 유일한 숨구멍인 입을 마르게 했어요. 특히 밤에는 더 심해져서 20~30분 간격으로 숨이 막혀 깰 수밖에 없었어요. 죽으로 한 끼 식사를 하는 데에도 한 시간씩 걸렸어요. 입으로 거친 숨을 쉬면서 밥까지 먹는 건 고역이었습니다. 쇄골에 꽂힌 주사 바늘을 통해 매일 가래 삭이는 약, 위 보호제, 항생제 등이 들어갔고요. 여기에 더해,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고열과 두통 때문에 4시간 간격으로 진통제를 맞아야 했습니다. 일주일 후에는 숨 쉬기가 불편해 CT를 찍어 보니, 폐에서 혈전이 발견되었습니다. 수술 후 오래 누워있을 경우 폐색전증이 생길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한 가지 병이 더 추가되었고 혈전 주사가 더해졌습니다.
극한의 현실은 급조된 의지를 쉽게 넘어서더군요.
꼼짝없이 침대 위에 누워 이 괴로움과 함께 했던 입원실에서의 시간은 잘하기는커녕, 버티기도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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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인간이 대단한 게, 일주일 정도 지나면 정신이 좀 돌아오고, 몸에서 배액관, 소변줄, 코 안의 솜이 하나씩 제거되면 기분도 한결 나아집니다. 그렇게 조금 살아난 제가 괴로워하면서도 책을 찾고, 의사 선생님이 다음번 회진을 오면 문의할 사항을 낑낑대며 노트에 적고 있으니 아내가 저를 보고 얘기합니다.
"너무 미리 준비하려 하지 마, 병원에선 안 그러는 사람들이 더 잘해. 환자는 환자답게 있어야지."
평소 묵묵히 지켜봐 주던 아내가 오늘은 한마디 더 덧붙입니다.
"너무 잘하려고 하는 게 문제야."
그러면서 오늘의 할 일을 정해줍니다.
"오늘은 이 것만 해. 먹고, 조금 움직여 보고, 변 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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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이런 시가 있습니다.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 주고
보듬어 껴안아줄 일이다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해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너, 너무도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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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선수 홍수환의 '4전 5기 신화'를 기억하시나요?
홍수환 선수는 1977년, 적지인 파나마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2라운드에만 4번의 다운을 당하고도, 이어진 3라운드에서 역전 KO승을 거두어, 세계 챔피언이 되었죠. 네 번 다운되고 나서도 다섯 번 일어서서 챔피언이 된 그 대단한 신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앞선 네 번의 '버팀'이 있었던 덕분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잘하려 하지 말고, 일단 버텨야 합니다.
암치료도 마찬가지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저 버텨야 할 때입니다.
tvN 방송국의 드라마 <미생>에서도, 고달픈 직장인들의 피난처인 옥상에서 오상식(이성민) 과장이 장그래(임시완) 사원에게 얘기합니다.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기는 버티는 게 이기는 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 "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 제 기억이 맞나요?, 영화를 보면 "아군이 올 때까지 버텨" 이런 대사가 나오는 쪽이 항상 승리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