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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나무 Oct 22. 2023

1-6  오늘의 감사를
내일로 미루지 않으려 해요

[ 친구들아, 내가 먼저 암환자가 되었네 / 1편 : 일단 버텨 ]


[ 친구들아, 내가 먼저 암환자가 되었네 / 1편 : 일단 버텨 (수술과 방사선 치료 기간) ]



1-3  오늘의 감사를 내일로 미루지 않으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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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입 환자분도 조용해지는 데에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어요.

첫 번째 수술을 하고 입원한 지 4일 정도 되었을 즈음인데요. 오후에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환자분이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새로 입실했어요.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소란을 피운 건 아니었어요. 다만 목소리가 얼마나 크시던지 6인실 병실 안이 쩌렁쩌렁 울렸죠. 간호사의 질문에도 씩씩하게 답변을 하고, 입원 시 유의 사항 설명에도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죠. 코로나 기간이라 마스크를 쓰고 있었음에도요. 

그날 오후 입원 실 안에는 차근차근 설명하는 간호사의 목소리와 그 환자분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만이 있었어요. 그 몇 시간, 커튼으로 가려진 개인 병상의 나머지 환자나 보호자 모두 입은 닫고 있었지만, 귀는 열어 듣고 있었어요. 그리고 모르긴 해도, 머릿속으론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지금은 저래도, 얼마 못 갈 거야' 


저 역시도 그랬죠. 특히 첫 번째 수술 전, 다음 날 수술을 앞두고 말짱한 몸으로 입원실에 들어왔을 때는 말이죠. 하지만 환자복으로 환복을 하고, 채혈을 하고, 아래 위층으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하나 둘 검사가 이어지고, 몸에 주사 바늘이 꽂히고, 링거가 달리고, 수액, 항생제, 진통제 등이 순차적으로 들어가자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어요. 그리고는 그냥 말 잘 듣는 환자가 되었죠.


병실에서 환자들은 대부분 조용하죠. 그저 현재의 고통, 불편함, 괴로움과 싸우는데 에너지를 쓰기도 부족하니까요. 하루하루가 버겁다 보니, 대부분 축 처진 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이 신입 환자 역시 예상대로, 조용한 방의 일원이 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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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마음이 조금 안정되고 입원실에도 적응이 될 즈음, 입원 전 다시 꺼내 읽은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산 채로 매장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체험해 볼 기회가 있었고, 그 후 죽음이 삶의 여정에서 동반자가 되어 작가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나는 언젠가 당신을 데려갈 테지만,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네.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맘껏 삶을 누리시게"

그러므로, 그는 매 순간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오늘 할 일이나 경험할 수 있는 것 - 기쁨, 직업적 의무, 내가 상처 입힌 누군가에게 사과하는 것 등 - 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실에 환자로 누워 있던 첫 며칠 동안은, 나 외의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어요. 그저 가만히 누워있는 것도 버거웠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코엘료의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는 문장이 떠올랐어요. 이 문장을 저의 상황에 맞추어, 저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오늘이 가기 전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실행에 옮겼어요.


우선 간호사들에게도 진심을 담아, 구체적으로 감사 표현을 했어요.

" 주사 아프지 않게 놔주어 고마워요, 편하게 식사할 수 있겠어요. "

" 일하면서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직업은 흔치 않아요. 너무 힘들어 보여 안쓰럽지만, 참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

" 입원 기간 해준 따뜻한 말이 큰 힘이 되었어요. 덕분에 제 때 퇴원할 수 있게 되었네요. " 


저의 감사 표시에 듣는 사람들이 더 고마워했어요.

"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죠. " 라며 미소로 반응해 주었고, 어느 간호사는 " 네, 저도 보람을 느껴요. " 라며 울컥하기도 했어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온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답장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말을 함께 전했어요.

아들이 수능 시험을 망쳐 근심인 여동생에게는 " 좋은 대학을 보내면 좋겠지만, 그게 아들 키우는 절대 목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 아마 목표보다는 목표 달성을 위한 실행 계획의 하나 일 테지. 만약 너한테 아들을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목표가 있다면, 그에 따른 실행 계획은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 말고도 많이 있을 거야. 어떤 하나의 계획 흔들려도, 목표 달성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라고 답장을 쓰면서 도움이 될 만한 명상 애플리케이션을 함께 소개해주었어요.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괴로워하는 대기업 임원에겐 "아파보니 일하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어요. 중요한 자리에서 일로써 능력 발휘하는 상무님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잊지 마세요."라고 보냈고요.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에게는 "요즘 내 즐거움은 아내와 대화하기야. 특히 질문하기. 그럼 나도 몰랐던 면을 새삼 알게 돼. "

"김혜남 님의 책에 보면, 신혼일 때 아내에 대해서 가장 잘 안다네.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이 궁금해서 질문을 많이 하던 시기라. 하지만 20년 된 부부는 잘 안다고 생각하며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해. 하지만 인간은 변하기 때문에 지금의 아내는 내가 알던 예전의 그 아내가 아니라고 하더라." 라며 책 소개 링크를 함께 보냈죠.


많은 사람들이 위로하려 연락했다가, 본인이 더 위로를 받았다는 회신을 보내왔어요. 그런 메시지를 받으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했어요.

'아, 작은 도움이 된 모양이다.'


힘을 내서, 할 일을 제때 한 저 스스로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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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럴 거예요. 지금 하면 좋은 일인 건 알지만 그럼에도 내일로 미루고 싶을 때가 많죠. 몸이 괴로울 땐 더욱더 그렇고요. 

그럼에도 매일매일 오늘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해야 할 일을, 특히 감사나 사과의 마음을 전하는 걸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어도 할 일을 하고 나면, 개운하잖아요. 혹시, 나중에라도 후회할 일 없을 것이고요.






�  파울로 코엘료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엔 영적인 계시가 담겨 있는 듯해요. 이야기의 주제와 상관없는 엉뚱한 깨달음을 얻게 되기도 하고요. 저만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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